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광고 빼고 안전 메시지"…무사고 거리응원 만든 진심
붉은악마 부탁에 '국가대표=KT' 자부심으로 승낙
안전인력 기존 대비 2배로…계단·내리막길 폐쇄
우천·한파 대비해 '우비존' '한파 쉼터' 마련
"상업적 메시지 배제하고 국민 응원 지원하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극한의 확률을 뚫고 '2022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한 순간 서울 광화문광장은 카타르 알라이얀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실점을 허용했지만 거리응원에 나선 붉은악마와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한파를 뚫고 태극전사들에게 전해져 기적의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10·29 이태원 참사로 슬픔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퍼진 순간이었다. 이 경기를 포함해 3번의 조별리그와 16강전 총 4회에 걸쳐 약 10만명이 광화문광장을 찾았지만 안전사고는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대와 안전펜스에 광고 문구 대신 안전 유의사항으로 가득 채운 '붉은악마' 공식 파트너 KT의 진심이 빛을 발했다.
붉은악마 어려운 요청에 선뜻 손 내민 KT
이번 거리응원을 지원한 KT는 처음 붉은악마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10·29 참사의 여파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최고조에 달해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 거리응원을 기획한 김사우 KT IMC담당 과장은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KT 이스트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원래대로라면 다양한 온·오프라인 연계 마케팅을 펼쳤겠지만 거리응원에 집중했다. 실익은 없었다"며 "'국가대표=KT'라는 자부심 아래 거리응원 문화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붉은악마 활동을 했던 김사우 과장은 KT 입사 후 수년간 축구 마케팅 담당자가 되고 싶다고 어필해 '덕업일치'(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음)를 이뤄냈다.
조호태 붉은악마 서울지부장은 김 과장의 오랜 파트너다.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상황에서도 KT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조호태 지부장은 "힘들어하는 국민을 위로하자는 취지에서 다시 거리응원을 추진했다. 붉은악마 자체는 예산이 없는 동호회 개념이다 보니 여러 업체에 문의하고 KT에도 부탁했다. 광화문광장은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못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는데 흔쾌히 승낙했다. 축구 팬으로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붉은악마와 KT는 서울시와 종로구청 등의 승인을 받기 위해 무엇보다도 안전에 방점을 찍었다. 아이돌 가수를 앞세운 축제 분위기 대신 차분한 응원을 약속했다. 이미 올여름부터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빨리 무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경사로 차단·응원 공간 확보…휠체어 존까지
현장 투입 인력은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렸다. 지난 3일 포르투갈전에는 경찰 850명(특공대·기동대 등)과 소방 80명, 서울시 안전요원 300명 등을 현장에 배치했다.
무대 앞쪽에 서서 응원하는 붉은악마와 달리 시민 대부분은 앉아서 경기를 보는 특성을 고려해 어느 한 곳에 사람이 모이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섹터를 5개로 나누고, '명당'으로 불리는 세종문화회관 계단과 해치마당의 내리막길을 경사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폐쇄했다. 각 섹터 뒤에는 휠체어를 탄 시민도 응원을 즐길 수 있는 별도의 존을 만들었다.
제곱미터(㎡)당 인원은 최대 3명으로 제한했다. 4만명이 모인 브라질과의 16강전에는 LED 스크린 2개를 추가로 설치해 인파를 분산했다.
또 2차전은 종일 내린 우천으로 전체 구역을 '우비존'으로 운영했다. 우산은 다른 시민에 상처를 입힐 수 있어서다. 부쩍 추워진 3차전부터는 '한파 쉼터'(최대 6동)를 구축해 추위에 대비했다.
KT는 무사고 거리응원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지만 안전펜스와 무대 일부에 회사 CI(기업 이미지)를 걸었을 뿐 일체의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았다.
김사우 과장은 "상업적 메시지는 배제하고 20년 넘는 KFA 후원사로서 든든하게 선수들이 잘 싸우고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의 응원을 지원하자는 경영진의 메시지를 반영했다"고 했다.
실무를 담당한 허혜진 KT IMC담당 대리는 사상 첫 겨울 월드컵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가 몰려 바짝 긴장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허혜진 대리는 "경기 송출에 필요한 이동식 LED와 셋톱박스, 인터넷을 차량 통행을 위해 철거했다가 밤에 다시 연결했다. 혹시나 중간에 케이블이 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모든 팀원이 달라붙어 끌고 왔더니 화면이 딱 나왔다. 안도와 희열을 느꼈고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고 말했다.
화면 속 해설자의 음성에 KT 셋톱박스 '기가지니'가 대형 LED에서 반응하자 시민들이 "노린 것 아니냐"는 웃음 섞인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제 월드컵은 4년 뒤를 기약하게 됐지만 마케팅을 뛰어넘은 KT의 스포츠 사랑은 계속된다.
김사우 과장은 "무거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와 한파, 새벽 경기 악조건에 힘이 빠지기도 했는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며 "내년에도 좋은 스포츠 마케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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