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산세권? 이곳은 암(癌)세권입니다

김지원 2022. 12. 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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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환경오염 피해지역 김포 거물대리 이야기... 지속적 관심 필요

[김지원]

"긴 뭐죠? 마을 뒤편에 비닐하우스가 있네요? 약세권 - 농약!"

중독성 있는 말투로 전국의 경매 물건들을 소개하는 한 부동산 전문 유튜버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가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의 지도를 살펴본다면, 파란 지붕들이 마을을 위협하듯 들어찬 걸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건 뭐죠? 파란 지붕들, 제가 뭐라고 했죠? 공장 - 공세권이에요."

이곳 거물대리는 공세권일 뿐 아니라 자타공인 암(癌)세권, 병(病)세권으로 주민과 노동자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곳이다.

병 주고 병 있는지 봐주는 현실
 
 마을 어귀 감나무에는 올해도 감이 탐스럽게 익었다. 먹어야 할까, 먹지 말아야 할까? 나무 뒤로 한 제조업체의 공장이 보인다
ⓒ 김지원
  
특이한 이름의 이 마을, 거물대리(巨勿垈里)는 검은 대나무 마을이란 뜻을 갖고 있다. 인삼, 포도 등을 키우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던 이곳은 김포가 도농 복합 시로 발전하면서 1990년 무렵부터 수도권 규제를 피해 찾아온 각종 주물공장과 제조업 공장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마을의 주민들은 문전옥답을 하나둘 공장들에 팔고 대처로 떠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산업단지로 개발된 곳이 아니다 보니, 공장들이 마을을 이로 물어 뜯은 형국이 되고, 매연과 먼지, 폐수를 남은 주민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거물대리 문제는 악취와 원인 모를 피부병, 암 발생 등을 호소한 주민들에 의해 점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역학조사 결과 토양 유해 물질 오염과 대기 오염의 심각함이 명확하게 밝혀졌고, 무엇보다 거주하는 주민들의 체내 시료에서도 니켈, 카드뮴 등의 발암물질 노출이 일반인의 수 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암 발생도 일반인구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회문제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으로 주민들은 보상받고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됐을까?

2021년 무렵, 김포시와 환경부의 요청에 따라 해당 사업에 참여하여 주민들의 생체시료를 분석하고 각종 암 검진 등의 실무를 수행하게 돼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 기회가 생겼다.

당시 3개의 의과대학, 예방의학, 직업환경의학교실에서 차례로 연구과제를 맡아 수행하고 기본적인 역학조사와 노출 실태 파악이 끝난 뒤라 이제부터는 한 보건대학에서 건강진단 연구 용역을 수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사업을 보건대학의 비의료인이 맡아서 하냐'라고 묻자 병원은 그냥 건강검진만 잘해서 결과만 달라고 답했다. 나머지 데이터 처리와 연구보고서 제출은 알아서 하겠다는 것. 사람을 다루는 의학 연구의 특성상 "검진만 그냥 해주시면 돼요"라는 말은 매우 무책임하다.

불행 중 다행은 주민들에 대한 건강검진 비용 보조는 비교적 넉넉해서 VIP 검진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원에서는 내원한 주민분들을 VIP 전담 코디가 일대일로 안내하고 있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약은 사실 없으니 '병 주고 병 있는지 봐주는 격이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변두리라 감내했던 환경 피해,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
 
 시료채취와 연구를 위해 마을회관을 찾은 주민들과 연구진을 길 건너 강아지가 무심히 지켜보고 있다. 멀리 마을과 뒤엉켜버린 공장 지붕들이 보인다.
ⓒ 김지원
 
주민들은 병원만 오면 병이 발견되고, 또 나라에서 알아서 보상해주리라 기대한다. 멀리서 병원까지 와서 검진받았으니 모든 걸 일사천리로 다 해결해주리라 기대한다.

건강검진의 한계와 결과해석의 어려움, 인과관계 판단의 어려움을 설명해봤자 고령자가 대다수인 주민에게는 그저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용어의 말 잔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수십 년간 정치인, 공무원, 교수들이 돌아가며 주민들에게 해왔던 공염불의 아류에 불과할 것이다.

주민 대다수는 농민이거나 부업으로라도 텃밭을 가꾸는 게 생활인 분들이다. 이분들에게 "마을에서 나고 자란 푸성귀는 가급적 드시지 마세요", "물도 사서 드세요"라고 노파심에 한 마디 더 보태면 어김없이 서운해하신다.

사실 이분들도 안다. 인근 마을 장터에 거물대리 농산물을 가지고 갔다가 푸대접받았기에, 농협 수매처에서도 거물대리 농작물은 가지고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김포시에서는 농축산업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환경성 피해 문제를 거물대리라는 작은 마을에만 한정 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 거물대리를 흐르는 작은 하천은 김포 대곶을 유유히 돌아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공장은 마을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옆 마을, 윗마을, 아랫마을로 퍼져나간다. 실제로 거물대리의 이웃 마을도 환경성 피해 구제 대상이다.

김포와 인근 인천 출장을 다녀보면 비슷한 공장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규제를 피해 아예 대교와 바다를 넘어 강화도 바로 앞에도 진을 치고 있다. 신도시 개발로 늘어난 김포시 인구는 다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양한 소규모 공장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웃한 인천 서구 쪽에는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 종료 시한을 앞두고 있는데, 한 차례 연장을 통해 더욱 많은 쓰레기를 이곳으로 불러들일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시기에 변두리인 까닭에 당연하단 듯 감내해야 했던 것들이 많다. 그리고 이곳은 서울특별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환경피해 문제가 현재진행형인데도, 주요 언론에선 잘 다뤄지지 않는다. 숨어있는 환경피해 지역들도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이 문제를 계속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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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지원 님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12월 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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