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정성화가 새긴 안중근의 ‘고막고어자시’ [일문일답①]
어떤 위대한 인물로 잠깐 동안 사는 것도 어려운데 배우 정성화는 무려 14년여 동안이나 독립투사인 안중근 의사를 연기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담은 뮤지컬 ‘영웅’에 초연부터 참여했던 정성화가 이번엔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영화 ‘영웅’으로 돌아왔다. 스크린 첫 주연작인데다 국내 최초 창작 뮤지컬 원작 영화라는 무게까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정성화와 만났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기쁨을 조용히 씹으며 안중근 의사가 남긴 ‘고막고어자시’를 되새기고 있었다.
-‘영웅’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이 영화화된다는 것은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일 것이다. 그게 실제로 이뤄졌다는 것만으로도 꿈이 이뤄진 것 같다. 내가 어떠한 족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윤제균 감독이 영화 ‘영웅’을 일컬어 절반의 익숙함과 절반의 새로움이라고 했다. “뮤지컬을 보셨던 분들이 영화를 보시면 새로운 작품이라고 느끼실 것 같다. 객석에 앉아 먼발치에서 봤던 장면들이 클로즈업돼 스크린에 구현되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움이라고 생각한다. 절반의 새로움, 절반의 익숙함.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뮤지컬계에서는 단연 스타지만 스크린 주연으로서 티켓 파워는 검증된 적 없다. 어떻게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됐나. “리스크가 있는 배우였을 거라고 나도 생각한다. 처음에 윤제균 감독님이 ‘‘영웅’을 영화로 만들기로 했어’라고 하셨을 때만 하더라도 나 역시 내가 안중근을 연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 못 했다. 나중에 감독님이 ‘사실 나는 처음부터 정성화를 안중근으로 하려고 했어’라고 하시기에 ‘그럼 처음부터 말씀해주시지 그러셨느냐’고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생각에 감독님도 신중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화에 투자하는 분들께 설명할 시간도 필요하셨을 것 같고. 나 역시 뮤지컬과 영화 양쪽에서 성공을 거둔 배우분들이야 너무 많지 않나. 그래서 그분들이 하면 내가 옆에서 조금 도와드리고 싶다, 다른 역 제의를 받게 되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영화 ‘영웅’은 우리나라의 오리지널 뮤지컬이 영화화되는 첫 사례다. 그래서 관객들께 실망감을 안겨드리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목숨 걸고 했다.”
-캐스팅 확정 후 윤제균 감독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있다면. “살 빼라고 하시더라. (웃음) 내가 그때 86kg 정도였는데, 체중을 72kg까지 감량했다. 첫 촬영하는 날 체중계에서 쟀던 수치가 72kg였다. 그 후로 72~73kg을 왔다 갔다 하며 찍었다.”
-‘영웅’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뮤지컬 넘버를 어떻게 대사화할 것인가였다. 노래가 너무 노래처럼 들리면 관객들이 인물에 몰입했다가도 빠져나오게 된다. 그래서 노래가 아닌 대사처럼 들리게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이전 대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서 노래를 부르는 점이 가장 큰 숙제였다.”
-영화 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넘버가 있나. “굉장히 많은데 ‘그날을 기억하며’ 장면도 좋았고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단지동맹’ 장면도 좋아한다. 특히 ‘단지동맹’ 장면은 정말 영리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바로 노래가 나옴으로써 관객들에게 ‘지금부터 뮤지컬 영화를 시작할게요’라는 사인을 준다. 앞으로 관객들이 영화를 친숙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내판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 연기에서 공연과 차이를 둔 부분은 없나. “공연에서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강하게 표현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세게 표출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같은 것을 표현하더라도 조금 더 크게 목소리를 내서 공연을 본 관객들이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느끼게끔 했다. 영화에서는 비범한 사람의 평범함에 초점을 맞췄다. 덤덤하고 절제된 연기를 하려고 했다. 그 부분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안중근 의사 연기를 무려 14년여 동안이나 해왔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말 가운데 ‘고막고어자시’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잘난체할수록 외로워진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이 말이 꼭 안중근 의사가 내게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신을 스스로 내보일 필요 없다’, ‘네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네 주변에 사람이 모일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말씀에 따라 겸손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려고 한다.”
-안중근 의사로부터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나보다. “당연하다. 안중근 의사는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하셨다. 그 부분을 배워서 나 역시 누군가 나를 써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작품, 연기를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어렵게 생각되는 일들에도 자꾸 도전하다 보면 발전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조금이나마 안중근 의사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위인을 연기하다 보면 평소에 일탈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생길 것 같은데. “일탈 자체를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일단 공연을 하다 보면 너무 바쁘다. 집에 들어가면 애들 봐야 하고, 애들 밥 먹이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아내를 도와서 할 일들도 많고. 형광등을 간다든가 그런 밀린 집안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딱히 일탈을 못 해서 불편했던 것 없다. (웃음) 개인적으로 캠핑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시간이 나면 아내한테 허락받고 캠핑 다녀오고 싶다.”
-안중근 의사로부터 특히 본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그분이 좋은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영화 ‘영웅’을 하면서 내가 좋은 리더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축구 경기를 예로 들면, 다들 지쳐 있다가도 어떤 선수 한 명이 열심히 하면 나머지 선수들이 다 살아나지 않나. 누구 한 명이 열심히 하면 그 에너지가 주변에 영향을 준다. 공연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연습실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남은 힘을 다 짜내서 임하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 늘 안중근 의사의 도움을 얻고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성화가 주연을 맡은 ‘영웅’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120분.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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