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위 걷듯 지나온 길…정형의 그릇에 무한한 이야기 담겠다”

남수현 2022. 12. 1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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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제33회 중앙신춘시조상 시상식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제41회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제33회 중앙신춘시조상 시상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염창권 심사위원, 최훈 중앙일보 주필, 중앙신춘시조상 김현장, 중앙시조대상 정혜숙, 중앙시조신인상 박화남, 박명숙 심사위원,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여전히 부족한 제게 중앙시조대상은 과분한 영광입니다. 당선 통보 전화를 침착하게 마친 후 봇물 터지듯 울음이 터졌습니다. 과연 제가 이 큰 상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많이 두렵습니다.”

제41회 중앙시조대상을 품에 안은 정혜숙(65) 시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은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조 ‘릉의 후원을 걸었다’로 대상을 받은 정 시인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개최된 시상식에서 “고백하건대, 유리 잔도를 걷듯 위태롭게 시조의 길을 걷는 제게 중앙시조대상은 무거운 소임”이라며 “새삼스럽지만 진정한 시조인으로 거듭나겠다.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겠다”고 했다.

이어 “시조를 쓰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건 독자가 있는 시, 식상하지 않은 시를 쓰는 일”이라며 “정형의 그릇 안에 무한한 이야기를 담은, 행간이 넓고 깊은 시조를 쓰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전남 화순 출신인 정 시인은 2003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19년 만에 중앙시조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 사이 무등시조문학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조집 『앵남리 삽화』, 『거긴 여기서 멀다』 등을 펴냈다.
심사를 한 염창권 시인은 수상작에 대해 “자아와 대상 간 관계에서 오는 사유에 시공간적 깊이를 부여함으로써 존재의 심연이 비치는 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제41회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제33회 중앙신춘시조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중앙신춘시조상 김현장, 중앙시조대상 정혜숙, 중앙시조신인상 박화남 시조시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날 시상식에선 제41회 중앙시조신인상과 제33회 중앙신춘시조상의 시상도 함께 진행됐다. 올해 중앙시조신인상은 ‘맨발에게’의 박화남(55) 시인, 중앙신춘시조상은 ‘마리오네트’의 김현장(58) 시인이 차지했다.
중앙시조대상은 시조집을 한 권 이상 펴냈으며 한 해 5편 이상을 발표한 등단 15년 이상의 시조시인, 중앙시조신인상은 시조를 한 해 5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인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중앙신춘시조상은 올 1~11월 매달 연 중앙시조백일장 입상자들이 새로 쓴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가렸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중앙신춘시조상의 상금은 각각 1000만원, 700만원, 500만원이다.
본심 심사위원으로는 염창권·박명숙·황치복(중앙시조대상·신인상), 김삼환·서숙희·강현덕·손영희(중앙신춘시조상) 시인이 참여했다.

2015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7년 만에 중앙시조신인상을 받게 된 박화남 시인은 “안나푸르나를 앞에 둔 한 등산가는 ‘우리는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은 오로지 우리 몸속에 있다’고 썼는데, 시를 쓰는 일도 세상에 없는 길을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시를 쓰다 보면 산 한가운데 혼자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계속 가도 괜찮다는 격려를 받은 기분”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현직 수의사로 활동 중에 중앙신춘시조상으로 등단하게 된 김현장 시인은 “전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다. 시조를 통해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하겠다”며 “앞만 보고 혼자 가지 않고 주위를 돌아보며 시조계에 미미한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열린 제41회 중앙시조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시조시인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숙경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시상식은 코로나19로 인해 축소돼 열렸던 지난 2년과 달리 3년여 만에 처음 정상 규모로 열린 자리였다. 총 60여명의 시조시인 및 수상자 친인척이 참석해 수상의 기쁨을 나눴다.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은 축사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끝자락에 시조 문단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열리게 되어 기쁘고 행복하다”며 “이 귀한 잔치를 해마다 열어주시는 중앙일보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시상을 맡은 최훈 중앙일보 주필은 “제41회 중앙시조대상을 맞아 행사가 처음 개최되던 40년 전 지면을 찾아봤다. 1981년 2월 지면에서 ‘우리 문학이 시조를 계승, 발전시키지 못하여 쇠퇴하고 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며 “40년 전에도 시조가 쇠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인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시조 사랑을 고집해온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피할 수 없다. 시조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계신 한 분 한 분이 모두 위대한 수호자이자 귀중한 자산”이라고 축사를 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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