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윤제균 감독의 '영웅', 절대 쉬운 길로 가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
'두사부일체'로 데뷔해 천만 영화 '해운대', '국제시장' 외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 흥행작을 다수 보유하며 한국 영화계를 끌어가는 윤제균 감독.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에 옮기는 도전을 했다. 뮤지컬 장르는 일명 '불모지'로 통하는 우리나라 영화계는 무대와 영화의 다른 문법을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뿐더러 히트작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많은 이들이 뮤지컬 영화를 도전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
이에 윤제균 감독이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만든다고 선언했을 때, 다들 기대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로 웰메이드 뮤지컬 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제가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크리에이터로서 가장 싫어하는 게 똑같고 뻔한, 자가복제입니다. 그런 건 동기부여가 안되더라고요. 동기부여가 되면 열정이 생기니까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 같아요."
윤 감독은 21일 '영웅' 정식 개봉 전 지난 13일 VIP 시사회를 통해 관계자 및 일반인들에게 '영웅'을 공개했다. 언론배급시사회는 떨리는 마음으로 참여했다면 VIP 시사회는 일반인들의 솔직한 반응을 관찰하고 체감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과 본 건 처음이었는데 울컥했어요. 언론배급시사회 때는 함께 본 사람들이 영화 전문가들이다 보니 진지한 분위기였거든요. 일반관에 가니 단지 동맹 첫 장면부터 박수가 나와 깜짝 놀랐어요.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영화가 끝난 후 일반 관객 한 분이 저를 알아보시고 '아이들 데리고 꼭 다시 영화 보러 오겠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지금 극장에 관객들이 많이 못 오고 있는데 '영웅'이 가족 관객을 극장으로 오게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죠."
그는 감독으로도 활약하고 있지만 JK필름을 통해 '하모니', '퀵', '내 깡패같은 애인', '댄싱퀸', '스파이', '히말라야', '공조' 시리즈', '그것만이 내 세상', '협상' 등을 제작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고자 할 때 감독과 제작자의 마인드가 다르다고 밝혔다.
"제작자로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것, 감독으로는 느낌이 오는 것을 선택합니다. 돈이 될 것 같으니 하긴 하지만, 흥미롭지 못한 영화를 만드는 건 참 고역이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정의 순간들이 계속 오는데, 이 순간에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기준이 사람마다 명예, 명분, 돈 등 여러 가지로 갈리겠죠. 감독으로서 저의 기준은 명확해요. 나의 행복과 느낌이죠. '영웅'을 만들면 행복할 것 같았어요. 제 도전의식에 부합하니, 열정도 생겼죠. 안중근 의사를 그리는 것도 명분이 됐고요. 그래서 신났어요."
그래서 윤제균 감독은 '영웅'을 만들며 행복했을까.
"절반은 행복했고, 절반은 힘들었어요. 행복한 이유는 너무나 좋았던 사람들과 일했기 때문이죠.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선생님 등 인간적으로 훌륭하고, 실력으로도 뛰어난 배우들이었어요. 이런 사람들과 작업하는 건 쉽지 않아요. 한 사람이라도 이상하면 현장이 이상해지거든요. 그런데 우리 현장엔 단 한 명도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일이 힘든 건 괜찮지만 사람이 힘들면 견디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잘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배우들이 노래하는 장면 70%를 현장 라이브를 진행했다. 실내외 촬영 녹음 시에는 소음을 최소화, 기술보다 배우들의 감정을 담아내기 위한 작업을 면밀하게 가져갔다. 이에 객석과 무대의 물리적 거리로 보지 못했던 배우들의 절절하고 결연한 감정들이 큰 스크린을 물들였다. 이 같은 결과물은 배우, 스태프들의 든든한 지원과 믿음,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라이브 촬영을 결정한 후 소리를 통제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원래 봉 마이크로 촬영하는데 그렇게 하면 배우와 마이크 사이가 50cm~1m는 떨어져서 소음들이 섞여요. 그럼 배우들의 깨끗한 목소리를 담을 수가 없죠. 그래서 선택한 게 와이어리스 마이크입니다. 이렇게 촬영을 한 후 후반에 CG로 마이크와 인이어를 일일이 지워내야 했어요. 그래서 모든 배우의 귀를 3D 촬영을 다 해놨었죠. 1000커트 넘게 그 작업을 해야 했으니 스태프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되도록 현장 라이브로 촬영하고 싶었지만 70%인 이유는 야외촬영 때문이었다. 자연의 소리마저 통제하는 건 무리가 따랐다.
"문경 세트장이 산 속에 있어서 벌레소리가 엄청나요. 스태프들은 전날 내려가서 방역 작업을 해야 했죠. 그럼에도 야외는 어쩌지 못한 소음이 발생하죠. 야외마저 세트로 다 만들면 예산이 많이 들어서 야외 로케이션 일정 부분은 후시로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조재현, 조우진, 이현우, 박진주 등 배우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뮤지컬 '영웅'에서도 14년 동안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는 영화와 뮤지컬의 다른 감동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고, 김고은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 역시 노래하며 연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에 윤제균 감독은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배우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우리 영화는 격정적인 노래가 많아요. 배우들이 테이크 세 번만 가도 탈진하죠. 연기는 잘했는데 노래가 별로면 오케이 사인을 못하죠.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10번 이상씩 촬영했어요. 한 신마다 감정을 끊지 않기 위해 롱테이크로 찍었으니, 배우들은 촬영을 다시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불러야 했어요. 정성화 '장부가'의 경우 13번 이상을 찍고 재촬영까지 했어요. 아마 30번은 넘게 불렀을 겁니다."
영화 후반,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아들에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낸 조마리아 여사. 그가 안중근 의사의 배넷 저고리를 안고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이 장면 역시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원래는 형무소 담벼락을 울면서 걸어가는 게 콘티였어요. 그래서 서대문형무소에서 롱테이크로 10번 넘게 찍었죠. 매니저 분이 20년 동안 나문희 선생님이 이렇게 테이크 많이 간 걸 본 적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국민 배우신데 테이크 많이 갈 이유가 뭐가 있으셨겠어요. 5~6번 찍은 후 후시녹음을 하려 했는데 본인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다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편집하다 보니 그 신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전부 재촬영 했죠. 소위 말해서 나문희 선생님의 영혼을 갈아 넣어 뽑아낸 장면입니다."
윤 감독은 원작 뮤지컬의 주요 이야기와 감동은 그대로 가져가되, 등장인물들에게 조금씩 변화를 줬다. 설희는 뮤지컬보다 서사가 늘어났고, 안중근 의사의 조력자 중국인 왕웨이와 링링은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또 뮤지컬에서 링링은 안중근 의사를 짝사랑했지만, 영화에서는 또래 유동하와 풋풋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뮤지컬 보면서 설희에게 특별한 미션이 없는 게 아쉬웠어요. 이토 히로부미 최측근에 있으면서 설희가 처단을 하면 조금 쉬웠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왜 처단할 수 없었는지 영화를 통해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조우진, 박진주 남매는 원래 중국인 캐릭터인데 한국인으로 바꾼 이유는, 영화에서 한국말, 일본말에 더해 중국말까지 나오면 번잡스럽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인 남매로 설정했죠. 동화와 진주의 러브라인은 한창 사랑을 꿈꿀 나이에 누구는 나라 때문에 죽고, 누구는 형무소에 가야 한다는 운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장면들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죠."
또한 리트비아 로케이션 촬영과 전쟁, 액션 장면으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내며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윤 감독이 뮤지컬에서 대사로 처리된 영화 초반 회령 전투신을 고집한 이유는 두 가지 이유였다.
"'영웅'을 만들 때 한 가지 각오를 다졌던 건 절대 쉬운 길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렵더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전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투신, 추격신도 제대로 찍고 싶었죠. 분량은 얼마 안되지만 10회차 넘게 찍었고, 안중근 의사가 폭탄을 맞아 넘어가고 일본 사람들이 몰려오는 장면을 원신원컷으로 찍었어요. 하루 종일 한 커트만 찍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커트를 나눠 쉽게 갈 수도 있었지만 비주얼로 할리우드에 뒤처지지 않는 전투 장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건 알지만 직업이 군인이었다는 건 모르더라고요. 안중근은 원래 대한의군참모중장이었고 회령 전투에서 부하를 잃고 단지 동맹을 한 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일 결심을 했어요. 이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기 위해 전투 장면을 넣었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영웅'을 통해 대중이 우리나라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왜 국사를 국영수처럼 열심히 안 하냐'라고 물어보니 대학 갈 때는 국영수가 중요하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왜 한국사가 미적분보다 중요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고 화가 났어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희생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함과 동시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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