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내한투어 사라 장, “내 삶에 쉼표 찍는 법 알게 됐죠”
비탈리·바흐·비발디 등 다양한 바로크 음악 연주
코로나19 때 일상 되찾으며 기본 다지는 연습
바이올린 하면 사라 장(42), 첼로 하면 장한나(40), 이렇게 두 명의 장씨가 현악기를 쥐락펴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10여 년 전부터 활 대신 지휘봉을 든 장한나는 현재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음악감독이자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수석객원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반면 사라 장은 꾸준히 바이올리니스트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에는 7년 만에 대구·울산·안양·천안·동해·고양·서울을 돌며 연주했었다. 이후 코로나19로 한국행을 미뤘던 사라 장이 3년 만에 내한 투어를 갖는다.
16일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시작한 연주회는 18일 부산문화회관, 21일 구미문화예술회관, 23일 전주소리문화의전당, 24일 세종 예술의전당을 거쳐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이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심준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솔로이스트들 18인이 체임버 앙상블 ‘비르투오지’를 이루어 사라 장과 협연한다.
레퍼토리는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이다. 비탈리 ‘샤콘느’, 바흐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 비발디 ‘사계’ 등을 연주한다.
“한국의 젊은 연주가들이 자랑스러워요. 요즘 콩쿠르는 한국 사람들이 다 이기더군요. 이번에 재능 있는 한국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해서 기쁘고 즐겁습니다.”
15일 오후 신사동 오드포트, 고풍스런 하프시코드가 눈길을 끄는 가운데 사라 장과 비르투오지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 1악장을 시작했다. 사라 장의 바이올린은 한 음 한 음을 모두 정성껏 소리 냈다. 특히 3악장에서 속도를 점차 올릴 때 매서운 눈보라와 겨울 바람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3년 간의 팬데믹은 사라 장에게 겨울 바람의 시련이기도 했지만 오순도순 따스한 난롯가의 체험이기도 했다.
1년에 연주회를 100차례 넘게 가졌다는 그는 “몸도 힘들고 시차 적응도 힘들었고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도 모르는 마음으로 몇십 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연주가 취소되는 아픔도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만끽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 생일 때, 어머니날에도 집에 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정상적인 삶을 처음으로 체험한 거죠. 연주에 더욱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됐어요.”
사라 장은 독주보다도 정답게 실내악의 앙상블을 만들어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며 이번 내한공연 관람을 꼭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지만 곡마다 정서가 다양해요. 비탈리 ‘샤콘느’는 열정적이고 낭만적이죠. 바흐 협주곡은 직선적이고요. ‘사계’엔 지나온 한 해가 담겨있습니다.”
사라 장은 클래식 연주의 역사에서 천재 연주가로 손꼽혔다. 두 살 반 때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빠가 단조를 연주하면 “아빠 연주 왜 지금 슬퍼?”하고 물었다고 한다. 네 살 때 집에서 놀다가 리허설 하는 아버지와 동료들의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1번 연주를 넘겨듣고 나중에 바이올린 부분만 무심히 연주해 어머니를 경악시켰다고 전해진다.
1990년, 만 여덟 살의 나이에 거장 주빈 메타, 뉴욕 필과의 협연으로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듬해엔 EMI 레이블과 계약하며 세계 최연소 레코딩 기록을 세웠다.
지금 들어봐도 연주의 성숙도는 불가사의다. 1992년에는 최연소 나이로 에이버리 피셔 캐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하고 1994년 13세 때는 베를린 필과 협연하며 데뷔하는 등 세계 음악계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작고한 거장 네빌 마리너 경은 “내가 150년간 공부해야 할 만큼의 분량이 사라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내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천재다. 그의 악기를 다루는 단순성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극찬한 바 있다.
쿠르트 마주어, 주빈 메타 같이 나이 지긋한 지휘 거장과 어린 시절부터 연주했던 사라 장은 그들의 충고를 인용하면서 “지금은 어리니 템포가 빠르고 모든 것을 열정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템포가 느려지고 생각도 많아질 거라고 하셨다. 빨리 연주하는 게 좋은 게 아니란 생각을 요즘 한다”고 했다.
느린 2악장을 즐기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극적이고, 열렬하고, 흥분되는 음악도 좋지만 비발디 ‘4계’ 2악장 같이 느린 악구를 즐겨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바흐도 2악장이 너무 아름답게 다가오죠. 할 게 너무 많은 제 삶에 쉼표를 찍는 법을 알게 됐어요.”
팬데믹 시절은 사라 장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부여했다. 그는 음악이 얼마나 많은 힐링(마음의 치유)을 줄 수 있는지 생각했다고 했다.
“팬데믹 첫 6개월은 완전히 셧다운 상태였어요. TV나 넷플릭스를 한 달 동안 봤더니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더군요. 그때부터 아르페지오 연습 같은 기초부터 홈트(집에서 하는 운동)하듯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오로지 저를 위해, 힐링을 위해서였죠.”
조수미와 더불어 애견인으로 손꼽히는 사라 장은 공연을 마치고 출국할 때 인천공항에서 뉴욕까지 유기견 이동을 돕는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가 사람보다 나을 때가 많다”며 웃었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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