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의 대관식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까지

이준목 2022. 12. 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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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 '라스트 댄스'로 월드컵 트로피 손에 쥔 아르헨 메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주장 리오넬 메시가 18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트로피를 손에 쥔 채 기뻐하고 있다. 메시는 이번 카타르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는 연장전까지 3-3으로 프랑스에 맞선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 AFP / 연합뉴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이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끝으로 한 달여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12월 19일(한국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와 정규시간-연장전까지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나 승부차기 끝에 4-2로 승리하며 정상에 올랐다.

카타르월드컵은 아시아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20년 만이자, 중동(서아시아) 지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열린 대회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32개국 체제로 치러지는 마지막 대회이기도 했던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기록들을 많이 남긴 대회로 기억될 전망이다.

아르헨티나는 자국에서 열린 1978년과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다. 남미 국가가 월드컵 정상에 오른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브라질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의 생애 첫 월드컵 우승이라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세계 축구계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메시는 발롱도르 7회 수상,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0회, 프랑스 리그1 1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4회 우승 등 클럽무대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수집해왔지만 그동안 월드컵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게 커리어의 유일한 '옥에 티'로 지적받아왔다.
 
▲ 월드컵 우승 트로피 거머쥐고 환호하는 아르헨 메시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리오넬 메시(가운데)와 동료 팀원들이 18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와 전·후반전 90분 동안 2-2, 연장전까지 3-3으로 맞선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 EPA/연합뉴스
 
메시는 지난 2021년 남미의 대륙 선수권대회인 코파 아메리카에서 마침내 국가대항전(A매치) 무관의 한을 풀어냈고, 올해는 꿈에 그리던 월드컵에서마저 4전 5기 끝에 정상에 오르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메시는 이번 대회에서 35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무려 7골 3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라스트 댄스'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메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우승 외에도 숱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결승전까지 개인 통산 26번째 월드컵 경기에 나서며 로타어 마테우스(독일)를 앞질러 역대 최다 출전, 최장 출전시간(2314분) 신기록을 달성했고, 단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16강전, 8강전, 준결승,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한 최초의 선수로도 이름을 남겼다.

또한 이번 대회 기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10골)를 뛰어넘는 아르헨티나 선수 월드컵 본선 득점 단독 1위에 올라 13골로 기록을 늘렸다. 총 5번의 월드컵에서 개인 통산 13골 8도움을 기록, 21개의 공격포인트를 작성한 메시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66년 이후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골에 관여한 선수로도 등극했다.

대회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도 메시의 몫이었다. 메시에게는 2014년 브라질 대회(4골 1도움)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었고, 이는 FIFA가 1982년 골든볼을 제정한 이래 최초의 기록이다. 아울러 메시는 월드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올림픽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며 4관왕을 모두 경험한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로서 월드컵이라는 마지막 화룡점정을 찍은 메시는 마라도나, 펠레, 호나우두 등과 함께 거론되던 역대 최고 선수(GOAT) 논쟁에 있어서도 확실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역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과의 이별이 유력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폴란드)-카림 벤제마(프랑스)-가레스 베일(웨일스) 등을 제치고 메시는 진정한 '최후의 승자'로 남게 됐다.
 
▲ 월드컵 결승전서 마주 선 메시와 음바페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리오넬 메시(왼쪽)와 프랑스 축구대표팀 킬리안 음바페가 18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경기에서 마주 서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와 연장전까지 3-3 접전을 벌이다가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트로피를 손에 쥔 건 1986년 이후 36년 만이다.
ⓒ AP/연합뉴스
 
2연패에 도전했던 프랑스는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졌잘싸'의 모범을 보여주며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프랑스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은골로 캉테, 카림 벤제마, 폴 포그바, 크리스터 은쿤쿠 등 핵심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선수단 내에 감기 증상이 만연하는 악재까지 겹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디디에 데샹 감독은 과감한 세대교체와 베테랑들과의 신구조화를 바탕으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며 다시 한번 결승에 올라 '월드컵 직전 대회 우승팀은 그다음 대회에서 부진하다는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깼다.

킬리앙 음바페는 결승전 헤트트릭을 포함하여 무려 8골을 터뜨리며 메시를 제치고 이번 대회 득점왕에 올라, 메시의 뒤를 이을 차세대 축구황제다운 진가를 증명했다. 최고의 골잡이로 성장한 음바페를 비롯해 쥘 쿤데, 테오 에르난데스까지 이번 월드컵에서 활약한 20대 선수들이 주축이 될 프랑스는 4년 뒤에도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여전히 전망이 밝다.

한편 이번 카타르월드컵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모든 대륙에서 토너먼트 진출팀'을 배출한 대회가 됐다. 모로코는 벨기에-스페인-포르투갈 등 쟁쟁한 우승후보들을 잇달아 연파하고 아프리카팀 최초의 4강진출이라는 신화를 작성하며 이번 대회 최고의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아시아는 한국과 일본, 호주가 나란히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이란과 사우디도 나란히 1승씩을 거두며 대회 초반 '언더독' 돌풍을 주도했다. 다양한 대륙들의 고른 선전은 대회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개최국 카타르는 3전 전패로 체면을 구겼다. 카타르는 에콰도르-세네갈-네덜란드를 상대로 승점 1점도 따내지 못하며 이번 대회 1호 16강 탈락국가-92년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개막전 패배-개최국 전패 탈락이라는 불명예 역사를 수립했다. 개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한 것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1승 1무 1패) 이후 역대 두 번째였다.

이번 월드컵은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 이후 가장 이변이 많았던 대회로도 꼽힌다. 유럽선수권대회(유로2020) 우승국인 이탈리아가 월드컵 본선진출조차 2회 연속 실패한 것을 시작으로, 황금세대를 자랑하던 벨기에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큰 충격을 줬다. 또한 독일(vs 일본), 포르투갈(vs 한국, 모로코), 스페인(vs 일본, 모로코), 아르헨티나(vs 사우디) 등이 조별리그부터 한 수 아래로 꼽히던 언더독들에게 잇달아 발목을 잡히는 반전이 속출하며 '공은 둥글고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축구의 진리를 확인시켰다.

과학이 축구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는 것도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지난 러시아대회의 히트 상품이었던 VAR(비디오 판독)의 확대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는 반자동 오프사이드 시스템(SAOT)이 새롭게 도입되며 인공지능(AI)이 경기장에서 뛰는 22명의 선수들과 공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여 오프사이드 반칙이 나오면 곧바로 이를 심판 측에 전달하는 게 가능해졌다. 많은 팀들이 이전같았으면 확인이 어려웠거나 인정되었는 득점이 비디오 판독으로 인하여 미세한 차이로 취소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대회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축구의 단점이던 시간지연 행위를 방지하고 실제 인플레이 시간을 철저히 계산하여 반영하는 '고무줄 추가시간'도 이번 대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였다. 선수 부상이나 골세리머니 등으로 지연된 시간을 모두 반영하면서 추가시간이 5분에서 10분 이상 늘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는 경기 후반 최대의 변수로 떠올랐다. 과학적인 분석과 통계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애매한 판정 논란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은 호평을 받을 만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이 하는 스포츠에서 심판을 둘러싼 논란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많은 참가국들이 심판의 경기운영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한국과 가나의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앤서니 테일러 주심은 심판으로서의 재량권을 넘어서 한국의 코너킥 찬스에서 경기를 중단한 데 이어 이에 항의하는 벤투 감독을 퇴장시키는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공정성 논란의 중심에 선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격렬했던 경기로 꼽히는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8강전에서는, 옐로카드가 18장이나 쏟아졌고 양팀 선수들이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갈 만큼 경기가 과열되면서 심판의 미숙한 경기운영이 많은 지적을 받는 등, 심판의 자질을 둘러싼 논란과 불신은 여전했다. 

또한 이번 카타르월드컵은 역대 월드컵 사상 개최국을 둘러싼 구설이 많았던 대회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전망이다. 카타르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지만, 역대 대회의 전례를 깨고 겨울시즌(11~12월)로 밀린 개최 시기 문제를 비롯하여, 카타르 내 인권과 노동자 탄압 문제, 경기장 주류 판매 금지, 반(反) 성소수자 정책 등 글로벌 정서에 반하는 중동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를 둘러싸고 개최국 자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FIFA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의 64억달러(약 8조 3840억 원)를 훌쩍 뛰어넘는 75억달러(약 9조 8250억 원) 정도의 수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한편으로 상업화에만 눈이 멀어 축구의 보편적 가치나 선수 혹사 문제 등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축구는 카타르월드컵에서 12년 만의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수립하며 모처럼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첫 2경기에서 1무 1패에 그쳤지만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에 2-1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루과이를 다득점으로 앞서면서 극적으로 16강에 올랐던 대반전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 중 하나로 꼽혔다. 비록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전력차와 체력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완패했지만 실망하기보다는 모두 박수를 보냈을 만큼 태극전사들은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4년 4개월간 빌드업과 점유율 축구를 이식한 역대 최장수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의 리더십, 한국축구의 미래로 부상한 조규성-이강인-황희찬-황인범 등 영건들의 맹활약, 20년 만에 한일월드컵의 열기를 재현해낸 뜨거운 거리응원, 주장 손흥민의 마스크 투혼과 최대 유행어가 된 '꺾이지 않는 마음' 등은 올해의 태극호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역사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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