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의 2022 개정교육과정, 절차도 내용도 엉망진창
[정덕경 기자]
지난 11월 9일,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공개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니 교육부가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도, 절차도 문제투성이입니다.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교육부는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자유'라는 표현은 정책 연구진의 당초 시안에는 없었다가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추가한 것입니다. 이에 연구진들은 반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언론의 취재 결과 교육부 직원들은 지난 10월에도 연구진 회의에 참석해 "이젠 정치의 시간"이라며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넣고 전근대사 분량을 늘리라는 등의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에서도 교육부가 위원회 회의 결과를 왜곡해서 발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 중 일부에 따르면 연구진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중 선택하여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는데,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추가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교육부에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지만 교육부는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12월 2일 열린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들어간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14명 가운데 13명이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한 교육부 관계자들은 "심의회는 의결할 수 있는 기구가 아니며 최종 결정은 교육부 장관이 한다"며 "표결 결과는 구속력 있는 결정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행정예고안을 발표할 당시 "역사과 연구진에 자체 수정·보완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해소되지 않은 쟁점이 남아있어 교육과정심의회 등 개정 관련 협의체 논의를 거쳐 관련 표현(자유민주주의)을 반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위의 과정들을 살펴 보면 차관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며, 교육부가 굳이 반영하려는 '자유민주주의'에 어떠한 절차적 정당성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초중등학교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1월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사물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이념적 개념이기에 그 의미 또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유민주주의는 한국 현대사적 맥락에서 '반공', '분단'을 강조하는데 쓰여왔습니다. 실제로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끼워 넣은 것도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과 같이 남북의 차이를 강조하고 통일 정부가 아닌 남한만의 정부 수립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맥락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하나의 구호가 되어 독재를 미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평화적 통일에 대한 요구를 탄압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육부가 근거로 제시하는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다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1972년 박정희가 유신헌법에 처음 사용한 표현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뒤에는 '지켜내자', '수호하자' 등의 표현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에게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똘똘 뭉쳐야 하고,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내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자유를 강조합니다. 지난 8월 15일, 윤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3번 말했습니다. 9월 유엔 총회에서도 '자유'를 21번 언급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유'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본을 이웃으로 칭하며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반공과 분단, 적대관계를 강조한 것입니다.
사족이지만 친윤석열계 의원을 주축으로 한 국민의힘 공부모임 '국민공감'은 출범과 함께 첫 주제로 '자유민주주의'를 택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암살', '밀정'등을 통해 알려진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은 일제시대 의열단을 조직해 그 누구보다 민족해방에 앞장선 인물이지만, 한국 독립운동 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북녘에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반공, 분단을 강조하며 한쪽 눈을 가린 채 역사를 바라본다면, 역사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이는 교육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 하나를 넣고 빼는 문제를 넘어, 교육과정에서의 학습목표가 냉전적 시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이번 교육과정에서 제주 4.3 항쟁이 명시된 '학습요소' 항목이 삭제되며 수업시간에 4.3 항쟁을 다뤄야 할 근거가 사라졌습니다. 이 상황에 4.3 항쟁 유가족뿐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 교육청까지 나서 교육과정에 제주 4.3 항쟁을 명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제주 4.3 항쟁은 이승만 정부의 단독 선거 및 단독 정부 수립에 항거하여 일어난 항쟁으로 당시 통일 정부 수립의 열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또한 단독 정부가 아닌 통일을 지향했다는 이유로 우리 현대사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히고 고통받은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학습요소'의 삭제 때문에 일어난 부차적인 현상일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교육 당국의 태도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앞으로 제주 4.3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교육, 나아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이 위축될 우려 또한 갖게 됩니다.
노동교육도, 성평등도 빠진 개정교육과정
한편 새 교육과정의 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의 가치'가 '일의 가치'로 기술되는 등 각종 문구에서 '노동'이 사라졌습니다. '노동자'라는 표현도 '근로자'로 바꾸고, 반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표현은 '기업의 자유 및 사회적 책임'으로 바꿨습니다.
근로(勤勞)는 '부지런히(勤) 일하다(勞)'라는 뜻으로 사용자의 관점에서 사용되어 온 단어입니다. 반면 노동(勞動·몸을 움직여 일하다)은 노동자의 주체적인 역할을 좀 더 강조한 단어입니다.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던 역할에서,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성장해 나간 노동자들의 역할 변화를 보여 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 당국은 이와 같은 변화를 퇴보시키려는 것입니다. 또한 기업에 대해서는 '자유'를 강조하고, '경제 생활'을 '자유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로 수정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노동자들이 그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는 존재로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기업의 책임 대신 자유를 강조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체제까지 소개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성에 대한 편견'으로 바꾸고 '성 소수자'를 '성별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라고 수정하며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 자체를 삭제했습니다. 교육목표에서 생태전환교육이 빠지고 초등학교 교육목표에서는 '민주시민'이 삭제됐습니다.
12월 5일 열린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일부 위원들이 수정안을 마련해 제시했습니다. 대통령령인 교육과정심의회 규정은 제8조에서 "심의회 의결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써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급수정안 제시에 당황한 교육부는 표결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사회적 합의 기구' 무색해진 국가교육위원회
교육부는 바로 다음 날인 6일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심의에 넘겼습니다. 국교위 위원장 이배용은 바로 박근혜 정부 당시 '친일, 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사업의 전면에 나섰던 인물입니다. 또한 교육부 관계자들도 '국교위가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교육부에 무리한 요구는 없을 것'이라며 '교육과정 적용이 연기되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정부의 신뢰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국교위가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 등의 말을 했습니다. 절차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육과정 시안이 통과되어야 하고, 국교위가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입니다.
국교위는 교육부의 생각대로 흘러갔습니다. 수적 우위가 아닌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요한 교육정책을 수립하고자 탄생한 국교위지만 합의 대신 표결로 의결을 진행했으며, 일부 위원들은 추가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음에도 이배용 위원장은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를 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결국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되고 말았습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이 정권의 입맛에 맞춰 난도질되고 있습니다. 정권은 이를 통해 우리 학생들에게 더욱 냉전적인 시각을 강요하고, 현대사 기간 동안 수많은 투쟁을 통해 일궈낸 노동의 권리를 퇴보시켜 교육하려 합니다. 교육부 장관조차 세우지 못한 반 년의 기간 동안 이 정권이 교육에 대해 보여준 철학이라고는 '교육도 산업의 일환'이라며 반도체 교육만 앞세운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정권의 냉전적, 반노동적 성향마저 교육에 투영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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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현직 교사로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은 역사의 진실과 정의,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미래 세대에 가르치기 위해 함께 배우고, 함께 실천하는 교사, 예비 교사,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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