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우산혁명 주역' 네이선 로 "백지 든 중국인들, 영리한 움직임"

김종대 2022. 12. 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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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가 바라본 중국과 홍콩...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면 안돼"

[김종대 기자]

 마이크를 들고 발언 중인 네이선 로
ⓒ Nathan Law
 
2019년 봄, 홍콩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있었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폭력 진압과 일방적 억압은 홍콩의 봄을 보란 듯 앗아갔다. 그러나 2022년 겨울, 중국에서 시진핑 집권 이후 초유의 정치적 시위가 촉발됐다. 중국의 꿈틀거림에 이끌린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시 홍콩을 향한다.

네이선 로는 2014년 우산 혁명을 주도한 이후 홍콩 민주화운동의 리더로 우뚝 솟았다. 이후 2016년 아시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나 민주화 활동을 이유로 제명됐다. 이후 몇 번의 투옥을 겪었고, 신변의 위협이 커지면서 영국으로 망명했다. 네이선은 망명 후에도 홍콩 민주화에 목소리를 냈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가 강조한 '자유'의 가치는 새삼 무거웠다. 지난 7일, 화상으로 만난 네이선 로에게 그가 바라보는 중국과 홍콩,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봄에 대해 물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쏟아진 중국 정부 비난... 그렇게 시작된 관심
 
  홍콩 민주화 운동 및 중국 백지 시위 타임라인
ⓒ 애증의 정치클럽
-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나요?

"제 가족은 정치와는 전혀 무관했어요. 소위 말하는 '블루 칼라'(노동자) 집안이었어요.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셨고 어머니께서는 환경미화원이셨죠. 부모님은 일종의 '난민 의식'을 가지고 계셨어요.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최대한 멀리 하려고 하셨죠. 그래서 정치 얘기도 잘 안 했어요. 그저 저희 형제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셨어요.

그러다 2010년, 제가 고등학생 때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요. 류샤오보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일한 중국인인데, 중국 정부는 그를 비난했어요. '노벨상을 받은 건 나라의 영광인데, 왜 정부에서 비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2011년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됐어요.

추모 집회 참석은 제게 인생의 전환점과 같았어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겼고, 저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천안문에서, 홍콩에서 싸웠던 용기있게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가기 시작했어요.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게 됐고, 그 선택 때문에 2014년 우산 혁명에서 주목 받게 됐어요. 그게 제 사회운동(activism)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2020년 런던으로 망명 후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가요?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있어요.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홍콩 민주화 운동에 도움이 되는 법안들을 추진해달라고 설득하기도 해요. 재외 홍콩인들이 많이 모인 영국에서 여러 위원회 활동을 하며 이들을 영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해요. 영국의 홍콩인 커뮤니티를 통해 본국의 사람들이 더욱 가시화되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의 검열로 홍콩에서 상영 금지된 영화들로 영화제도 열고 있고요. 주로 2019년 시위에 관한 영화이거나 그 이전의 홍콩 정치운동에 관한 영화들입니다. 영화제를 통해 영국의 홍콩인들이 고향의 기억을 되새기기를 바라요."
 
  홍콩 민주화운동가 조슈아 웡(왼쪽)과 네이선 로
ⓒ Nathan Law
최근 일어난 '백지시위'... 중국의 저항, 시든 것일까 움튼 것일까

- 지난 몇 주간 중국에서 소위 '백지 시위'(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에 항의해 시작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를 통해 인민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그건) 천안문 사태 이후로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에요. 전국적인 코로나 봉쇄 정책은 중국 사람들에게 '고통'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안겨줬어요. 역설적이게도 중국 정부의 엄격한 통제가 불가능했던 시위를 가능하게 만든 거죠.

시위대의 요구는 코로나 봉쇄 해제부터 정치적 변화까지 다양해요. '중국공산당 물러가라'나 '시진핑 퇴진'을 외친 사람들도 있어요. 정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수는 봉쇄 해제를 원할 뿐이고,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그칠지도 모르죠. 공개 데이터도 없고 여론조사를 할 수도 없으니 판단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매우 인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권위주의 국가에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는 걸 목격했잖아요. 중국 본토의 전국적 감시 시스템은 조지 오웰의 < 1984 >보다 더하죠. 이런 조건에서도 사람들은 행진하고 반대 의견을 외치고 있어요. 이것만으로도 굉장하죠.

시위가 여기서 끝난 건지, 중국 공산당의 정당성을 흔들 만큼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기는 일러요. 하지만 분명 중국 본토에 큰 영향을 줬을 거예요. 해외의 진보적인 중국인들도 움직이게 했을 거고요."

- 이번 시위는 한 곳에서 일회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사회운동에 최소한 집단적인 목표나 조직화된 요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중국의 상황에서 사람들을 조직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니 꽃·백지를 들거나 아무것도 들지 않고 시위하는 건 영리한 움직임이에요. 그런 행동을 이유로 경찰이 당신을 곧바로 끌고 가긴 어려우니까요.

시위대는 백지 한 장을 들고 행진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어요. 봉쇄를 거치면서 십수억 명의 중국 본토인들이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한 게 거대한 전국적 시위의 기반이 됐습니다. 우루무치 화재 같은 사건에 즉각 공감해 나라 전체가 함께 움직인 거죠. 그렇게 통신도, 조직도, 리더십도 없는 시위가 퍼져나갈 수 있었어요."
 
▲ 중국 우루무치 화재 참사 추모식에서 코로나19 봉쇄 해제 요구하는 '백지 시위' 11월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우루무치 화재 참사 추도식 도중 시민들이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며 백지를 든 '백지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결국 중국 정부는 코로나 봉쇄 정책을 완화하는 회유책을 내놓았어요. 정부가 인민들의 요구에 부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시위 전부터 정부에서 봉쇄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긴 했었어요. 하지만 시위대가 그 흐름을 가속화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인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인민의 삶에 책임감을 갖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이 양보하려 하고 있거든요.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정부의 '코로나19와 함께 살 수 없다'는 주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 사람들이 백지를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백지 시위는 2020년 홍콩에서 시작되었잖아요. 홍콩에서 시작된 시위 방식이 중국 본토로 이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아요. 홍콩에서 벌어졌던 시위를 중국 본토인들이 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홍콩 시위에 관한 정보는 중국 본토에서 전부 검열돼요. 백지 시위 전략은 검열과 감시가 가득한 체제 안에 살아온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 생각해요."

-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다양한 반응이 있었어요.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이들은 시위대가 외치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에 공감과 연대를 보내고 있어요. 저희도 중국 본토 인민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죠. 해외 중국인들이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도 있어요."

국경을 넘어 보내는 연대... 시위의 단초에 주목하다

- 서울에서도 얼마 전 중국인 유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어요.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 시민들은 어떻게 중국인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모든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 본토에 있는 분들은 외로울 거예요. 친구들과도 솔직한 감정을 공유하기 어렵고, 해외에서 우리가 연대 집회를 열어도 관련 뉴스 한 줄 읽기 어려워요.

하지만 우리가 세계에 알릴 수 있어요. 모든 인민이 중국 공산당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공산당이 모든 인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요. 타국에 나와있는 중국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서 유학 중인 경우가 많거든요. 이들에게 민주주의나 자유의 가치를 전달한다면, 미래의 변화의 가능성에 씨를 뿌리는 셈이죠."

- 중국 정부는 시위에 대해 외세 개입설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면 적대적인 외부 세력에 의한 것으로 규정되곤 하는데요. '외세 개입이 아니라면 당에 반대할 사람이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홍콩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쓰여온 전략이죠.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주체성과 목소리, 그리고 항의할 능력이 있음은 자명합니다. 최근 중국 국적의 어떤 분이 인터뷰하는 영상을 봤는데요. 정부를 비꼬며 말했어요. '우리가 인터넷이나 뉴스를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외세의 영향을 받았다니요? 외국과 소통할 수도 없는데, 그들이 말하는 '외세'란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 건가요?'"

- 최근 트위터에 "사람이 국가보다 크고, 정의가 애국보다 크다"고 남기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애국심이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지만, 그 뿌리가 어디냐는 질문은 중요해요. 만약 애국심이 독재를 찬양하거나 권위주의에서 비롯됐다면,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애국의 상위에 놓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키는 것은 민주주의적 가치고, 그것이 '애국'을 값지게 만드는 요소예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국가와 당을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당이 잘못된 길을 간다면 어떻게 해야할지는 고민하지 못했어요. 당이 정의와 반대되는 길, 억압의 길로 간다면요? 이런 질문들로 중국 본토인들과 왜 민주적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애국과 상충하지 않는지 얘기하려 해요."

- 중국 공산당은 그간 소수 민족을 억압해왔는데요. 이번 시위가 소수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우루무치, 그 안의 화재 참사 등 불의에 반응해 일어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중국이 자유의 가치로 연합해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시나요?

"중국 내에서 사고 소식이 전달될 때 피해자들의 인종이나 위구르인에 대한 언급은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하지만 해외 중국인들과 유학생들의 연대 시위를 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몇몇 중국 유학생들은 그동안 위구르 탄압에 대해 무관심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어요.

중국 정부는 그동안 티베트인, 위구르인, 홍콩인 등의 소수자를 문제적으로 그려왔고, 프로파간다를 통해 혐오를 조장해왔어요. 위구르인들은 중국 정부가 어떻게 사회적 사건을 조작해 위구르인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어 왔는지 증언했죠. 그래서 중국 인구의 다수인 한족은 위구르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어요. 이게 독재 정권의 통제 방식이에요. 정부를 대신해 다수가 소수를 감시하게 만들고 반란을 제압하죠. 사회적 화합, 국가적 평등, 통합 등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그 반대의 길로 가는 거예요.

이번 시위는 그동안 본토에서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주입받아온 해외의 중국인들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어요. 그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바를 고민하게 만들었죠." 
 
  Nathan Law
ⓒ Nathan Law
- 어떻게 해야 '백지 시위'가 동력을 받아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요?

"중국 본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겠죠. 하지만 해외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힘을 키우도록 도울 수 있어요. 홍콩인들의 경우, 해외 각지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 홍콩 공동체들이 보존되고 성장하는데 일조하면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고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요.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면 말이에요. 국내에서 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는 세계의 큰 흐름과 맞아 떨어질 때가 많아요. 언젠가 중요한 시점이 올 테고, 우리가 더 준비돼있을수록 그런 순간을 더 잘 확보할 수 있겠죠.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면 안돼요. 계속해서 우리의 역할과 의미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죠."
     
- 결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계속 투쟁한다는 것은 때론 매우 지치는 일인데, 네이선 님은 매우 확고해 보여요. 어디서 원동력이 나오는 건가요?

"저는 '운동'(activism)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삶의 일부를 기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결과가 어떻든 이 소명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제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 길에 서 있을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길을 더 효율적으로 걸을 수 있을까'예요.

한국의 자유 또한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서 왔죠. 한국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특히 '의미 없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에 대해서요. 영화 속의 인물들은 평범한 소시민이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요. 그렇게 노력할 때 역사적 변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이 영화가 홍콩에서 상영했을 땐 꽤 큰 영향력이 있었어요."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정학적으로, 사회ˑ경제적으로 한국 정부의 곤란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굉장히 강력한 시민 사회가 있어요. 그들과 더욱 소통하고 싶어요. 홍콩 민주화 운동과 중국 본토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있어서 많은 지원을 받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하고 싶어요. 가능할지는 한 번 보죠!"

* 본 인터뷰 전문은 여기서(링크), 영어 원문은 이곳에서(링크)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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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뉴미디어 '애증의 정치클럽'에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더많은 소식은 https://lovehateclub.com/ 에서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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