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비둘기 사체를 물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개와 다르지 않아]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반강제로 개를 키우게 된 우울증 환자가 개로 인해 웃고 울며 개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 <편집자말>
[이선민 기자]
운동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상하리만치 '걷기'만큼은 싫어했다. 성격이 급해서일까, 정처 없이 걷느니 차라리 뛰고 말지 싶었다. 그래서 여태 각종 익스트림 스포츠를 배울 때도 차로 최대한 목적지까지 가까이 가서 운동을 마치면 다시 차로 최대한 집까지 오곤 했다. 스무 살 넘어 운전면허를 딴 후로는 대중교통도 잘 안 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불필요하게 많이 걷는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놈의 개랑 살고 나서는 도무지 안 걸으래야 안 걸을 수 없는 거라. 게다가 우리 개는 둘 다 지독한 실외배변견이다. 머리 위에 지붕이 있으면 죽어도 안 싼다. 해서 뭘 잘못 먹어 배탈이라도 나면 밤이고 새벽이고 가릴 것 없이 낑낑대며 나를 깨워 밖에 나간다. 그러니 개가 설사를 하면 몇날 며칠 나까지 밤마다 나가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똥을 싸는 개의 보초를 서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만 보는 우습게 걸었다. 작정하고 운동을 해도 잘 채워지지 않던 스마트워치의 운동링은 어찌나 잘 채워지던지, 전에는 못 보던 기록 갱신 메달을 개들을 키우며 수없이 보게 됐다. 이렇게 거의 2년을 꼬박 걸었는데 과연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여전히 걷는 게 썩 내키지 않다.
▲ 산책하는 해탈 |
ⓒ 이선민 |
더위를 심하게 타는 해탈이 때문에 여름이 되면 나는 산책을 꼭두새벽에 나간다. 그래야 그나마 서로 쾌적하게 산책할 수 있다. 시간을 넘기면 더위도 더위지만 등굣길 학생들과 출근길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복잡한 시간은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이런 새벽 산책의 단점이 하나 있는데 너무 이른 시간에 나가면 도로 청소가 안 돼있는 때가 종종 있다는 것. 그런 날이면 길에 개들이 좋아할 만한 쓰레기들이 넘쳤다. 평소에도 원체 식탐이 없는 복주는 괜찮은데 해탈이는 달랐다. 녀석의 민감한 코엔 늘 별개 다 걸려들었다.
덕분에 나는 공원 어귀에 사람들이 밤 사이 다양한 걸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자 껍데기, 나무젓가락, 마스크, 담배꽁초는 물론이고 돼지뼈나 닭다리나 유리조각 같은 것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정도도 귀엽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해탈이가 물어든 내 팔뚝만 한 사이즈의 비둘기 사체에 비하면.
산책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해탈이 녀석이 죽은 비둘기 사체를 물고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놀란 나는 이 일을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잽싸게 몸을 낮춰 개의 목 뒷덜미를 잡고 흔들며 비둘기를 뱉으라고 야단쳤다. 하지만 녀석은 꿈쩍도 안 했다. 이해한다. 평소에 해탈이는 비둘기를 간절히 잡고 싶어 했다.
그런 꿈에 그리던 비둘기를 드디어 물었으니 쉽게 포기가 안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나는 물러설 수 있는가? 아니지, 나야말로 안 될 얘기지. 녀석이 죽은 비둘기를 행여 먹기라도 하면? 죽은 새를 잡아먹고 아프기라도 하면? 아니 그보다 먼저 지금 입에 물고 있는 저 비둘기를 집까지 가지고 간다면?
난 최후의 방법을 썼다. 녀석의 뒷다리를 양손으로 잡아 들고 흔드는 것이었다. 녀석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비둘기를 뱉어내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이 잊으면 안 되는 게 있다. 해탈이의 몸무게는 20킬로다(허스키치고 작은 편에 속한다).
40대 중반의 여성이 온몸에 힘을 주고 버티는 20킬로짜리 개를 흔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절박했다. 큰 개를 키운다는 건 여러 돌발 상황에도 잘 대처하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해탈이가 유별나긴 하다. 이 일을 겪기 전에도 허스키가 다른 개들에 비해 본능이 발달돼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목을 늘어트리고 죽어있는 비둘기를 물고 신나게 흔들어댈 줄은 몰랐다.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사실 해탈이는 진도믹스견인 복주가 하지 않는 짓을 꽤 많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허스키가 외모만큼이나 행동도 인형 같을 거라 믿는다. 천만에, 허스키는 이런 식의 (인간 입장에서) 엉뚱한 사고도 많이 친다.
비둘기 사건을 겪으며 뜻밖의 사실을 하나 더 깨달았는데, 청소노동자의 업무에 고양이나 비둘기 사체를 치우는 일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날 이후로 나는 새벽 산책길에 심심치 않게 새나 고양이의 사체를 봤다. 또 매일 같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양의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지는지도 알았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낮보다 쓰레기를 많이 버렸다. (해탈아, 고마워 덕분에 전에는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네.)
▲ 공을 물고있는 해탈 |
ⓒ 이선민 |
이 친구가 맹견으로 분류되는 공격성이 짙은 개였다면 어려서부터 입마개 교육을 철저히 시켰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니 나 역시 금방 포기하게 됐다. 저렇게 싫다는데 내가 더 조심하면 되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개들은 생각보다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현재 국내법상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등 맹견에 해당하는 견종만 입마개 착용이 의무다. -편집자주)
▲ 모자를 싫어하는 해탈 |
ⓒ 이선민 |
이런 여러 사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개들하고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개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기 때문이다. 개를 키우고 난 후로는 희한하게 개가 좋아하면 나도 좋고 개가 슬퍼하면 나도 슬펐다. 나와 개들은 생김새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데 어느덧 여러 감정을 교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쩌면 그토록 싫어했던 걷기를 오래 계속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산책 중 죽은 비둘기를 만나는 경우에는 산책도 노동이 되지만 말이다. 그 외의 날들은 어지간하면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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