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오직 인형극 외길...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김연정 기자]
▲ 이탈리아 전통인형극 구아라텔레의 장인, 잔루카 |
ⓒ (사)한국인형극협회 |
특히 공식초청작으로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전통인형극의 장인 잔루카 디 마떼오(Gianluca Di Matteo)는 22년간 인형극 외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축제와 결을 같이 한다. 서울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조차도 새로운 모험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싶다는 그와 공연이 펼쳐진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지난 17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3번째지만... 순탄치 않은 방문
잔루카의 한국 방문은 춘천인형극제(2012년, 2015년)와 안동문화예술의전당(2012년)공연 이래로 세 번째다. 오랜 팬데믹 뒤, '제7회 예술인형축제'에 공식 초청받아 기쁜 마음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오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첫날은 비자 문제가 걸려 어려움을 겪었고, 다음 날에는 독일 경유 비행기를 탔는데 폭설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않은 거예요.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기쁜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죠. 그런데 이번엔 세트가 실린 짐 가방이 도착하지 않은 겁니다. 지금껏 21개가 넘는 국가에서 공연을 해왔지만, 이런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죠."
▲ 극단 문화예술굼터 뽱에서 빌려준 세트 |
ⓒ (사)한국인형극협회 |
제가 쓰던 세트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보니 공연을 새롭게 올리는 기분이었어요. 덕분에 소중한 친구도 하나 늘었고요. 살다보면 예기치 않았던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하는데, 꼭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닌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게 되는 순간도 있으니까요."
잔루카는 2000년부터 인형 작업을 해왔고, 이탈리아 나폴리의 전통인형극 '구아라텔레(Guarattelle)'의 장인으로 손꼽힌다. 이탈리아 내 문화예술협회와 협력해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여러 인형극페스티벌과 극장에서 공연하고, 학교에서 배우,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의 통합을 위한 예술'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인형극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요즘에는 이민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인형을 활용한 워크숍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인형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새 상대방을 더 편하게 인식하게 되죠. 인형을 매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가 이번 축제에서 공연한 '풀치넬라(Le Guarattelle di Pulcinella)'는 17세기 즉흥연희극(commedia dell'arte)에서 유래해 나폴리 인형극의 기본 캐릭터가 된 고전 캐릭터다. 1620년, 실비오 피오릴로(Silvio Fiorillo)가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 소개한 이후 풀치넬라의 다재다능함은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캐릭터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두려움, 사랑, 죽음 등의 심오한 주제를 유쾌하고 흥미롭게 끌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편견 중 하나가 인형극은 아이들을 위한 장르라는 것이죠. 그런데 제7회 예술인형축제는 그런 선입견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어린이부터 성인들까지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인형극을 즐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 이탈리아 전통인형극 <풀치넬라> 공연 중 한 장면 |
ⓒ (사)한국인형극협회 |
"아랫배와 윗배의 힘, 흉성까지 다 써야 해요. 악기를 불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이 악기를 누가 만들었나 싶기도 하지만, 극에 활기를 불어넣기에 열심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아랫배와 윗배, 흉성까지 다 쓰고 있죠."
마법 같은 순간 잊지 않고 간직할게요
그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기는 물론이고, 인형 제작도 직접 한다. 나무를 조각내고, 인형 옷을 바느질하며, 무대 세트도 직접 완성했다.
그가 만든 나무인형들은 미국 애틀랜타의 인형극예술센터, 네덜란드 보르히텐의 인형극장 박물관에도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흔히 인형하면 예쁘고 완벽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그가 만드는 인형은 조금 특별하다.
▲ 직접 만든 인형 '풀치넬라'를 소개하는 잔루카 |
ⓒ (사)한국인형극협회 |
"칠레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의 책 <새가 가장 잘 노래하는 곳(where the bird sings best)>을 읽었는데, 책 안에 실린 인형극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다 읽어가던 때 친구가 인형극 학교 오디션이 있는데, 도전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죠.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마치 운명 같았어요. 인형극을 시작하자마자 이 세계에 매료되었고, 긴 시간을 함께 해왔죠.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
지난해 자신이 진행한 워크숍에 참여한 극단 음마갱깽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는 앞으로 한국의 인형극 단체 및 (사)한국인형극협회와도 더 폭넓게 교류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 한국인형극협회 회원들과 함께한 사진 |
ⓒ (사)한국인형극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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