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에 이상한 버스 정류장, 도착지가 평양 [성낙선의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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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선 기자]
▲ 전류리 포구에서 대명포구까지 이어지는 평화누리 자전거길 1코스. 전류리 포구를 빠져나오면 바로 이런 길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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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 자전거길 전체를 놓고 보면, 2코스와 1코스를 그냥 같은 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길 어디에서나 철책선과 그 너머 북쪽을 감시하는 초소를 볼 수 있다는 데서 그렇다. 하지만 코스를 나눈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 2코스와 1코스 사이에는 서로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먼저 자동차도로와 멀어지면서 소음이 줄어들고 높은 건물들이 사라지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평화누리 자전거길. 자동차 공용이지만 지나다니는 차가 드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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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누리 자전거길 김포구간 1, 2코스 안내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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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도 사라지고, 높은 건물도 사라지고
1코스 여행은 2코스 여행의 끝이었던 전류리 포구에서 시작한다. 전류리 포구를 떠나면서, 도로 주변에서 상점과 카페와 음식점들이 사라진다. 얼마 안 가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도로마저 끊어지고, 눈앞에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제방도로가 나타난다. 그 끝이 소실점이 보일 정도로 멀다. 이렇게 곧게 뻗은 길을 보는 일이 흔치 않아서 한동안 멍하니 길 끝만 쳐다본다.
▲ 평화누리 자전거길 1코스, 제방도로로 이어지는 자전거길. 도보여행길인 평화누리길 3코스 구간 시작점이기도 하다. 길 입구에 안내판과 경고문이 잔뜩 널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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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웠던 표지판들과 달리 길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기는 하지만, 그 수가 적어 여느 자전거도로만큼이나 편안하다. 길 중간 중간 쉼터가 마련돼 있다. 이후로 이 같은 쉼터를 만나기 어렵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고됐다면 이곳에서 한 번쯤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쉼터 주변으로 철책선 말고는 시야를 가로막는 사물이 거의 없다. 추수를 끝낸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다 시원해진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이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다.
소실점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쉬었다 갈 수 있는 '철새조망지' 쉼터가 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쉼터 중앙에 재두루미 모형 한 쌍이 날개를 펴고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모형이 이곳에 재두루미가 날아든다는 걸 미루어 짐작케 한다.
▲ 가을걷이가 끝난 논바닥.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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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조망지 쉼터의 재두루미 모형. 그 뒤로 논 위에 철새들이 까맣게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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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 철새를 조망할 수 있는 망원경이 갖춰져 있다. 재두루미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을 텐데 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망원경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논을 뒤덮은 철새들의 키가 재두루미보다 훨씬 작다. 그 논바닥에도 재두루미 모형을 여러 개 세워 놨다. 그 모형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나중에 깨닫게 되지만, 그 새들은 청둥오리였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을 달리면서, 논 위로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청둥오리들을 수없이 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우리나라 논바닥에 청둥오리가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철새조망지를 떠나면서 바로 농로로 올라선다. 이 길 위에는 '농기계 우선도로'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 길을 한참 가다 보면 다시 바닥에 '직진 금지', '자전거도로 종점' 등의 글자가 써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 글자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에는 갈림길마다 표지판이 서 있다. 그 표지판만 따라가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새로운 표지판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 좋다.
▲ 논과 논 사이, 농로 위를 지나가는 평화누리 자전거길. 파란색 선만 따라가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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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논바닥을 점령한 청둥오리들
길이 벌판 끝에 다다르면서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에도 전원주택 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주택이 꽤 눈에 띈다. 길가에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닦아 놓은 곳도 있다. 요즘 시골 마을에 가면 빈집을 보는 일이 흔한데, 그런 곳들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철책선이 가로놓여 있다. 그와는 무관하게 이곳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지극히 평온하게 유지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곳 마을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꽤 유서가 깊어 보인다. 초가집이 벽돌집이 되고 흙길이 시멘트길이 되는 사이, 마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마을이 생겨난 이래 수백 년을 이어온 역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오랜 역사를 마을 길 한쪽에 버티고 서 있는 나무들에게서 찾아본다.
▲ 가금리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 수령이 450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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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계획에는 애기봉통일전망대에서 한동안 쉬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뜻하지 않은 난제를 만난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자동차가 없으면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 시간이 약 30분이다. 왕복이면 1시간. 어떻게 해야 할까? 거기에다가 전망대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이곳에서 최소 1시간 30분에서 최대 2시간가량을 지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민 끝에 전망대에 오르는 걸 포기한다.
▲ 이곳이 민통선 지역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이 구역을 통과하려면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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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성 가기 전에 잠시 민통선을 넘어간다. 이곳의 민통선은 용강리와 보구곶리 사이에 걸쳐 있다. 민통선은 신분증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신상명세서를 작성한 다음, 임시통행증을 건네받는다. 반대편 검문소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 10여 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언덕을 하나 오른 다음, 내리막을 질주하는데 그 끝에 갑자기 또 다른 검문소가 나타난다. 맘 놓고 속도를 내다가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민통선 안에서는 얼마나 오래 머물지는 상관없는데 늦어도 오후 7시 전에는 빠져 나가야 한다. 검문소를 피하고 싶으면, 우회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마을버스로 북한 땅을 오가는 상상을 하다
▲ 보구곶리의 민방위주민대피소. 비상시엔 대피소로, 평상시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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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명칭은 '당신의 웃음이 보구싶다'이다. '보구'곶리에서 '보구'싶다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들의 발상이 유쾌하다. 그동안 이곳에서 열었던 전시회가 꽤 다양하다. 보구곶리를 떠나면 김포시의 유명한 역사 유적지, 문수산성과 덕포진이 기다린다.
문수산성은 조선 후기, 상당히 중요한 사건의 일단이 벌어진 장소다. 애초 강화도를 방어할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보며 강화도 바닷길을 지나다니는 배들을 감시했다.
▲ 구한말, 병인양요 격전지였던 문수산성의 북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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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가 평양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평화정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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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포진을 지나가기 전에 마을도 없고 인적도 드믄 길가에 뜬금없이 버스 정류장이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김포시의 한 단체에서 평화를 염원하며 만든, 일명 '평화정류소'이다. 이 정류소 앞으로 언제 버스가 지나갈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버스 노선이 서울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언젠가 마을 주민들을 실은 버스 한 대가 터덜터덜 김포시와 개풍군을 연결하는 다리위를 넘어가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1코스를 여행하면서 한 번쯤 들러봐야 할 유적지로 덕포진을 빼놓을 수 없다. 덕포진은 '강화해협을 통해 수도 서울에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앞서 보았던 문수산성만큼이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 덕포진, 포대가 바다를 향해 열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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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포구, 강화도 하늘 위로 노을이 물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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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류리 포구에서 대명포구까지 가는 평화누리 자전거길이 50여 킬로미터다. 내처 달리기만 하면 결코 긴 거리가 아니겠지만,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면 해가 떠 있는 동안에 여행을 끝마치기 힘든 거리일 수도 있다.
애기봉통일전망대를 올라가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적절한 판단이었던 듯싶다. 자전거를 탈 때는 잘 몰랐는데 자전거에서 내려서자마자 한기가 몰려온다. 더 늦기 전에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자전거는 대명포구 음식점 거리 안쪽 자전거거치대에 세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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