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도 출연... 이렇게 된 이상 유튜브로 간다 [이제 겨우 절반 살았을 뿐입니다]

이정혁 2022. 12. 1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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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출연 이후 '165 프로덕션'까지 만들긴 만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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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혁 기자]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해바라기에 물을 주고, 식단표를 수정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아침을 먹고 나면, 서로의 혈압약을 챙기고, 볕이 좋은 날에는 건조기 대신 건조대에 빨래를 넌다. 커피 한 잔, 책 한 권의 여유….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방송이 나간 후,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는 나보다 더 바빠졌다. 하루 평균 두 통의 전화가 올까 말까 한 나의 스마트 폰은 연신 울려대는 엄마의 핸드폰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누적된 피로 탓인지, 혈압 조절이 안 되고 두통이 심해서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동생 또한 촬영 때문에 미루었던 축농증 수술을 받았다.

한 지붕 아래에서 살던 우리의 동거에 미세한 균열의 조짐이 보였다. 며칠간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왔을 때,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었다. 나는 내방에서 블로그에 답글을 달고, 엄마는 엄마 방에서 지인들과 통화를 하고, 동생은 자기 방에서 수술 후 회복 중인 상황. 다시 말해 함께 살지만, 따로 사는 상황이 되었다. 엄마랑 놀기 프로젝트가 아닌, 그냥 엄마랑 살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간단한 나들이마저 망설여지게 했다. 겨울이 되면 천식이 심해지는 엄마. 축농증 수술 후 세상의 맛과 의욕을 잃은 동생. 블로그 포스팅을 핑계로 노트북 앞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담까지 붙은 나. 골골대는 백수 셋의 실루엣은 아무리 밝게 채색해도 잿빛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엄마랑 계속 놀고 싶어서
 
▲ 유튜브 촬영을 위해 5년된 마이크를 꺼내다 소꿉장난 처럼 시작한 유튜브 촬영. 마이크 하나 설치하고 우리는 회사를 설립한 착각을 일으켰다.
ⓒ 이정혁
 
셋이 힘을 합쳐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 된다.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이제 우리는 카메라가 두렵지 않은 방송인 아니던가? '165 프로덕션'. 영상물을 자체 기획, 제작하는 3인 방송국의 탄생이다. 총괄 연출은 내가, 촬영 및 편집은 동생이, 총무와 모니터링은 엄마가. 글로 쓰는 것 말고 뭐라도 찍어보자. 그렇게 우리의 유튜브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 유튜브 배너 디자인 유튜브 배너 디자인과 촬영 편집까지 가내수공업으로 모두 진행하다.
ⓒ 이정혁
 
물론, 정식으로 회사를 차려 사업자로 등록한 것은 아니다. 소꿉장난 같은 회사 놀이. 무직 3인방이 직함 만들어 놀아보겠다는데, 딴지를 걸 자 누구인가? 어쩌면 방송의 피가 내재 되어 있던 우리의 본능을 <인간극장>이 일깨운 것인지 모른다. 창업 첫날,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회식부터 했다. 계산은 누가 했더라?
의욕은 충만하였으나, 막상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다음날은 월차를 쓰고 모두 쉬었다. 100% 재택근무에, 컨디션 따라 마음껏 휴가를 쓸 수 있는 꿈의 직장.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했다. 막연하게나마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공유했다. 우리는 큰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밥만 먹고 재밌게 살자.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준비하다 보면 뭔가 떠오를 것이다.
 
▲ 1차 스튜디오. 동생 방에 각종 장비를 설치하고, 데모버전 촬영을 진행 중이다.
ⓒ 이정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움직이자. 일단, 스튜디오부터 만들어야 한다. 책상 하나 놓을 자리조차 마땅치 않은 내 방은 불가능하다. 집주인인 엄마 방은 성역이다. 만만한 동생 방이 낙점되었다. 5년 전에 샀다가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창고행이 되었다는 동생의 마이크를 설치했다. 마이크 하나만 달아놓았는데, 엄청난 아우라가 느껴진다. 완전 방송국인데? 우리는 손뼉 치며 매우 흡족해했다. 이제 뭐든 찍을 수 있겠어, 카메라만 있으면.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들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전자상가를 뒤져 가성비가 좋다고 소문난 카메라를 구매했다. 일단, 뭐든 찍어보자. 데모 영상을 촬영하고 나서, 우리는 조명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우중충한 얼굴도, 반짝반짝한 동안으로 재탄생시켜준다는 조명의 위력을. 3개월 할부로 조명도 하나 질렀다. 방송국의 위엄을 갖춘 스튜디오 세팅의 완료. 아, 근데 너무 좁다.

침대가 있으니, 책상을 최대한 붙여도, 딱 한 사람이 앉을 공간밖에 없다. 문제는 카메라 삼각대를 놓을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침대 위에 삼각대를 올려놓으니 작은 충격에도 카메라가 울렁거린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 앉은뱅이 밥상을 엎어 놓고 그 위에 삼각대를 올려서 찍어본다. 문제는 몇 가지 장비만으로 꽉 차버린 동생의 방이었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충분했다.
 
▲ 최종 세팅된 거실 스튜디오. 2주에 걸친 토론과 논쟁과 시행착오 끝에 165프로덕션은 16분짜리 유튜브 예고편의 촬영을 마쳤다.
ⓒ 이정혁
 
옥신각신 논쟁 끝에 거실을 포기하기로 한다. 소파 한 개를 옮기고, 그 자리에 책상을 설치했다. 소파 두 개(동생과 엄마의 살림을 합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현상)와 식탁 하나와 책상 하나가 거실을 꽉 채워서,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한다. 스티브 잡스도 차고에서 시작했잖아? 팀의 우두머리는 팀원들을 긍정의 화신으로 세뇌해야 한다.

혼자 시작했으면, 진즉에 포기

그렇게 모든 장비가 설치되었으나, 문제는 결국 본질에서 터졌다. 그래서 이제 무슨 내용을 찍을 건데? 뭐, 그냥 감사엽서 쓰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나 해보지. 그걸 누가 봐? 나는 평소에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거의 모든 삶의 지혜를 유튜브를 통해 얻는다. 유튜브를 모르는 자와 유튜브를 아는 자 틈에서 엄마는 누구의 편도 되어줄 수 없었다.
 
▲ 유튜브 콘텐츠중 하나인 감사엽서 몇가지 콘텐츠를 고민한 끝에 세가지로 압축하였다. 그 중 하나인 감사엽서.
ⓒ 이정혁
 
콘텐츠의 부재.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냥 카메라 들이대고 찍으면 될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와, 시간과 공을 들여 애써 만든 유튜브를 아무도 안 보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동생의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이럴 거면 때려치우자, 폭탄 발언을 하고 집을 나섰다. 일단, 도전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나의 무모한 방법이 이번에는 먹히지 않았다.

동생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솔직히 촬영 시간보다 촬영 후 편집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데, 구독자 서너 명을 위해 유튜브를 제작한다고? 작가주의 감독에게나 어울릴 법한 발상이었다. 바다를 보며 냉정함을 되찾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콘텐츠를 적용해보자. 화해와 소통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예고편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렇게 첫 촬영을 마쳤다. 오디오 작업, 섬네일 작업, 대문 사진 디자인 등등. 십여 분짜리 유튜브 한 편을, 가내수공업을 통해 만드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혼자 시작했으면, 진즉에 포기했을 길이다. 세 동거인은 각자 맡은 바, 역할과 소임을 다하며, 첫 작품을 만들어 냈다. 엄마의 역할이 궁금하다고? 차츰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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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사는 발행 후 개인블로그인 https://blog.naver.com/irondownbros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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