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팔순이 다 되어서야 만든 콩나물 아귀찜

이숙자 2022. 12. 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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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고 기운 내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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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사람마다 성품이 각기 다르듯이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 특히 자라난 환경과 살아왔던 지역이 다른 만큼 음식 문화도 다를 수뿐이 없다. 우리 집은 딸이 넷인만큼 사위도 네 명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식도 다 제 각각이다. 사위들을 오랫동안 보아왔기에 사위마다 좋아하는 음식도 다 알고 있다.

우리 집 둘째 사위는 생선요리, 특히 아귀찜을 좋아한다. 어쩌다 함께 모여 외식을 할 때면 생선요리와 아귀찜 잘하는 맛집을 찾아다닌다. 생선찜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서울에서 속초까지 가서 가오리 찜을 먹고 오는 정도라고 딸은 나에게 살짝 귀띔을 해 준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니?" 하고 놀랐지만 아마 여행 삼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아귀찜은 사 먹을 때마다 맛도 다르고 가격도 꽤 비싸다. 최근엔 모든 물가가 오른 만큼 음식값도 올라 외식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오르지 않은 물가가 없다. 식당마다 밥값도 다 올랐다. 마트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예전 물가가 아니다. 어쩌겠는가 여러 가지 상황이 그럴 수뿐이 없다는 걸 안다. 
 
▲ 선물 받은 콩나물 지인에게 선물 받은 콩나물
ⓒ 이숙자
                                          
엊그제 지인으로부터 콩나물 선물을 받았다. 지인은 추위에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로 집까지 콩나물을 가져다주고 갔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이런 정을 받아도 되는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콩나물이 박스로 한 가득이다. 양이 많아 이걸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웃에 좀 가져다주기로 했다. 

콩나물은 우리 밥상에서 익숙한 음식이라서 요리해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찜을 해도 먹을 만하다. 그러나 두 부부만 살고 있는 우리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그런데 마침 둘째 딸네 가족이 연말 휴가차 군산에 내려온다고 연락을 해왔다. 콩나물 먹을 일이 생겨 반가웠다. 이번에야 말로 아귀찜을 집에서 해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시장에 가서 아귀를 사 왔다.

콩나물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아귀찜을 해야 하는 콩나물은 일자 콩나물로 통통한 콩나물이라야 한다. 마침 선물 받은 콩나물이 일자 콩나물이다.

<아귀찜 레시피>

① 아귀찜 레시피는 먼저 콩나물을 씻어 소금 조금 넣고 살짝 삶아 놓는다.
② 손질한 아귀와 미더덕이나 새우등을 넣고 냄비에 멸치 육수 한 컵 정도의
물을 붓고 5분 넘게 끓이며 뒤집어 아구를 익힌다.
③ 양념장을 만든다. 진간장 마늘 생강 물엿 고춧가루 들기름을 넣어 섞는다.
④ 삶은 아귀에 콩나물과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넣고 고루 섞는다.
⑤ 전분 가루를 물에 풀어 뒤적이면 재료끼리 엉겨 맛있는 아귀찜이 된다.
⑥ 미나리와 참 기름을 넣고 참깨를 넣어 접시에 담아냈다.
 
▲ 아귀찜 집에서 처음 시도한 콩나물 아귀 찜
ⓒ 이숙자
                                       
음식이 까다로운 남편도 맛있다고 잘 먹는다. 성공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미나리를 넣어야 식감도 좋고 향이 좋은데 깜박 잊고 미나리를 사 오지 않아 시각적으로 예쁘지 않다는 점이다. 또 점심에 생선을 먹은 후라서 저녁에는 아귀찜 양이 적어 푸짐한 느낌이 없었다.

아귀찜을 식당에서 사 먹는 걸로만 알았는데 사실 못 할 음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 나이 먹도록 부엌에서 가족들 밥을 차렸는데 시도해보면 되는 일을 괜스레 망설였나 싶다. 아마도 귀찮아서 그랬을 것이다. 아귀찜을 잘 먹는 사위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어머니 맛있는데요." 

그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가족들 맛있는 음식 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부터는 외식 대신 아귀찜을 집에서 해 먹어야겠다. '일 년이면 몇 번이나 사위들, 딸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까?' 생각하면 이런 시간들이 더 소중하다. 집밥이란 어쩌면 사랑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엄마 음식은 가족을 위한 사랑이다.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잊지 못할 기억에 남는 음식을 해 주고 싶다. 음식은 사랑이고 추억이다.

가족들 모두 사는 게 힘들고 마음 시린 날 찾아와 내가 해준 아귀찜을 먹고 위로를 받고 기운 내서 살아가길 희망한다. 삶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서로 기댈 작은 언덕이 되어 주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 서로가 소중함을 알 때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 온다.

"엄마 이 서방한테 연말 휴가차 일본 여행 갈까? 했는데 부모님 모시고 놀고 맛있는 것 먹는 것이 더 좋대요. 외국 여행 가면 뭐 하겠어."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찡해 온다. 날은 춥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텐데 나이 든 부모를 찾아와 마음 같이 해 준 둘째네 가족들이 고맙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해를 보내며 추억 한 페이지를 남긴다.

지금까지 하지 않던 아귀찜을 나이 팔 순이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나는 가족의 밥이다. 밥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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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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