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젖소 101마리 네팔 간다…美원조가 만든 '나눔의 기적' [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2022. 12. 1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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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움으로 축산업 일군 한국
민·관 힘합쳐 해외로 첫 생우 송출
'헤퍼코리아' 국가간 나눔 캠페인
목장주·개인·기관 등 기부에 동참
미국 원조분유 먹고 자란 목장주
소 지원 받아 창업한 목장주 손자
의사 모친 유지 받든 유산 기부도
국경 초월 '민들레 홀씨' 나눔 실천
세상을 더 따뜻하고 밝게 만들 것
장세정 논설위원

한반도는 6·25전쟁 와중에 사람뿐 아니라 가축도 씨가 마를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표적 농업 분야 자선 비영리기관인 '헤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은 1952년부터 1976년까지 44차례에 걸쳐 가축 3200여 마리를 화물선과 항공기 편으로 한국에 보내줬다. 당시 젖소·황소·염소·돼지·양·닭·토끼는 물론 종란(21만8000개)과 꿀벌(150만 마리)까지 태평양을 건넜다. 기적적인 '노아의 방주(Noah's Ark) 작전'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적 축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민간 자선 단체 헤퍼코리아 이혜원 대표가 네팔행 항공기를 타기 위해 경기도 화성 근미목장 검역시행장에서 대기중인 젖소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 이 대표는 "멀리 시집보내는 마음"이라고 했다. 장세정 기자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형 젖소 종자(종모우 2마리와 인공수정용 정액)와 젖소 101마리를 오는 22일부터 내년 1월까지 다섯 차례로 나눠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편으로 네팔에 보낸다고 최근 발표했다. 한국 젖소 한 마리당 연간 우유 생산량은 세계 5위(2021년 1만423kg)인데 'K-젖소' 생우가 해외로 나가는 것은 처음이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민·관이 함께한 국제개발협력사업(ODA)의 새 모델을 만든 '산파'인 헤퍼코리아 이혜원(54) 대표에게 사연을 들어봤다.

목장주들과 개인 및 단체가 기부한 젖소들이 경기도 근미목장에서 네팔행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도움으로 낙농 선진국이 된 한국은 네팔에 젖소 101마리를 보내 현지 낙농업 발전을 돕기로 했다. 장세정 기자

-생우를 보내는 이유는.

"헤퍼(암송아지)의 철학은 '한 잔의 우유가 아닌 한 마리의 젖소(Not a cup, but a cow)'다. 6·25전쟁 이후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일회성 원조가 아니라 생계소득을 창출해 농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한국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지위가 바뀐 유일한 사례다. 한국이 과거에 받은 나눔을 다른 나라에 돌려주려고 기획한 헤퍼코리아의 첫 국가 간 나눔 캠페인이다."
-수많은 나라 중에 왜 네팔인가.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은 빈곤층의 약 95%가 농업에 종사하는 만큼 농촌 소득 개선이 절실하다. 네팔 토종 젖소의 마리당 우유 생산량(연간 1000kg)은 한국의 10%에 못 미친다. 단백질이 부족한 네팔 5세 미만 어린이의 약 32%가 발육 부진, 24%가 저체중으로 고통받는다. 한국이 기부한 젖소는 네팔 신둘리(Sindhuli) 지역의 시범 낙농단지에 보내져 현지 축산농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게 된다. 2026년까지 지원사업을 계속해 축산 농가도 돕고 어린 생명도 살릴 것이다."

장주익 수원축산농협 조합장, 이혜원 헤퍼코리아 대표, 이재형 평택축협 조합장, 박중근 근미목장(검역시행장) 대표가 경기도 화성 근미목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곳에서 검역이 이뤄진다.[헤퍼코리아]

-생우 국외 반출은 처음이라 기술적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첫 관문은 동물검역증 체결이었다. 검역 조건은 지난해 6월부터 양국 가축 검역본부가 빠르게 협상했는데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화하기 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둘째 관문인 항공 운송 수단 확보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생우 해외 운송에 참여 의사를 밝힌 항공·해상 물류 업체인 스피드마크코리아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소유 러시아산 일류신 화물기를 접촉했는데 지난 2월 전쟁이 터지면서 무산됐다. 코로나19로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해 사용해온 아시아나항공이 내년에 여객기로 재전환하기 전에 참여하면서 운송 문제가 극적으로 풀렸다."
-생우 구입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지난해 4월부터 2개월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전국의 수많은 목장주들이 젖소를 기부했고, 개인과 기관의 참여도 줄을 이었다. 안모씨 자매는 산부인과 의사로 일한 어머니의 생명 존중 뜻에 따라 유산 일부로 젖소 50마리를 기부했다. 미국의 원조 분유를 먹고 자란 이시돌 목장(경기도 이천) 경병희 대표가 젖소 세 마리를 기부했다. 기독교 농민학원을 졸업한 뒤 헤퍼 인터내셔널이 보내준 소를 키워 장호원 목장(경기도 여주)을 일군 고 최은영 목장주의 손자 최충희 임마누엘 목장(여주) 대표가 젖소 네 마리를 기증했다."

경기도 화성 근미목장 검역시행장에서 네팔행을 기다리는 젖소들의 귀에 이력번호와 기부자가 붙인 이름표가 붙어 있다. 생후 6~10개월령, 체고 140cm 이하여야 항공기를 탈 수 있다. 장세정 기자

-모두의 참여가 기적을 만든 것 같다.
"축산 분야 ODA 전략을 제시한 농협 젖소개량사업소 조주현 박사, 젖소들의 건강을 책임진 서울우유 육우진료소 김영찬 원장, 항공 운송을 성사시킨 스피드마크코리아 신명근 이사와 박완선 과장, 낙농가의 동참을 견인해준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 박근하 국장과 강성우 계장, 서울우유 낙농지원팀 사혁 상무와 정기희 과장 등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특히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정욱 축산정책국장과 정재환 축산경영과장, 정미영 국제협력국 검역정책과장께도 감사드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감사하며 보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다. 직접 보은(報恩)도 좋지만, 나눔을 확산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곧 성탄절이다.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나눔 정신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지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하고 밝아질 것이라 믿는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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