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관제 애도' 뚫고나온 "추모다운 추모", 왜 50일이나 걸렸나

조혜지 2022. 12. 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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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사회학자들 "연대 봉쇄하는 통치술, 유족 목소리 막았지만..."

[조혜지 기자]

 10.29이태원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앞 참사현장 입구 도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다른 애들처럼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맞아요, 나쁜 것만 못 해준 것만 생각나요 그래..."
"딸애가 이렇게 되니 자존감이고 뭐고 없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이렇게 나왔거든요."
"너무 잘했어요. (중략) 우리도 옆에서 지켜 줄 거예요. 어머니 뜻대로 할 수 있도록."

산재 사고로 아들을 잃은 고 김용균씨의 엄마 김미숙씨는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의 넘치는 눈물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았다. 처음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신 시민분향소를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직접 마련하는 날, 준비 내내 눈물짓던 어머니는 분향소에서 딸을 만나는 순간 다시 오열했다.

"안타까워서 어떡해, 좋은 데 갈 거예요... 책임질 사람들은 다 죄받을 거예요."

지난 16일 이태원참사 희생자들의 49재가 봉행된 서울 종로구 조계사. 희생자들의 위패를 태우는 소전 의식을 바라보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토하는 아버지에게, 염주를 손에 쥔 한 중년 여성 시민이 다가가 위로를 건넸다. 그의 눈가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대웅전 측면에 마련된 상단에는 희생자의 영정과 위패가 올라 있었다.

윤석열 정부 '관제 애도' 뚫고 나온 유족들의 목소리
 
 10.29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원하는 유가족들은 이 분향소에 희생자의 영정사진을 올린 뒤 오열했다.
ⓒ 공동취재사진
같은 날 오후 참사 현장인 이태원에서 열린 시민추모제에선 눈 그친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시민 8천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이 자리에선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희생자들의 이름을 외치며 "기억하겠습니다"라고 호명했다(관련기사 : "OOO님 기억하겠습니다"... 그들의 이름, 이태원에 울려퍼지다 http://omn.kr/220po).

10월 29일 참사 당일로부터 50일, 희생자 유가족은 "이제야 저희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추모다운 추모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

재난 사회학자들은 참사 발생 후 50일에 이르러서야 '추모다운 추모'가 가능하게 된 원인을 현 정부의 책임 회피를 위한 '관제 애도' 방침에서 찾았다.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으로 일했던 박상은 플랫폼c 활동가는 17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주최로 열린 10.29 긴급 연속 토론회에서 "세월호 참사 때는 (대통령의) 사과 후 지지층 신뢰를 회복하며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지만, 이태원 참사는 정부가 처음부터 책임 회피 전략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참사 다음날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인파가 모인 것은 아니다",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등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초기 회피 발언부터 공문에서 '압사'라는 단어를 빼고 '참사'를 '사고'로 명명한 정부 방침까지. 재발 방지를 위해 내놓은 정책들도 "참사 원인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진행 중이던 대책을 재발방지 대책으로 꾸며서 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여당이 '용어 선점'에 집중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정부와 여당은 원인 규명, 재발 방지와 같은 용어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레토릭(정치적 수사)일 뿐인데, 수사로 재난 조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계속 지적 됐는데도 아무런 진상 조사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수사 결과만을 기다리자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폭력과 애도의 정치를 연구해 온 정원옥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참사 초기 정부의 섣부른 결정들이 곧 애도를 검열하고 정치사회적 논쟁 한가운데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서게 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유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민 사회의 대응은 낯설고 비윤리적인 통치술에 맞서 이 사건을 합당하게 명명하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되찾는 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는데, 유족들의 목소리가 들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고 봤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창립 선언 당일 "세월호의 길"을 언급하며 도마에 스스로 오른 원인도 같은 맥락에서 짚었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관제 애도 밑바탕에 어떤 위기 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지 상징하는 것"이라면서 "4.16 운동이 보여준 애도와 연대의 정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봉쇄하기 위한 통치술이 곧 관제 애도의 강요였다"고 말했다.

관제 애도를 넘어선 그 이후의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박상은 활동가는 부실 수사 논란과 정쟁으로 꽉 막힌 현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상설 재난 조사 기구와 관련된 법까지 발의됐는데, 지금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수사→국정조사→국정조사 청문회 합의 실패'로 흘러간 상황이 이태원 참사 앞에선 '수사→국정조사→국정조사 파행'의 순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수사-정쟁-파행 반복되는 진상규명 구조, 거리로 나서는 유족들
 
 이태원참사 발생 47일째인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 광장에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마련한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가운데,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이날 합동분향소에는 유가족들이 직접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가져와 모셔둔 후 오열하며 헌화했다.
ⓒ 권우성
당시 같은 문제제기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독립 재난 조사 기구 설치를 담아 2017년 '국가재난관리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법안이 박 의원의 대표발의로 지난 2월 올라왔지만, 행정안전위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박 활동가는 안전 대책의 초점을 '통제'가 아닌 '권리'로 이끌어가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는 그 자체로 국가 질서 유지 역할과 연관돼 있기에 경찰력과 시민 감시,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책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통제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연결되는 안전, 위계적인 명령과 통제구조보다 분산형 대응 시스템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시민들의 정치적 애도의 심연에는 정의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망과 믿음이 있다."(유해정 <정치적 애도를 통한 삶의 재건 : 세월호 참사의 시민 경험을 중심으로> 중에서)

정 교수는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위 논문 구절을 인용하면서, 참사에 시민들이 보내는 애도는 곧 "희생자의 억울함을 푸는 일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이 존중받는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고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참사로 가족을 잃은 당사자들과 애도를 보내는 비당사자들 간의 연대로 "남은 자들의 새로운 관계 맺기"가 가능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한편,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오는 30일 오후 6시 다시 시민추모제를 진행할 계획이다. 유가족들이 언론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한 달 여 전부터 정부를 향해 줄곧 요청해 온 6대 요구 사항을 다시 전달하기 위해서다.

▲국가책임 인정 및 공식 사과 ▲피해자 참여 속 성역 없는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이태원 참사 기억 및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지원 ▲2차 가해 방지 대책 마련 ▲재발 방지 및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 대책 마련 등이 그 요구들이다. 

*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압사 참사 추모제(12.16) 보도 댓글창을 닫습니다. 이는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해 희생자와 유족, 생존자와 주변사람들의 명예·사생활·심리적 안정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조치입니다. 독자여러분들의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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