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 없고 탈권위의 서민 그대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기자]
▲ 6.10 민주항쟁 기념식 노래 6.10 민주항쟁 26주년을 맞은 10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함세웅 신부 한승헌 변호사 등 참석자들이 노래 '광야에서'를 합창하고 있다. |
ⓒ 유성호 |
그는 나이가 들고 사회적 위상이 높아져도 권위주의적이거나 그렇다고 속물적이지 않았다. 위선을 몰랐으며 체 하지 않았다. 선한 눈매를 간직한 모습도 그대로였다. 권위라는 겉멋을 내세우지 않았으며, 노추와는 거리가 멀었다. 물욕을 탐하지 않고 여전히 그름을 배척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아들의 편지를 받고 다음과 같이 썼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에서 네 단계의 큰 평등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다."
이것은 바로 한승헌의 길이었다.
그는 노령에도 누군가의 지적대로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따뜻하면서도 절도 있는, 단아하게 절제된 언어와 행동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연히 읽은 한 시인의 글에서 그의 평상심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신년인사회에 가느라 버스를 탔지만 마음은 새롭지 않습니다. 마침내 목적지, 행사가 시작되려면 20여분이 남았지만 행사장엔 나이 든 사람들이 가득하고, 한쪽에 배치된 의자들은 아예 경로석입니다. 여든 가까워 보이는 어른 한 분이 들어섭니다. 빼빼 마른 몸을 어서 의자에 앉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의자는 보는 둥 마는 둥 인파 속에 설 자리를 잡습니다.
제 젊은 동행도 그분을 보고 있었나 봅니다.
"저분이 누구예요?"
그의 눈이 존경심과 호기심으로 반짝입니다.
▲ 한승헌 변호사는 9일 저녁 진주산업대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강연했다. |
ⓒ 윤성효 |
그는 젊어서나 중년에나 노년에나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였다. 감사원장은 관용차가 배정되었으나 변호사 시절에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생활은 지극히 검소하였다. 공사를 분명히 했다. 감사원장 시절 수행비서(운전기사)의 기록이다.
비 오는 날 차를 타고 내리시면 차 바닥에 젖은 발자국 두 개만 나란히 나 있고, 공중전화 박스에 남이 쓰고 남은 동전이 있는데도 그것을 쓰지 않으시고 다른 부스로 가서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거는 분이었다. 동전이 남아 있는 데도 왜 쓰지 않으시냐고 여쭈었더니 "그건 남의 돈인데?" 하셨다. (주석 4)
그의 오랜 측근으로 곁에서 지켜보아 온 함광남(한국제일경영연구원 원장)의 회상이다.
나는 먼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 선생님의 처지(그때 그분은 일반 시내버스로 출퇴근하셨다)를 생각하여 몇 개의 재벌그룹 고문으로 위촉받아보자고 하면서 그 당국자의 제의를 수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재벌그룹 몇 군데 고문으로 위촉만 된다면 사무소 운영은 걱정 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한 선생님 가족들도 쪼들리는 생활에서 어느 정도는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의 대답은 역시 '아니다'였다. "관의 힘을 빌리거나 권력과 야합하여 이익을 챙겼다면 벌써 갑부가 되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부끄러움 없이 살아온 내가 이제와서 그따위 협조를 받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정권찬양이나 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할 수는 절대로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이튿날 한선생님은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는 글을 붓글씨로 써서 사무실 벽에 걸어놓으셨다. (주석 5)
주석
3> 김흥숙, <저는 노인이 아닙니다>, <한겨레>, 2013년 1월 12일치.
4> 박환철, <한승헌 원장님 그 존함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산민의 이름으로>, 246쪽, 이지출판, 2021.
5> 함광남, <'사서하는 고생'을 보면서>, <한 변호사의 초상>, 301~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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