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반전] 여성의 완경 평균 연령 49.7세, 이게 의미하는 것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편집자말>
[전윤정 기자]
"석류가 폐경을 늦춰주는 효과도 있다네."
▲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 형사 해준(박해일 역)의 부인 정안(이정현 역). |
ⓒ CJ ENM |
▲ 석류는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성분을 가져 완경을 늦춰준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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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완경을 늦춰준다거나 증상을 완화한다는 건강식품에 자꾸 시선이 간다. '홍삼이 좋다더라, 달맞이꽃 오일이 좋다더라...' 남성에게 좋다고 알려진 복분자가 오히려 여성에게 더 좋다거나, 몇 년 전 논란이 됐던 백수오까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석류는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과 비슷한 성분을 가져 완경을 늦춰준다는 기사를 자주 본다.
이런 관심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의 관심사인 듯하다. 미국에서는 완경기 호르몬 요법으로 사용하는 물질이 채소 얌이나 콩에 들어있다 하여 완경기 여성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 산부인과 전문의 제니퍼 건터는 저서 <완경선언>에서 석류, 콩 등 식물에 들어있는 '피에스트로겐' 성분은 에스트로겐과 이름이 비슷할 뿐이라며, 인간은 식물에서 호르몬을 취하지 않고 호르몬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완경과 관련된 건강기능식품들을 '메노슈티컬(menoceuticals, 완경의 menopause와 약학의 pharmaceutical 합성어)'이라 부르며 상업화된 건강식품 시장을 우려한다. 오히려 골고루 먹는 건강한 식단과 적절한 운동이 완경 전후에 더 도움이 된다고 권한다.
우리가 완경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노안처럼 노화를 체감하는 뚜렷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노화의 진행을 더디게 하고 싶듯이, 완경도 늦게 맞고 싶은 것은 사람의 인지상정일 테다.
2021년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완경 평균 연령은 49.7세다. 여성의 대부분은 인생의 1/3을 완경 상태로 보낸다. 기대수명 늘어남에 따라 여성은 어쩌면 인생의 반을 완경 이행기 혹은 완경기 상태로 보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완경의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 완경 이후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완경을 또 다른 단계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고대 마야족이나 멕시코에서는 완경 이후 여성만이 병을 고치는 사람이나 산파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완경 이후의 여성을 사제로 임명하기도 했다(완경으로 처녀성이 회복되어 순수성을 되찾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 월경주기 때문에 쉬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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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은 에세이 <우주 노파>(<세상 끝에서 춤추다>)에서 이제 순결의 의미가 희박해진 것처럼 완경 역시 어떤 의미도 없다며, 당당하게 '노파'가 되자고 한다.
세계 3대 SF 작가로 꼽히는 그답게 만약 우호적인 외계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찾아와 "당신네 종족의 본질을 배울 수 있도록 지구인을 한 사람 내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상황을 설정한다. 작가는 마을 슈퍼마켓이나 장터에서 일하는 60세 넘은 여성을 하나 고르겠다고 한다.
이 여성은 처녀에서 성적으로 비옥한 여성이었다가 완경기를 통과하며, 생명을 몇 번 낳았고 죽음도 몇 번 직면했다. 인간의 모든 상태, '변화'라는 핵심을 경험했기 때문에 인류를 대표하기에 타당하다. 이런 여성은 분별, 재치, 인내심, 경험에 의한 통찰을 충분히 지니고 있을 것이라며 말한다. "그러니 우주선에 올라요, 할머니."
주위에도 완경기를 슬기롭게 보내는 지인들이 많다. 수영을 좋아하는 지인은 완경 후에 - 월경주기 때문에 - 쉬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여행을 즐기는 친구는 짐을 쌀 때 혹시나 해서 챙기던 생리대를 가져가지 않아도 돼서 마음마저 가벼워졌단다. 매달 힘들었던 월경전증후군(PMS)과 생리통에서 벗어나 오히려 감정 기복이 줄어들었다는 친구도 있다. 완경기에 오히려 가족들과 더 원만하게 지낸다고 한다.
이제,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갱년기 엄마', '늘 지쳐 있는 무력한 갱년기 여성' 같이 드라마나 건강식품 광고에서 보아 온 완경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완경에 대한 낡은 이미지는 버리고, 새로운 인생 단계인 '완경기'를 지혜롭게 보내고 싶다.
완경기 여성은 월경과 완경을 통해 시작과 끝, 빛과 어둠, 탄생과 소멸이라는 '변화'에 대처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앞으로 완경은 늙고 부족한 표시가 아니라 또 다른 자신감과 강함의 증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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