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13년 넣었지만 '계륵'…대출 갚으려 역대급 해지러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장모(49)씨는 13년간 들고 있던 주택청약종합저축을 지난달 말 해지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학원비를 내기 위해서다. 무주택자인 장씨는 청약종합저축이 출시한 2009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매월 5만원씩 청약통장에 넣었다. 어느덧 800만원이 쌓여 서울에서 1순위 청약 자격(102㎡ 이하)이 생겼지만, 새 아파트 장만의 꿈은 접기로 했다.
집값이 떨어지는 데다 평소 쌈짓돈처럼 사용했던 마이너스 통장(신용대출) 이자 부담도 확 늘어서다. 장씨는 “목돈이 필요하면 마통을 활용하고 성과급 등 여윳돈이 생기면 갚는 식으로 생활했다”며 “그런데 마통 대출이자가 7%로 뛰고 청약통장 금리는 2%에 불과해 800만원을 묵혀둘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기에 내 집 마련의 지름길로 통하던 아파트 청약통장이 ‘계륵’ 신세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청약통장을 포기하는 수요가 눈덩이처럼 늘고 있어서다.
18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2661만2817명으로 전달보다 21만990명 줄었다. 한 달 사이 21만명이 넘는 가입자가 청약종합저축을 해지했다. 2009년 5월 청약종합저축 출시 이후 월별 감소폭이 가장 크다. 청약종합저축은 민간아파트와 공공아파트에 모두 청약할 수 있는 종합 통장이다. 출시 이후 매월 가입자가 늘었지만, 올해 7월 처음 가입자 수가 줄었다. 지난 7월 1만2658명이 감소한 후 9월 3만3705명, 10월 14만6031명으로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청약통장이 매력을 잃은 원인으로는 우선 분양시장 부진이 꼽힌다. 집값 고점 우려가 확산하면서 새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는 수요가 줄었다.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시세차익을 노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이다. 실제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올해 전국 1순위 청약 경쟁률(7일 기준)은 8.5대 1로, 2014년 이후 가장 낮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이 4.79% 하락한 여파로 풀이된다. 여기에 올해 들어 기준금리 상향 조정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한 목돈 대출을 받는 부담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16일 기준 시중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농협)의 담보대출 금리(변동형 기준)는 5.19~7.72% 수준이다. 신용대출은 6.2~7.33%까지 올랐다.
기준금리 인상에 맞춰 꾸준히 오른 시중은행의 예ㆍ적금 이자와 달리, 주택종합청약저축 금리가 낮은 수준에 머무는 점도 청약통장을 깨도록 만든 요인이다.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금리는 2016년 8월부터 계속 연 1.8%에 머물다가 지난달이 돼서야 국토교통부가 금리를 연 2.1%로 0.3%포인트 올렸다. 시중은행 예금과 금리 격차는 여전히 크다. 16일 기준 시중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농협)의 정기예금(1년 만기) 금리는 연 4.75~4.9% 수준이다. 적금은 연 8%까지 받을 수 있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불황기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카드론ㆍ신용대출 등의 빚을 갚는 데 내 집 마련을 위한 장기투자금을 털어 쓰는 것이다. 또 젊은 층들이 일찍이 청약을 포기하거나 주식과 암호 화폐에 눈을 돌린 것,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100만원이라도 기존 대출을 갚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예전에는 분양받는 게 일종의 로또로 여겨졌으나 부동산 시장 불황과 맞물려 신규 분양 매력이 줄어 청약통장 가입자 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청약통장 이율이 크게 낮은 것도 또 다른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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