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금융사고와 리더의 책임

송승섭 2022. 12. 1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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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금감원 vs 손태승 법정공방 판결
손 회장, 1·2심 이어 승소판결 이끌어 내
"내부통제 마련했다면 미준수로 제재안돼"

편집자주 -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금융감독원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간의 법정공방이 손 회장 측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소송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사태를 계기로 시작됐지만, 점차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사고의 책임을 얼마나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재판에서는 무슨 말이 오갔고 사법부는 어떤 판결을 했을까요?

DLF 사고로 시작된 'CEO 책임' 논란

발단은 DLF 사태입니다. DLF는 금리·환율·신용등급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증권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우리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사에서 이 상품을 팔았죠. 전액손실이 가능한 상품이었지만 은행들은 사실상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처럼 설명해 많은 소비자가 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2019년 전 세계적으로 채권금리가 급락하면서 큰 원금손실이 발생했습니다. 피해 규모가 커지자 금감원이 나섰죠.

검사에 착수한 금감원은 은행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들을 징계했습니다. 손태승 회장도 징계 대상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징계는 ‘문책경고’였는데 3~5년간 금융사 재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였습니다. 2020년 3월 손 회장은 부당한 처사라며 행정법원에 징계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내게 됩니다. 2년 9개월간 금융당국과 손 회장 간의 법적 다툼이 시작된 거죠.

손 회장과 금감원 측 변호인단은 크게 3가지 쟁점을 놓고 다퉜습니다. ①내부통제 실패 책임은 CEO가 져야 하는지 ②DLF 사고는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는지 ③내부통제를 마련했지만 철저히 따르지 않았다면 ‘마련의무’로 징계할 수 있는지입니다. 내부통제 책임자의 경우 1·2심 모두 CEO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DLF 사고에 큰 내부통제 흠결이 있었는지는 2심 법원이 “금감원 지적 사실은 지엽적이고 세부적”이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죠.

가장 큰 논란은 ‘내부통제 마련의무’와 ‘내부통제 준수의무’입니다. 내부통제란 한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 할 절차’를 말합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융사 임원은 내부통제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금융당국이 제재할 수 있고요. 하지만 만들어 놓은 내부통제를 철저히 운용하지 않았을 때 제재할 근거는 없습니다. 손 회장 측은 내부통제를 마련했는데 금감원이 ‘내용상의 미흡’이나 ‘운영 문제’로 제재를 내려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양측의 변호인은 다른 사건이나 재판 내용을 끌고 와 공방을 벌이기까지 했죠.

하나은행 판결·횡령사건 두고도 날 선 공방

금감원 측 변호인단: 하나은행 판결에 있는 내부통제 마련기준 내용을 강조하겠습니다. 해당 재판부에서는 내부통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형식적 준법감시에만 그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우리은행도 상품선정위원회 규정을 모호하게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다른 위반사실 역시 인정돼야 합니다.

재판부: 여기서 하나은행 재판과 비교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합니다.

손태승 측 변호인단: 저희도 구두로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사건에 대해 내부통제 기준이 있었지만 마련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하나은행은 불완전판매 자체를 문제 삼았던 경우입니다. 하나은행 판결은 피고 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실효성이란 모호한 개념을 토대로 판결했다고 봅니다.

2022년 4월 8일 서울고등법원
금감원 측 변호인단: “우리은행에서는 최근 614억원 횡령사고를 알아차리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은행이 일반적인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 그조차도 준수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DLF 사건처분은 모두 제재 근거에 의해 이뤄졌고 피해도 막대하므로 원고 요구를 기각해야 합니다.”

손태승 측 변호인단: “금감원이 이 사건과 무관한 600억원 횡령사고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수사가 진행 중이고 경위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드러난 것만 보면 내부통제 기준을 어기지 않았고 업무영역 자체도 다릅니다. 기본적 사실관계도 다르고 처분사유도 아닌데 거론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합니다.”

2022년 5월 13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 "내부통제 마련했다면, 미준수로 징계 안 돼"

지난 15일 대법원은 양측의 팽팽한 논쟁을 본 뒤 손 회장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것을 ‘마련의무 위반’으로 제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 것이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이상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를 징계사유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만 금감원에서는 ‘별표2’가 내부통제 설정·운영기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별표2는 ‘금융사 지배구조 감독규정 11조1항의 별표2’를 말합니다. 11조는 내부통제의 기준을 정의한 내용인데 ‘별표2’는 16개 항목으로 내부통제기준의 설정·운영기준을 구체적으로 써놨습니다. 1심에서는 재판부에서 별표2 규정이 ‘법정사항이 아니라 그 밖의 필요한 사항’이라며 기준으로 삼기 어렵다고 봤지만, 최종적으로는 규범력을 인정받게 된 거죠. [참고기사: DLF 판결문 뜯어보니…손태승·함영주 1심 승패 가른 '별표']

금융당국도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금융위원회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향후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관련 제재안건 처리 및 향후 제도개선 등에 참고 및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금감원도 “금융위 등 관계기관과 함께 내부통제의 실효성 제고 방안 마련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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