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의 퍼스펙티브] 흉부외과 의사 상당수가 고혈압·당뇨병 치료, 왜?
의사 ‘기피 과목’ 문제 풀 수 없나
일부 기피 과목에서 의사가 부족해 필수적인 진료에 공백이 생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는 오래전부터 기피 과목이었고, 최근 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응급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건으로 신경외과도 기피 과목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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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과·산부인과 등 인구 대비 전문의 숫자 미국보다 되레 많아
병원 열거나 요양병원서 일하며 종합병원에선 인력 부족 현상
의료 수급정책 실패 요인 커…출산율 낮아진 산부인과 예외
기피 과목 진료 담당하는 병원 지정해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
신경외과 3.5배, 외과 1.7배 많아
환자의 생사가 걸린 진료를 담당하는 과목에서 의사가 부족해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를 못 받는 일이 계속되는데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진단과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피 과목인 흉부외과와 신경외과가 미국에서는 인기 과목이고, 우리나라처럼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진료를 못 받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제도를 고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을 짐작하게 한다.
의사들은 다른 과목에 비해 훨씬 힘들게 하는데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서 전공의 지원이 줄어들고 그 결과 전문의 배출이 줄어들어 생기는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기피 과목의 건강보험 수가를 획기적으로 올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이렇게 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따져보자.
먼저, 기피 과목 의사는 정말 부족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사 수를 비교해보면 미국보다 우리나라 전문의 수가 대부분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신경외과 3.5배, 외과 1.7배, 산부인과 1.6배, 흉부외과 1.3배로 모두 미국보다 전문의가 더 많았다. 〈그래픽 위〉 소아과만 미국보다 약간 적었다.
전문 분야와 무관한 진료 성행
많은 사람이 기피 과목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전공의 지원율이 낮기 때문이다. 이는 해당 전문과목 전공의 정원을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책정해서 생기는 착시 현상이지 실제로 해당 과목의 전공의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소아과처럼 출생률이 낮아져 전문의 수요가 줄어든 과목은 예외다.
그러면 전문의는 부족하지 않은데 왜 병원에는 의사가 부족한 것일까. 대형 종합병원에 있어야 할 전문의들이 개원하거나 요양병원에 취업하기 때문이다. 큰 종합병원에서 수술해야 할 흉부외과 전문의 10명 중 4명은 개원을 하거나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흉부외과 의사는 미국보다 1.3배 많지만 실제로 큰 병원에서 일하는 흉부외과 의사는 미국보다 20% 이상 부족하다. 개원한 흉부외과 전문의 상당수는 고혈압·당뇨병 환자와 같이 자기 전문분야와 무관한 진료를 하거나 〈그래픽 아래〉, 하지정맥류 수술 같은 고수익 비급여 진료를 하고 있다.
이처럼 큰 종합병원에 있어야 할 전문의가 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개원한 의사들이 다른 분야 환자를 진료하는 일은 외과·산부인과·소아과도 마찬가지이다. 큰 병원에 있어야 할 전문의가 의원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것은 자원 낭비이고,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진료하도록 방치하면 의료의 질은 떨어진다.
의보 수가 올려준다고 해결 안 돼
어쩌다 큰 병원에서 일해야 할 외과·흉부외과 의사는 왜 의원에서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진료하거나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일까. 건강보험 수가 낮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병원이 적절한 수의 전문의를 고용하게 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사례를 보면 건강보험 수가만 올려준다고 병원에 전문의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는 기피 과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흉부외과 건강보험 수가를 2배로 인상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수가 인상에도 병원은 흉부외과 의사를 더 뽑지 않았고 전공의 지원율도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
정부가 건강보험 수가를 올려주면서 적정한 인력 기준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수가 인상으로 병원은 수입이 늘었지만, 그 돈으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 수가만 올려주면 병원이 알아서 인력을 충원할 것이라고 생각한 안이한 정부 탓에 지난 10여 년간 1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재정을 쓰고도 흉부외과 기피 과목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공의를 마치고 갓 전문의가 된 의사들이 큰 병원에서 일하고 싶어도 뽑아주는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의원에서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보고 있다.
요약하면 기피 과목 문제의 본질은 전문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배출된 인력을 필요한 곳에서 일하도록 하지 못하는 잘못된 의료정책의 결과이다. 기피 과목 문제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진단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한 보건복지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환자 수에 따라 전문의 충원해야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첫째, 기피 과목 진료를 담당하는 병원을 지정해서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저출산으로 의료 수요가 줄고 있으니 공급을 줄여야 하고, 외과와 흉부외과는 환자 수보다 병원이 너무 많아 환자와 의료진이 모두 분산되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소아과에는 소아전문병원이 있고, 흉부외과에는 심혈관전문센터가 있고, 산부인과에는 취약지 분만병원 제도가 있다. 전문과목별 의료 수요에 맞게 적절한 수의 센터를 지정하고 진료 기능을 명확히 하면 된다.
둘째, 병원이 부족한 전공의 대신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을 만큼 진찰료·입원료·수술료를 획기적으로 올려줘야 한다. 동시에 인력 기준을 만들어서 병원이 반드시 환자 수에 비례해서 전문의를 충원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지정된 병원에만 지원이 집중되기 때문에 많은 재정을 들이지 않고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셋째, 어떻게 해도 전공의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에 전공의가 하던 당직과 응급실 진료 등의 업무를 전문의와 전문 간호사가 나눠서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전문의가 부족해서는 하기 어렵지만, 병원이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하면 가능한 일이다. 전공의 업무 중 위임 가능한 업무를 전문 간호사가 수행하도록 해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병원은 다 이렇게 운영한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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