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과 불편한 동거... 오늘도 나는 '1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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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임 기자]
▲ 이정숙 첫 에세이 <1도를 찾아볼까요?> |
ⓒ 박향숙 |
<1도를 찾아볼까요>는 99℃까지 변화 없던 물이 팔팔 끓기 위해서 필요한 마지막 1℃를 의미하는 것일까? '열정을 가지고 살라'는 이야기일 거로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작가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체온 1도 올리기, 마음의 온도 1도 올리기를 말하고 있었다. 체온을 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삶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유방암 1기라는 명함을 들고 쳐들어 온 불청객과 5년 째 동거 중이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필자는 지난 2017년 가을, 경계성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올 해로 5년 째 관찰 중이다. 작가와 나의 공통분모가 찾아지니 책이 더 가까워졌다. 마음 따뜻한 분이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나에게 위로의 말,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나이를 헤아려보니 우리 엄마보다 젊으셔서, 이런 이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갔다.
1부 '내 몸의 1도를 올립니다'는 작가의 암투병기다. 평소 운동과 음식 조절을 하며 생활했던 터라 암 발병 소식에 작가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낙제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 기분 나도 알거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먹을 걸, 운동은 뭐하러 했는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는지 속상하고 억울했다. 손발이 차고, 찬 음식을 소화 못 시키는 등 글로 접한 작가의 체질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체온을 올리는 게 필요하다. 책에 소개된 한의원 체질 섭생표나 찹쌀 주머니는 나에게 해주는 따뜻한 잔소리 같았다. 그동안 소홀했던 체온 올리기에 신경 써야겠다.
2부는 '다시 보면 내편입니다'라는 주제로 작가의 남편 이야기이다. 대학 새내기 때 만나 40여 년을 함께 지내온 부부의 알콩 달콩 모습이 참 예쁘다. 농작물도 음악을 들으면 잘 자란다며 농장에 열 개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독서는 안하지만 <오마이뉴스>에 보낼 작가의 기사를 맨 처음 읽어주는 열혈 독자다. 아내의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앞장서서 외조를 하고, "이 끼니를 거르면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며 식탐을 부리는 모습까지 정겹다.
"부부가 비슷하게 늙어가는 건 위로가 된다. 머리카락, 주름살, 인지 능력은 물론이고 아픈 곳이 비슷하게 늘어간다. 오늘도 기억력 대신 이해력이 한 뼘 자란다."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늘어가는 건망증을 챙겨주고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남편도 이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킨다.
3부 '당신의 1도를 빌려갑니다'는 작가의 손주, 부모님, 아들, 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톡 프로필에 손주 사진 올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저자는 지금 본인이 그 모든 걸 다 하고 더 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 프로필에 으뜸으로 등장하는 건 물론이고 생일엔 축하 노래까지 하며 손주 앞에서 재롱을 펼친다. 손주 덕분에 작가의 삶이 1도 이상 올라간 것이 틀림없다.
요양원에 계신 작가의 어머님은 몸이 약한 어린 시절에도, 결혼 후 아이를 키울 때도 항상 헌신적이셨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 여전히 자식 걱정하는 늙은 어머니 마음, 보고 싶은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 코로나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말고 나도 엄마께 전화를 걸어야 했다.
"엄마, 그냥 전화했어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당연한 듯 1도를 빌려가고 고마운 줄 모를 때도 많다. 당연한 것은 없다. 빌린 1도를 갚아야할 시간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빚진 것들을 다 갚을 수 있을까?
4부는 글쓰기와 펜화그리기가 어떻게 마음의 1도를 올려주었는지에 대한 글이다. 마음에 묻어 둔 말들을 글로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우연히 접한 펜화의 매력으로 지루한 일상이 특별하게 되었다고 한다.
틈틈이 그린 그림들로 이 책의 삽화를 했고 표지의 그림 역시 본인의 작품이다. 한 알 한 알 제각각이던 취미들이 엮여서 근사한 보물이 되었다. 첫 에세이집을 내면서 '미루기 선수는 이루기 선수가 되기 위해' 한 발을 내딛었다. 앞으로도 그 걸음을 멈추지 않고 쭉 걷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는 별, 내 삶에는 별이 없는 줄 알았다. 암이라는 불청객과 어쩔 수 없이 밤길을 걸으며 비로소 별을 볼 수 있는 눈이 되었다. 사소하고 지루하고 깨깨 묵은 일상, 너무 당연해서 하찮게 여겼던 내 삶 안에 빛나는 원석이 있었다.(중략) 투병의 길에 함께 한 가족들 지인들 덕분에 어두운 밤길도 여행이라 말할 수 있다."- 에필로그 중에서
암을 불청객이라며 홀대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별을 볼 수 있는 눈을 주고 나는 물론 가족과 지인들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환영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내게 온 이상 함께 해야 하는 약간 불편한 존재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당연하게 여기고 소중함을 몰랐던 내 몸과 마음, 그리고 가까이 있는 귀한 인연들도 잘 살펴 '1도 올리는 삶'을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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