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코로나’ 확 푼 中, 아노미에 빠졌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코로나 감염자 폭발적으로 늘어나 사회적 불안감 확산
의료진 집단 감염 많아 이들 자가 격리하다 진료 차질
‘의료체계 붕괴’로 치료 못 받은 노인환자들 사망 증가
중국이 ‘코로나19 아노미’(anomie·혼돈상태)에 빠졌다. 중국 당국이 3년 가까이 고수해오던 무관용 ‘칭링팡전’(淸零方針·zero Covid policy) 기조를 갑작스레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봉쇄 중심의 방역지침이 사문화(死文化)되는 바람에 당국이나 병원, 시민들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해 대혼란 속으로 빨려드는 모양새다.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하루아침에 폐기해버리자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방역완화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후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 CNN 등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지난 11일까지 베이징에서만 코로나 증상 감염자가 2만명에 육박했고, 진료소를 찾는 시민들은 일주일 전보다 16배나 급증하는 등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확산 상황은 더 심각하다.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에서 14일 80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조사 응답자 가운데 51%는 코로나 진단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답했다. 이날 또 다른 조사에서 베이징에서 감염됐다는 응답자는 53.5%였고 후베이(湖北)성은 56.6%, 쓰촨(四川)성 55.8%, 허베이(河北)성 55.3%, 충칭(重慶)시 54%로 각각 집계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미크론 하위 변이인 BQ.1이 중국 9개 지역에서 모두 49건 검출돼 새로운 변이 확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코로나 감염자통계 발표를 사실상 중단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14일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원하는 사람만 받는 방침을 시행함에 따라 다수의 무증상 감염자가 PCR 검사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무증상 감염자의 실제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며 "오늘부터 무증상 감염자 수치를 공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중국은 당초 코로나 신규 감염자를 확진자와 무증상 감염자를 구분해서 발표해왔다. 하지만 7일 SCMP 캡처 발표된 10개항의 방역완화 조치로 대다수 무증상 감염자가 집계에서 누락됐다. 코로나는 급속 확산되는데 정부통계에서는 오히려 감염자가 대폭 감소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면서 통계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자 중국 당국이 무증상 감염자 발표를 중단한 것이다. 무증상 감염자를 제외하면서 중국의 신규 코로나 감염자(14일 기준)는 1944명을 기록하며 2000명 선 아래로 내려왔다. 지난달 말에는 하루 신규 감염자가 4만명을 웃돌았다.
통계상으론 감염자가 확 줄었지만 병원들은 환자들로 넘쳐났다. 13일 오전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아동병원에는 아기부모 40여명이 접수창구 앞에 긴 줄을 섰다. 다섯 살짜리 손자를 데려온 할머니는 “대기번호가 200번이 넘어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4일 낮에는 시청(西城)구의 한 아동병원은 환자 접수번호가 600번을 넘어섰다.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의료진의 감염도 급증해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현지 매체 금융계(金融界)에 따르면 베이징의 한 3급병원은 의료진 20%가 코로나에 감염돼 자가 격리 상태라 병원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베이징 하이뎬(海澱)구 병원의 약국창구에는 “모든 당직 약사들이 아프니 양해 바란다”는 안내문이 붙었을 정도다.
이 병원 관계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많은 의사들이 코로나에 감염됐지만 병원 문을 닫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 근무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의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방역을 완화함으로써 환자와 의료진 모두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았고, 의료대란의 우려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저질환에 많이 노출된 노인 사망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에 따르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는 “칭화(淸華)대 전자게시판에 닷새 동안 퇴직 교직원의 부고가 10건 넘게 올라왔으며 같은 기간 베이징대 퇴직자 10여명도 사망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칭화대의 한 교직원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부고를 접한 것 처음”이라며 “숨진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시기적으로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시신을 안치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화장도 지연되고 있다는 사례도 잇따른다. 한 베이징 시민은 웨이보에 “아버지가 숨져 여러 장례식장에 연락했는데 장례식장이 모두 차서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며 “병원 영안실로 모셨으나 안치실이 없어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해 3시간만에 겨우 안치할 곳을 찾았다”는 글을 올렸다. 베이징 둥팡(東方)병원의 한 영안실 관계자는 웨이신 단체 대화방에서 “최근 베이징에서 사망자가 급증했고 장례식장마다 직원들이 대거 감염돼 시신 화장에 5~7일이 걸린다”며 “비어 있는 안치실이 없어 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SNS에는 화장 시설이 있는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장례식장 입구에 밤 늦게까지 시신 운구 차량이 길게 늘어서고 있는 상황을 전하는 동영상도 올라왔다. 바바오산 장례식장 관계자는 “모든 소각로를 24시간 가동하고 있지만 5∼6일 기다려야 화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바바오산 장례식장에는 19개 소각로가 있고 1개당 30분에 한 구씩 화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에는 12개 장례식장에 모두 90개 소각로가 있고 모든 소각로가 24시간 가동하면 하루 4000구 이상을 화장할 수 있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중국 공식 통계상 사망자는 지난 열흘간 0명을 기록 중이다.
의료계 상황이 날로 악화되면서 ‘백지 시위’가 벌어진 지 2주 만에 의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급증한 코로나 감염자 치료에 내몰리면서 기본적인 의료장비조차 지급받지 못했다며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시위는 12일 장쑤(江蘇)성, 쓰촨(四川)성 등 5개 성 6개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SNS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시위 학생들은 대학 부속병원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에 불만을 표출했다. 장쑤성 쑤저우(蘇州)의과대 학생들은 학교 측이 부설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요구하면서 N95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학생들이 격리돼 근무를 못하게 되자 병원 측은 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월급을 삭감하기도 했다. 쓰촨성 의대생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중잣대 거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 병원치료가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시민들은 의약품 사재기에 나서면서 감기약과 해열제, 진통제 등 의약품과 코로나 진단키트도 동이 나고 있다. 약국마다 재고가 떨어져 원래 가격의 3~4배에 달하는 웃돈을 줘도 구하기 어렵다.
영국 BBC방송은 "사재기는 팬데믹 초기 전 세계적으로 목격될 수 있던 현상이었으나 이제는 방역을 완화한 중국에도 벌어지고 있다"며 "시민들이 약국으로 몰려가 의약품을 닥치는 대로 구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주 코로나 진단키트의 매출이 300%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약사들은 사재기로 텅텅 빈 진열대 사진을 올리며 구입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고 정부도 "의약품을 비축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코로나 감염자 폭증은 중국에서 복숭아 통조림, 레몬은 물론 레몬맛 과자와 탄산수 등 신맛이 나는 먹거리가 품귀현상마저 불렀다. '비타민C가 들어 있다 →면역에 좋다 →코로나 감염을 막아준다'라는 믿음 때문이지만, 근거는 별로 없다.
CNN에 따르면 중국에서 복숭아 통조림 ‘패닉 바잉’(사재기)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복숭아 통조림 3분의 1을 생산하는 산둥(山東)성의 업체들은 야간에도 공장을 돌릴 정도로 수요가 폭증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전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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