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7시 '구찌 매장' 불꺼졌다…쇼핑몰은 거대한 미술관이 됐다
지난 3일 홍콩 빅토리아 하버에 위치한 복합 쇼핑몰 ‘K11 뮤제아’는 오후 7시 영업을 마치자 거대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1층 구찌·까르띠에 등의 명품 매장의 불이 꺼지고, 쇼핑몰 복도에는 붉은 카펫이 깔렸다. 다음 달 29일까지 6층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 ‘꾸틔르에 대한 사랑(love of Couture)’의 사전 행사다.
영국 V&A박물관과 협업한 전시에선 1800년대 영국·프랑스 여인들이 입었던 고색창연한 드레스 12점이 공개됐다. 박소희와 토모 코이즈미(일본), 셀린 콴(홍콩) 등 현대 디자이너 6명의 맞춤 드레스도 자리했다.
이쯤 되면 헷갈린다. 이곳은 쇼핑몰인가, 미술관인가. 지난 2019년 8월에 문을 연 K11 뮤제아는 최근 국내에서도 많이 시도되는 ‘아트 마케팅’의 결정판 같은 곳이다. 쇼핑 공간에 예술품을 배치해 색다른 경험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K11 뮤제아 프로젝트는 에이드리언 청(43) 홍콩 뉴월드개발그룹 부회장이 지휘했다. 아시아 미술계의 큰손, 홍콩 부동산 재벌 3세 등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K11 설립자’ ‘리테일(소매업) 혁신가’라는 타이틀로 주목받고 있다. 청 부회장을 홍콩에서 직접 만나 그가 구상하는 ‘미래의 쇼핑몰’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3조원 투입, 최초의 ‘뮤지엄-리테일’
Q : K11 뮤제아를 간단히 소개해 달라.
A : 총 26억 달러(약 3조4000억원)의 자본이 투입됐다. 전체 10층 규모 27만㎡(약 8만4000평)의 복합문화 공간이다. 세계적 건축 회사인 미국 콘 페더슨 폭스, 뉴욕 하이라인의 조경 설계가 제임스 코너 등이 참여했다. 이곳에는 250여 개의 매장과 70여 개의 레스토랑, 매번 전시 내용이 바뀌는 아트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옥상에는 도시 농장이 있다. 현재 홍콩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는 새로운 랜드마크다.
그의 말대로 K11 뮤제아는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35m 높이의 중정 홀 형태로 돼 있는 내부는 마치 오페라 극장을 연상시킨다. 이날 중정에는 일본의 설치 미술가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 ‘나는 희망한다’가 걸려 있었다. 쇼핑몰 광장에는 엘름그린&드라그셋의 ‘반 고흐의 귀’ 또는 이자 겐즈켄의 쇠로 만든 ‘장미’ 등 유명 설치 작가들의 작품으로 인증샷을 찍는 이들이 줄을 선다. 개관 이후 지금까지 1800개의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900개팀 이상의 작가와 협업이 이뤄졌다.
“예술과 상업은 대중이라는 공통점 지녀”
Q : K11뮤제아를 ‘뮤지엄-리테일’로 정의한다.
A : 예술과 상업은 대척점에 있지 않다. 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뮤제아 이전 프로젝트인 ‘K11 아트몰’을 2008년 열면서 문화와 상업이 융합된 개념을 최초로 만들었다. 뮤제아는 2009년부터 구상해 약 10년간 쏟아부은 결과물이다.
Q :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나.
A : 뮤제아는 그리스 신화 속 ‘영감(inspiration)의 여신’이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어가기 바란다.
Q : 사업에 어려움은 없었나.
A : 어렵지 않은 점이 없었다(웃음).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뮤지엄-리테일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예술가들을 설득하는 건 오히려 쉬웠다. 뮤제아는 그 자체로 거대한 박물관이다. 도슨트(전시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혁신적 스타일의 전시장이라고 생각한다.
Q : 사람들이 점점 쇼핑 공간에서 ‘문화’를 찾는다.
A : 물건만으로는 매력적이지 못한 시대여서다. 지금 뮤제아에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슨트 체험을 했다. 물건은 어디에나 있지만, 이런 경험은 여기서만 할 수 있다. 특별한 경험을 쫒는 경향은 젊은 세대일수록 강하다.
Q : 그냥 미술관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A : 전통적 미술관은 분위기가 너무 엄숙하다(웃음).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예술 작품을 보고, 옷을 사러 왔다가 전시 해설을 듣는 식으로 예술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Q : 비즈니스 성과는.
A : 지난해 매출 규모가 2020년 대비 38% 성장했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았던 가운데 낸 성과다. 현재 고객의 80%가 현지인이다.
Q : 코로나19나 2019년의 홍콩 시위로 타격이 있었을 텐데.
A : 사람들이 이곳에 와야 할 이유를 늘 새롭게 만들고 있다. 칸 영화제 기간에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만들고, 발레단을 불러 쇼핑몰의 계단 위에서 공연한다. 이번처럼 근대 복식사를 엿볼 수 있는 드레스로 볼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Q : 한국 백화점 업계에서도 ‘아트 마케팅’이 활발하다.
A : 단지 유명한 그림을 건다고 되는 건 아니다. 각각의 작품이 왜 지금, 선보여져야 하는지 배경의 이야기들이 대중과 연결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뮤제아에 전시된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은 코로나19 시대의 희망을 얘기한다. 메시지가 있으면 대중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Q :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에도 참석했는데.
A : 서울에 자주 간다. 한남동에 집이 있어서 간혹 며칠 머물면서 삼청동에서 대추차를 마시는 취미가 있다(웃음). 서울은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호기심이 강한 나라다. 한국 작가들과 K11의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최우람, 이불, 서도호 작가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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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드리언 청(Adrian Cheng)=뉴월드개발 부회장이자 K11 설립자 겸 회장. 미국 하버드대에서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포춘 ‘40세 미만 리더 40’에 선정됐다. 중화권 최대의 귀금속 회사인 저우다푸를 창업한 고 청위통(鄭裕彤)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뉴월드개발은 1970년에 설립된 부동산 투자 및 개발, 인프라, 백화점 및 호텔 사업을 영위하는 종합 개발업체다. 총자산 107조5000억원에 이른다.
」
홍콩=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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