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시어머니 둔 맏며느리 때문에 알게 된 것

조용미 2022. 12. 1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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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어머니 돌봄을 둘러싼 고민들... 노년은 살아가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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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기자]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지병 하나 없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어머님의 거처를 고민해야 했다. 어머님이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직 인지기능이 있는 편이고 거동도 가능하지만 자주 넘어져서 밤에 혼자 둘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님이 주택 모기지론을 신청해놓아서 경제적 문제는 크게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친구는 맏며느리로서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대안이라고 해봐야 뻔하다. 직접 모시거나 요양보호사를 구하거나 요양병원으로 보내거나. 

혼자 남은 어머니를 돌보는 문제
 
 친구 덕분에 우리도 알게 되었다. 노년은 생의 문제라는 것을.
ⓒ elements.envato
 
문제는 애매하다는 거다. 요양병원에 모시기에는 아직 너무 멀쩡하다. 어르신 보행기가 있으면 어디든 살살 다닐 수 있다. 인지기능도 괜찮은 편이다. 당연히 어머님은 거동이 될 때까지는 집에서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밤이 문제다. 밤에 한두 번은 꼭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잠이 덜 깬 노인이 혼자 화장실에 가도록 두기에는 너무 자주 넘어지는 편이다.

요양보호사가 있는 낮에는 옆에서 부축도 하고 행여 넘어져도 바로 일으킬 수 있지만 밤까지 곁을 지킬 24시간 요양보호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까다로운 어머님을 견뎌낼 입주 요양보호사가 없을 것이다. 집으로 모시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까 했는데 요양보호사들은 대가족 어르신을 가장 싫어한단다. 그도 이해가 간다. 
          
일단은 다 같이 겪어보기로 했단다. 요양보호사가 오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삼 형제와 며느리가 돌아가면서 어머님 집으로 당번을 서러 갔다. 오래 지속할 수 없는 방식인 건 알지만 모두가 겪어봐야 누군가가 고충을 말할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당번을 끝내고 돌아와 혼자 가족들을 한 명 한 명을 떠올려 본다. 어느 한 명도 어머니를 모시기에 적당하지 않다. 결국 친구는 자신이 맡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희생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어떤 선택도 그의 노력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은 나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몇 가지 우려를 전했다. 우선, 어머니가 생각보다 오래 사실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다보면 친구의 나이가 어머님 나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 유난히 어머님을 안쓰러워하는 효자 남편과 같이 살려면 지금까지 한 마음고생과는 비교도 안 될 거라는 것.

무엇보다 자신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각오하라는 것. 까탈스러운 환자 시어머니가 미워질 때마다 속 좁은 자신을 탓하다가 어쩌면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아들만 둘인데 대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해 동의를 구할 것. 또한 자식의 결혼에 대한 희망을 버릴 것. 

친구는 첫 번째 우려부터 설마, 했다. 어쨌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2박 정도 여행을 가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는 말까지 전하고 친구들은 한숨만 쉬었다. 우려만 할 뿐 친구들 누구도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어디서 죽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이야기 말미에는 언제나 스위스에 갈 적금을 붓자는 말로 끝났다. 

사는 문제는 언제나 어렵지만

며칠 뒤 친구는 동생네가 어머니 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이전부터 이미 동생은 자신이 어머니를 돌보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친구가 반대했다. 동서와 아직 협의하지 않은 상태였고 잘못하면 동생의 사회적 커리어가 단절될 수 있고 아직 손이 가는 어린 자식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동생이 동서와 의논을 해서 다시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결정이 되고 나서야 친구는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은 맏며느리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려는 독단이 우선했다는 것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짐을 고집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친구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을 내려놓기로 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축하했다. 갱년기를 맞아 살던 방식을 내려놓은 것에 대해. 그리고 어머님의 거취 문제가 해결된 것에 대해. 물론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부모 돌봄이 그렇게 쉬웠다면 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래도 일단은 다행이다. 누군가가 맡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다행이고, 친구가 고집을 꺾은 것도 다행이고, 삼형제가 머리를 맞댄 것도 다행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족돌봄으로 가족 결별을 겪는지 잘 알기에 이들의 순탄한 시작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친구 덕분에 우리도 알게 되었다. 노년은 생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를 얘기하지만, 생은 언제나 '살아가는' 문제이며, 사는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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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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