[과학을읽다]인류, 마침내 원자에 불을 지르다
핵융합 에너지화 '과학적 원리' 첫 입증
무공해 청정 무한대 에너지원 '인공태양' 연구 본격화될 듯
레이저 스케일 업 등 상용화 과제 산적, 최소 20~30년 걸려
우리나라, 또 다른 방식 '자기 가둠' 핵융합 연구 선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미국이 최근 차세대 무한ㆍ청정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핵융합 연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레이저 핵융합 방식으로 에너지화의 첫 단계인 '점화(ignition)'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의미와 한계·과제가 있는지, 한국의 핵융합 연구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자.
원자에 ‘불’을 지르다
핵융합은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력 발전과 정반대다. 수소 등 가벼운 원자를 강제로 융합시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활용한다. 태양과 같이 항성에서 일어나는 핵융합과 원리가 같아 ‘인공태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원리는 이렇다. 태양에서처럼 초고온·초고압을 가하면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서 헬륨과 중성자로 변한다. 헬륨이 주변 원자들을 가열시켜 핵융합 반응을 연쇄적으로 일어나도록 지속시키는 역할(α-particle·알파 파티클)을 맡는다. 여기에 리튬을 첨가하면 중성자와 합쳐져 삼중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중성자가 방출되긴 하지만 핵분열과 달리 방사선이 나오지 않아 오염 걱정이 필요 없다. 중수소는 바닷물에 0.15%가 포함돼 있어 무한 공급이 가능하며, 리튬도 흔히 쓰는 휴대폰 배터리에 들어갈 만큼의 양만 있으면 한 가정이 80년간 쓸 만큼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삼중수소가 1g당 3000만원이나 되는 데다 반감기가 12년에 불과해 희소하지만 발전 과정에서 무한히 재활용할 수 있다. 이 같은 핵융합 에너지 아이디어는 1950년대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자들 사이에서 나와 연구가 시작됐다. 핵융합을 제어·관리·활용할 수만 있다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핵융합은 첫걸음인 과학적 원리를 증명하는 데조차 성공하지 못했었다. 인류가 에너지원으로 삼으려면 핵융합을 일으키고 장시간 유지할 수 있으며, 동시에 경제성과 효율성, 즉 투입된 자원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지만 실험실에서조차 이를 실증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가 지난 5일 마침내 핵융합 점화에 성공함으로써 인류는 마침내 지구상의 원자로 내에 ‘태양’을 가져다 놓는 과정의 첫걸음을 떼게 됐다. 연구팀은 1㎜ 크기의 플라스틱 구슬 속에 중수소, 삼중수소를 넣고 192개의 레이저를 쏴 구슬 내부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실험을 실시해 투입량보다 산출량이 많아지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LLNL은 "목표물에 2.05메가줄(MJ·1MJ=100만J·1J=1N)의 에너지를 전달해 3.15MJ의 에너지를 뽑아내도록 함으로써 핵융합의 임계치를 초월하는 실험에 성공했다"면서 "관성 융합 에너지(inertial fusion energy·레이저 핵융합) 방식의 가장 기본적인 과학적 원리를 처음으로 시연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이론에 그쳤던 핵융합 에너지화의 원리가 처음으로 실험실 수준에서 입증됐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인공적으로 핵융합을 연쇄적으로 일으켜 장시간 유지하면서 여기에서 발생한 열로 전력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과학적 원리, 즉 핵융합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점화에 사상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또 인류 역사상 어떤 에너지원이든 투입량보다 산출량이 많은 손익분기점을 초과(Q>1)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인 방식의 발전은 투입에너지 대비 산출량은 30%에 불과하며, 일반 전구의 에너지 효율도 20%에 그친다.
임창환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는 "LLNL이 지난 10년 새 타깃의 크기를 1㎜ 정도로 줄이는 등 레이저보다는 타깃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수소 폭탄과 같은 원리지만 타깃의 크기가 워낙 작아 핵융합이 일어나는 영역이 100㎛에 불과해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저 핵융합 vs 자기 가둠 핵융합
지구상에 이 같은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한 핵융합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다. 우선 태양에서라면 핵융합을 일으키는 초고온·초고압 환경과 에너지의 팽창이 중력에 의해 갇힌다. 이를 ‘중력 가둠(Gravi-tational Confinement)’이라 한다. 그러나 지구에서 핵융합을 일으키고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핵융합의 방식엔 자기장을 이용하는 ‘자기 가둠 핵융합(Magnetic Confinement Fusion·MCF)’과 수소폭탄의 원리를 이용한 ‘관성 가둠 핵융합(Inertial Confinement Fusion·ICF)’이 있다. LLNL이 연구하는 레이저 핵융합이 ICF 방식이다. 쉽게 말해 크기가 작은 ‘수소폭탄’을 만들어 원자로 내부에서 계속 폭발하게 만들어 거기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개념이다.
원리는 이렇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이 먼저 터져 초고온·초고압 상태를 만들어 수소 원자를 융합시킨다. 반면 LLNL 연구팀은 원자폭탄 대신 고출력 레이저를 일종의 기폭 장치로 사용한다. 표면이 아주 매끄러워 레이저 반사가 극히 적은 1㎜의 아주 작은 금 구슬을 만든 후 내부에 중수소·삼중수소 얼음을 채워 넣고 그 핵심엔 중수소·삼중수소 가스를 주입했다. 이후 여기에 2.05MJ 규모의 고출력 레이저 192개를 360도 방향에서 매우 균질한 힘으로 약 4나노초라는 짧은 순간에 조사했다. 고출력 레이저 에너지는 순간적으로 구슬 표면의 금을 기화해 외부로 발산시키며, 이 과정에서 관성(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구슬 내부의 중수소·삼중수소를 향해서도 초고압이 가해지면서 핵융합이 일어나고 중성자·헬륨이 형성되면서 동시에 고압에 의해 갇힌 헬륨이 알파 파티클로서 연쇄 핵융합을 일으킨다.
이 같은 레이저 핵융합 방식은 미국 국가핵안보국(NNSA)이 1990년대 기존의 수소폭탄을 보관·관리·성능 확인 차원에서 실시한 스톡파일스튜어드십(Stock Pile Steward Ship) 프로그램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연구였다. 정현경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박사는 "레이저의 충격파로 고압이 발생해 1㎜ 이하의 작은 구슬들의 부피가 1000분의 1 이상으로 줄어들면서 알파 파티클의 온도가 1억도가 넘는 핫스폿이 생성되고 고압으로 도망가지 못한 그 주변의 얼음 상태였던 중수소·삼중수소까지 가열돼 연쇄 반응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레이저 핵융합의 앞길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 우선 연구 결과 자체가 구슬 내에 주입한 중수소·삼중수소 원자의 2% 정도만 열핵 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데 그쳐 본격적인 ‘점화’를 일으켰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과학계 일부의 지적이다. 또 실험을 한 국립점화시설(NIF)을 짓는 데만 5조원, 매년 운영비가 5000억원씩 투입되는 등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도 ‘실험용’에 불과하다. 풋볼 경기장 3개 크기의 엄청난 규모의 레이저를 동원했다. 에너지 효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조하다. 300MJ의 전기를 투입해 2MJ의 레이저를 생산해냈고, 이를 통해 추가로 얻어낸 에너지의 양은 1MJ 수준에 그친다.
NIF의 고출력 에너지는 1주일에 10번만 발사할 수 있어 실질적인 핵융합 연쇄 반응 지속을 위한 1초당 10번 발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초고출력의 레이저를 언제 든지 쏠 수 있게 전력과 장비를 개발해야 에너지화를 거론할 수 있다. 타깃, 즉 금속 구슬 제작에 엄청난 비용과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문제다. LLNL은 타깃 제작비에만 약 5000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있다. 게다가 고출력의 레이저를 360도 균일한 힘으로 조사하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기술이며, 구슬의 표면도 레이저가 반사되지 않도록 아주 매끄러워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정 박사는 "NIF의 이번 성공으로 일단 과학적 원리가 맞는다는 확신은 얻게 됐다"면서도 "미국 에너지부(DOE)가 이번 실험에 따른 성명서를 내면서 핵융합 에너지원 활용 가능성에 대해 단정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많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08년 한국원자력연구원(KERI)이 일본 오사카대의 고출력 레이저 시설을 기증받아 레이저 핵융합 연구의 기반 시설을 갖췄다. 이후 개보수까지 총 70억원에 가까운 돈이 투입됐다. 하지만 2013년까지 일본·중국과의 국제 협력 연구 과제 몇 건을 수행한 것 외에 국내 자체 연구 실적은 한 건도 없어 사실상 사장된 상태다. 방우석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이번 미국의 성공으로 핵융합의 방식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면서 "토카막 방식 외에도 국내에서 레이저 핵융합 연구를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핵융합 방식에는 MCF가 있다. 세부적으로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고온·고압을 견뎌낼 수 있는 진공 밀폐 용기(토카막·TOKAMAK)에 아주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핵융합 플라스마를 관리·조절하면서 장시간 유지시키려는 토카막 방식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형 핵융합로(K-STAR) 연구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K-STAR는 중수소에 전자기파를 쏴 1억도가 넘는 플라스마 상태로 가열하면서 핵융합을 촉발·유지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장치다.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 초전도자석을 이용해 형성한 강력한 자기장을 활용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지난해 이온 온도 1억도 이상을 30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해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MCF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같은 초전도자석 핵융합로 방식의 성과를 바탕으로 2003년부터 7개국이 공동 추진 중인 국제핵융합로(ITER) 건설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MCF 방식은 전자레인지가 마이크로웨이브로 음식을 덥히는 것과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강력한 전자파 빔을 쏴서 중수소를 가열해 이온 온도가 1억도를 넘어가면 헬륨, 즉 알파 파티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최소한 400초 이상 지속적으로 이를 유지해야 연쇄 핵융합 반응, 즉 점화를 성공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현재 K-STAR의 경우 내부의 밀도가 너무 낮아 알파 파티클의 연쇄 가열 반응이 일어나기 힘들다. 연구자들은 K-STAR보다 훨씬 규모가 큰 ITER가 완성돼 알파 파티클을 가둬 밀도가 높아지도록 할 경우 점화 발생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1950년대 이후 60년 넘게 연구 중이지만 아직 점화 단계를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박사는 "2030년대 들어서면 레이저 핵융합이든 토카막 방식이든 핵융합의 버닝(Burning) 단계를 달성해 본격적인 에너지화 연구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면서 "토카막 방식도 ITER이 완성돼 중성자를 차폐할 수 있고 재활용이 가능한 핵융합로가 만들어지면 400초 이상 가열할 수 있는 연구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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