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또 정치권 '호구' 될 건가…86세대 본받아라, 뻔뻔해져라 [강덕구가 고발한다]
한 번 당한 사람이 계속 당하면, 호구(虎口)라고 부른다. 이 시대 호구는 MZ세대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2024년 총선에 대비한 MZ세대 차출론이 나오고 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MZ세대, 미래 세대의 새로운 물결에 공감하는 그런 지도부가 탄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준석 전 대표의 몰락을 본 이라면, 여당의 MZ 구애가 ’보여 주기용 쇼‘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키며 당 대표가 된 이준석 전 대표는 유튜브 채널 가세연이 제기한 성 접대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대표를 보고,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던 소위 이대남은 이제 윤석열 대통령을 제일 혐오하는 집단이 되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에 의해 발탁된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선 후 도와주는 의원이 아무도 없어 당 대표 출마 선언을 국회 앞에서 했다. 이동형과 김용민 등 친이재명 스피커는 박지현을 향해 날 선 말을 뱉었다. 어느 시기부터 신세대라는 호칭으로 젊은 정치인을 발탁해 얼굴마담을 맡긴 후, 필요성이 떨어지면 내다 버리는 모습이 관행처럼 고착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MZ세대를 발탁해 환심을 얻겠다는 여당의 의도는 미심쩍을 수밖에 없다.
물론 새삼스러울 건 없다. 한국 정치에서는 중요한 길목마다 세대론이 호출됐다. 세대론이 작동해온 방식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86세대처럼 청년 정치 주역으로 평가받는 경우다. 두 번째는 88만원 세대처럼 가난하고 무력한 이미지로 규정되는 경우다. 386이란 명명은 1999년 조선일보 기획에서 시작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운동권 세력을 한국 사회를 움직일 주력으로 꼽았다. 재야인사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으로 여야 교체를 이룬 후 386세대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비록 386세대는 기성세대인 조선일보에 의해 명명됐지만, 한국 사회의 주류를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88만원 세대는 불쌍하고 무력한 이미지인 신자유주의의 피해자로 호명 당했다. 86세대처럼 군부독재에 저항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88만원 세대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실험용 쥐처럼 간주되었다. 그래서인지 ‘저항’은 일종의 스펙이 되었다. 중산층 출신 대학생들이 자퇴선언을 하고, 대자보를 붙였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란, 다니는 대학을 자퇴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자퇴 선언만큼 우스운 일이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가까운 지인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거대한 저항인 것처럼 실어 날랐다. 88만원 세대의 정치는 86세대의 그것처럼 사회 전반의 기조를 바꾸는 데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MZ세대론은 어떨까. 88만원 세대에 가깝다. 박지현·이준석 같은 청년 정치인이 MZ세대를 대변하며 등장했지만, 결국 장기판의 졸로 전락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이 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발탁한 소위 박근혜 키드였다. 이 전 대표의 정치란 여의도 정치 바깥을 나가지 못했다. 기층에 있는 시민의 삶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바른미래당에서 손학규 전 대표, 안철수 전 대표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TV 프로그램 패널로 여의도 정치의 현안을 분석했다.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불꽃페미단’으로 명성을 얻었던 박 전 비대위원장도 이 전 대표의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반복되는 청년 정치인의 운명을 목격한 탓일까? 이 전 대표는 얼마 전 “MZ세대는 없다”고 말했다. MZ세대의 등에 올라타 열풍을 일으킨 그였기에, 이 발언은 의아하게 들렸다. 세대포위론이라는 전략을 구상했던 그답지도 않았다. 자신에 들러붙은 청년 정치인 이미지를 지우려고 했을 수 있다. 박근혜부터 윤석열까지, 자신이 손잡았던 정치인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온 염증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MZ세대라는 단어에서 피로함을 느끼는 청년 세대의 심경을 반영하는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도가 무엇이든 세대론 자체를 부정하기란 힘들다고 본다. MZ세대를 부정한다고 그 세대가 사라질 리 없기 때문이다.
세대론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86세대는 정치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결집했다. X세대는 90년대의 유례 없는 호황을 경험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문화를 향유했다. MZ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대표 발언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견 타당해 보인다. MZ세대는 공유할 정치적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젠더 이슈와 관련해 극단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그렇다고 단일한 문화 소비 경험을 갖는 것도 아니다. X세대는 오랫동안 폐쇄됐던 문화를 외부로 개방한 시대를 살았다. 반면 MZ세대는 전 세계의 문화를 동시에 경험한다. 단일한 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MZ세대는 정치적 경험을 공유하지도 못했고, 단일한 문화를 경험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게 MZ세대론을 부정할 근거는 아니다. 한국 정치는 계급이나 인종이 변수로 작동하기 힘들다. 이는 청년 정치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청년 정치는 특정 계급이나 특정 인종 같은 특정 집단에 기반을 둘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정치에 참여하는 서구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의 청년 정치인은 자생 없이 철저히 선발되기 때문이다.
중산층 출신 대학생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의 세대론은 청년 정치를 전광판에 비치는 홀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언론이나 정치계가 세대론을 만들면, 청년 정치인은 홀로그램 속에서 세대론을 연기했다. 이 전 대표가 박근혜 키드로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평범한 노동자 남성을 대변한다고 자임했다. 직접 택시를 몰며 평범함을 추구한 건 세대론 뒤에 있는 ‘진짜 청년’의 얼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는 결국 세대론을 돌파하지 못하고, 세대론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세대론의 무용론을 말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계급이나 인종이 결정적 변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세대론이 큰 힘을 갖는 배경이다. 세대론이 부정적으로 작동할 때조차 세대론은 하나로 뭉치기 어려운 청년 집단을 묶어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다시 음미해 봐야 한다. MZ세대 차출론은 오래전부터 한국 정치에서 활용된 낚시에 가깝다. 이 전 대표나 박 전 비대위원장은 모두 권력이라는 미끼에 걸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년이 사라지지 않듯 청년 정치인도 사라지지 않는다. 청년 정치인을 대체할 또 다른 청년 정치인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청년 정치인들은 이런 수난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MZ세대 정치인들은 86세대 정치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들은 기성세대를 역이용했다. 세대론을 마키아벨리적으로 이용했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자 군부독재의 저항자로 자신들을 포장했다. 이 시대 청년 정치인 역시 호구가 되기보다 자청해서 호랑이 입으로 들어갈 강단이 있어야 한다. 또 어느 순간에는 MZ세대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필요할 때 다시 MZ세대를 호명하는 정치인처럼 뻔뻔해지길 바란다.
강덕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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