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쿼터 10득점' 김정은이 보여준 '베테랑의 품격'
[양형석 기자]
선두 우리은행이 2위 삼성생명을 꺾고 파죽의 10연승 행진을 내달렸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우리은행 우리 WON은 16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2022-2023 여자프로농구 3라운드 삼성생명 블루밍스와의 홈경기에서 64-53으로 승리했다. 홈경기 7전 전승을 포함해 파죽의 10연승 행진을 달리게 된 우리은행은 아직 3라운드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공동 2위 삼성생명,BNK 썸과의 승차를 4경기로 벌리며 일찌감치 독주체제를 굳혔다(13승1패).
우리은행은 '살림꾼' 최이샘이 13득점10리바운드2어시스트4스틸0실책으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또한 박지현이 12득점9리바운드,박혜진이 10득점8리바운드7어시스트, 김단비가 9득점10리바운드6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고른 활약을 했다. 하지만 이날 우리은행 승리의 일등공신은 접전을 벌이던 4쿼터에만 10득점을 올리며 삼성생명의 추격을 뿌리친 팀의 맏언니 김정은이었다.
▲ 김정은은 우리은행 이적 첫 시즌에 커리어 첫 우승과 함께 챔프전 MVP에 선정됐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지만 농구에서도 팀마다 '상성'이라는 게 존재한다. 빠른 경기템포를 통해 매 경기 다득점을 노리는 팀은 24초 공격 제한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천천히 경기를 운영하는 팀에게 고전할 때가 많다. 또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팀은 선수단의 평균연령이 젊고 가용자원이 많아 40분 내내 높은 에너지 레벨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2000년생 박지현과 1994년생 최이샘 정도를 제외하면 박혜진,김단비,김정은,고아라 등 30대의 베테랑 선수가 많은 우리은행에게 2020-2021 시즌 챔프전 우승 이후 대대적인 리빌딩을 단행한 삼성생명은 부담스런 상대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지난 두 시즌 동안 트레이드를 통해 신인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수집해 이해란과 키아나 스미스 같은 우수한 신인들을 지명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삼성생명은 지난 11월12일 우리은행과의 홈경기에서 85-74로 승리하며 3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하던 우리은행에게 첫 패를 안겼다. 우리은행은 당시 박혜진과 김정은,김단비,박지현,최이샘으로 이어지는 주전 베스트5가 모두 33분 이상의 출전시간을 기록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스미스와 강유림,배혜윤이 67득점을 합작하며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인 삼성생명의 폭발력을 당해낼 순 없었다.
이처럼 우리은행을 상대로 좋은 '상성'을 가지고 있던 삼성생명은 지난 11월23일 11일 만에 다시 만난 우리은행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는 42-83, 무려 41점 차이로 대패를 당했다. 물론 삼성생명은 이 경기에서 에이스 배혜윤이 12분38초,주전 가드 이주연이 15분10초, 핵심 식스우먼 김단비가 9분4초만 소화하며 일찌감치 백기를 들었다. 그래도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1라운드 11점 차 패배를 41점 차 승리로 설욕하며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다.
2라운드까지 1승씩 주고 받은 우리은행과 삼성생명은 16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시즌 3번째 경기를 가졌다. 예상대로 4쿼터 6분 여가 남을 때까지 양 팀은 52-51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하지만 마지막 6분 동안 우리은행이 12득점을 추가하는 사이 삼성생명은 단 2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삼성생명에서 4쿼터 우리은행이 올린 14득점 중 10득점을 책임지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한 김정은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다.
▲ 김정은은 16일 삼성생명전에서 4쿼터에서만 혼자 10득점을 올리는 원맨쇼를 선보였다. |
ⓒ 한국여자농구연맹 |
김정은은 부천 신세계 쿨캣 시절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곧바로 주전으로 활약하며 신인왕에 올랐고 2010-2011 시즌과 2011-2012 시즌에는 두 시즌 연속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약체 신세계와 하나은행 소속이었기 때문에 우승은커녕 봄 농구를 경험한 적도 많지 않았지만 적어도 득점력 만큼은 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최고의 스코어러였다.
약체팀의 외로운 에이스로 10년 넘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김정은은 2016-2017 시즌이 끝나고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에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견인한 김정은은 선수생활의 첫 우승과 함께 챔프전 MVP에 선정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으로 2018-2019 시즌을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한 임영희(우리은행 코치)의 빈자리를 잘 메웠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넘치는 파워를 앞세워 매 시즌 득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던 김정은도 어느덧 30대 중반의 노장이 됐다. 김정은은 이번 시즌 출전시간과 득점,리바운드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데뷔 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위성우 감독 역시 김정은에게 많은 시간을 맡기기 보다는 고아라, 나윤정 등과 출전시간을 나누면서 김정은의 채력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사실 김정은의 힘은 정규리그보다 봄 농구에서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16일 이번 시즌 우리은행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삼성생명을 상대로 자신이 어떤 선수였는지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3쿼터까지 단 4득점에 그치며 기대만큼 좋은 경기를 선보이지 못하던 김정은은 4쿼터에서 '각성모드'를 발휘, 홀로 10득점을 폭발시키며 우리은행의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4쿼터 10득점 중 페인트존 득점이 6득점에 달했을 정도로 전성기 시절에 보여준 파워와 돌파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현재 우리은행의 전력을 고려했을 때 당장 박지수(KB스타즈)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복귀해 KB의 대반격을 이끌지 않는 한 우리은행을 위협할 팀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우리은행에서 언제든 팀의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는 맏언니 김정은의 출전시간을 평균 25분52초로 조절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을 상대로 오랜만에 '베테랑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김정은이 이번 시즌 커리어 두 번째 우승반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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