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뺨치는 '6세대 전투기' 개발...한국이 '호구' 되지 않으려면 [이철재의 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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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ㆍ일본ㆍ이탈리아는 지난 9일 3개국 정상 공동 성명에서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3개국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이외 나라와는 처음이다.
3개국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의 명칭은 글로벌 전투기 프로그램(GCAP). 2035년까지 개발이 목표다. GCAP엔 영국의 BAE시스템,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ㆍ미쓰비시전기와 이탈리아의 항공ㆍ방위기업 레오나르도 등이 참가한다. 스웨덴도 GCAP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영국은 템페스트(Tempest)를, 일본의 X-2 신신(心神)를 따로 차세대 전투기로 개발했다. 일본은 X-2의 기술을 시험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목적으로 실증기를 만들어 띄우기까지 했다.
3개국이 왜 독자 개발을 접었을까. 차세대 전투기가 요구하는 성능이 엄청나고 그에 따른 개발비가 비싸 혼자 개발하기엔 벅차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가 나는 전투기의 세계
3개국이 꿈꾸는 차세대 전투기는 6세대다.
전투기에도 세대가 있다. 제트기가 처음 나왔을 때가 1세대(1940~50년대), 초음속의 2세대(50~60년대), 발전한 레이더와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해 가시거리 너머의 전투(BVR)가 가능한 3세대(60~70년대), 플라이바이와이어(FBW) 비행 제어 시스템과 다목적 전투기가 등장한 4세대(70~90년대) 등이다.
현재 대부분의 주력 전투기는 4.5세대다. AESA(능동전자 위상배열) 레이더ㆍIRST(적외선 추적 장비)ㆍ복합소재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게 4.5세대다.
스텔스 전투기는 5세대라 부른다. 그렇다면 6세대는 어떻게 정의할까. 스텔스는 기본이다. 6세대 전투기엔 대용량 네트워킹ㆍ인공지능(AI)ㆍ데이터 융합ㆍ사이버 전쟁 등 최첨단 정보통신(ICT) 기술이 녹아 들어있다.
무인항공기(UAV)와 함께 작전하는 유무인복합체계(MUM-T)는 물론 6세대 전투기 자체가 무인일 가능성도 있다. 여러 대의 ‘충성스런 윙맨(loyal wingmanㆍ무인기)’을 끌고 다니면서 적 방공망 제압(SEAD)과 같은 위험한 작전엔 무인기를 투입한다.
그러나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차기 전투기 사업을 구상하면서 6세대를 들고 나왔는데,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개념”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6세대 전투기의 요소는 SF에 가깝거나 지금보다 몇 단계 더 뛰어난 기술이 필요로 한다. 그러려면 엄청난 예산을 퍼부어야 한다. 독자 개발을 고집한 일본이 손을 들고 영국ㆍ이탈리아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너도나도 뛰어드는 6세대 5국지
6세대 전투기 개발 경쟁은 크게 다섯 국가·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다. 처음에 불을 붙인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뒤를 이어 영국ㆍ일본ㆍ이탈리아처럼 프랑스ㆍ독일ㆍ스페인도 공동 개발에 뛰어들었다. 또 러시아와 중국은 독자 개발 노선을 걷고 있다.
미국은 해군과 공군이 따로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미 공군의 6세대 전투기는 차세대 제공지배(NGAD)며, 미 해군은 F/A-XX라 불린다.
사업의 내용은 대부분 다 비밀로 가려졌다. 올 6월 1일(현지시간) 프랭크 켄달 미 공군부 장관이 6세대 전투기 개발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게 전부다. 또 컴퓨터 그래픽의 상상도 몇 개가 인터넷에 나돌 뿐이다.
다만 스텔스를 고려해 꼬리날개가 없는 무미익에다 가오리 구조 동체일 전망이다. 꼬리날개처럼 툭 튀어나온 구조물은 레이더에 바로 걸린다. 그래서 꼬리날개 대신 추력편향 엔진으로 전투기의 방향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유럽의 프랑스ㆍ독일ㆍ스페인은 미래전투항공시스템(FCAS, 프랑스에선 SCAF) 사업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사업을 시작했고, 지난해 스페인이 합류했다. 프랑스의 닷소 에비에이션, 독일의 에어버스, 스페인의 인드라가 주계약업체다.
2029년 첫 비행을 목표로 한다. 추가 사업 파트너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그와 수호이 등 러시아의 항공 전문 방산기업들이 6세대 전투기 개발에 이미 들어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서방권으로부터 반도체와 같은 첨단부품을 수입하는 길이 끊겨 연구ㆍ개발이 제대로 될지 불분명하다.
중국은 지난달 주하이(珠海) 에어쇼에서 무미익의 6세대 전투기 컨셉 디자인을 공개했다. 마크 켈리 미 공군전투사령부(ACC) 사령관은 지난 9월 중국이 이미 6세대 전투기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투기 전문가들이 중국이 2035년까지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6세대 전투기 개발은 요구 조건이 서로 다른 미 공군과 해군,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다국적 협력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국적 협력은 개발 비용을 나누고, 수요를 합쳐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며 “각자 강한 분야를 내세울 수 있지만, 최근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벌어진 FCAS 논쟁처럼 정치·산업적 이해로 인해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공동 개발 그룹(영국·일본·이탈리아, 프랑스·독일·스페인)은 5세대 전투기를 거르고 바로 6세대 전투기로 가는 경우다. 그래서 전망을 낮게 보는 의견도 있다.
한국 혼자 6세대 개발할 수 있을까
6세대 전투기는 현재 뜬구름 잡는 얘기다. 5개 나라와 그룹 어디서도 구체적인 정보가 나온 곳이 없다. 그러나 전투기가 앞으로 가야 할 미래라는 데 부정하는 이 또한 없다.
한국은 아직 4.5세대인 KF-21 보라매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는 수준이다.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KF-21는 앞으로 내부 무장창으로 개조해 스텔스 성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5세대 전투기론 좀 모자를 전망이다.
최현호씨는 “우리 손으로 4.5세대 전투기 KF-21을 개발ㆍ배치를 이룰 시기에 다른 나라들의 6세대 전투기 개발을 지켜볼 수도 있다”며 “2035년 일본과 중국이 6세대 전투기를 보유할 경우 이들과의 공군력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행히 관심들은 갖고 있다.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1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2022 하반기 산학위원회 항공우주전문가 포럼’에서 “개발 성과와 수출 호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 변화 관련 기술에 집중 투자해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며 “6세대 전투기 등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공군 항공우주전투발전단은 지난해 5월 항공우주력발전컨퍼런스에서 2035년까지 6세대 전투기의 주요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KF-21의 덩치를 좀 더 키우고, 스텔스 성능을 강화한 뒤 첨단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한국 독자 6세대 전투기인 KF-XX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 개발비와 고난도 기술, 고위험을 한국이 혼자 떠안기가 사실상 힘들 수도 있다.
만일 독자 개발이 어렵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6세대 전투기를 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선뜻 6세대 전투기를 내줄지 지금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나 그룹의 개발 사업에 동참하는 방법만 남았다.
한국이 KF-21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각종 탑재 무기 개발과 스텔스화 업그레이드를 완수한다면 해외 협력도 고려할 만한 사안이다. KF-21의 성공을 전제로 한국이 공동 개발 사업에서 들러리나 호구로 머무르진 않을 수 있다.
6세대 전투기는 전투기는 한국의 입장에선 미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6세대 전투기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올 미래이기에.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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