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안경 회사가 만드는 케이크, 반전의 아트를 비추다.

2022. 12.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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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에 출시된 버거 케이크. 차례로 '어니언 피클 버거' 케이크와 '콘 라멘 버거' 케이크. 사진 NUDAKE


케이크에 오이? 아스파라거스? SNS가 발칵 뒤집혔다. 뿐만 아니다. 산봉우리처럼 생긴 먹물 페이스트리를 손으로 찢어 먹는 ‘피크’ 케이크, 짭짤한 어니언 크림에 초콜릿 시트 패티, 치즈, 피클을 더한 ‘어니언 피클 버거’ 케이크까지.

'발칙하고 엉뚱한 빵'을 선보이는 이들은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에서 만든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다. 누데이크란 이름은 New, Different, Cake 세 단어를 조합한 것. 새롭고 다른 케이크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패션 회사의 빵다운 출사표다. 지난 1일 누데이크 F&B의 수장 장다연 디렉터를 서교동 사옥에서 만났다. 어디까지 도발적일 수 있을까.

베이킹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항상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어요. 어떤 매체로 표출할지를 몰랐을 뿐이죠. 다만 어릴 때부터 미술을 했기 때문에 일단 미대를 가야겠거니 생각했어요. 막상 미대에 합격하니 알겠더라고요.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게 전혀 없다는 걸요. 결국 입학을 포기하고, 대신 다양한 브랜드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어요. 그 중 일하던 갤러리 카페에서 갑자기 케이크 납품이 펑크가 났어요. 그러니까 사장님이 네가 한번 만들어보라는 거예요. 타의로 시작한 베이킹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케이크가 제 예술적 영감을 담아내는 매개체가 되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누데이크엔 어떻게 합류하게 되신 건가요.
그 전까지 한남동에서 케이크 납품점을 운영했어요. 장사는 잘됐으나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번아웃이 왔죠. 베이킹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결국 가게를 닫고 런던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근데 런던으로 떠나기 직전, 인디 밴드로 활동하는 지인이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나도 음악이라는 예술을 하지만 베이킹만큼 오감을 모두 충족시키는 예술이 없다고요. 비행기를 타고 가는 14시간 동안 그 말을 곱씹었어요. 진짜 없는 거예요. 떠난 걸 후회하던 그때, 아는 언니한테 연락이 왔어요. 지금은 우리 팀의 파트장을 맡은 언닌데요. 젠틀몬스터에서 새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데, 한번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고요. 우주가 보내는 신호 같더라고요(웃음).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언니를 만났고, 누데이크의 방향성을 듣는데 너무 흥미로웠어요. 얼른 합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장다연 디렉터. 사진 장다연


그럼 베이킹을 독학으로만 익히신 건가요.
네. 그저 원하는 케이크가 나올 때까지 수십 번씩 구워봐요. 맨땅에 헤딩하듯이요(웃음). 자격증을 따거나 유학을 가는 것도 고민해봤지만, 주변인들이 극구 말리더라고요. 너만의 색을 잃어버릴 거라고요. 물론 제가 틀을 깨는 디저트로 주목받을 수 있던 건 정석의 베이킹을 모르기 때문도 있어요. 전공자라면 절대 갖지 않을 반문을 던진 거든요. ‘왜 이런 맛은 안 돼? 왜 그런 모양으로만 만들어야 해?’ 식으로요. 역설적으로 무지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도 하죠.

베이킹의 가장 큰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거요. 케이크의 디자인은 어느 정도 예정할 수 있지만, 맛은 아니거든요. 직접 만들어 먹어봐야만 알 수 있죠. 그래서 어렵지만, 그래서 흥미로운 것 같아요. 상상의 제한이 없잖아요. ‘이 재료를 넣으면 어떨까? 이 온도에 구우면 어떨까?’ 등등 끊임없이 새로운 레시피를 고민하게 돼요. 시도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죠.

본인의 직업을 비주얼 베이커(visual baker)라고 소개하시는데요. 보는 음식에 주목하시는 이유는요.
단순해요. 보기도 좋은 게 먹기도 좋으니까요. 먹는 게 예쁘면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웃음).

떠올려보면 우린 어릴 때부터 음식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음식 앞에서 행동을 절제하길 익힌다. 누데이크가 품은 의문은 이것. “왜 음식 가지고 놀면 안 돼?” 음식도 예쁘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그녀의 '뭔가 다른' 빵이 탄생했다.

누데이크의 지향 키워드가 ‘WEIRD BEAUTY’라고 들었어요. 실제로 잘라먹는 것이 아닌 찢고 포개 먹는 케이크를 만들고, 손톱만한 크기의 크루아상을 내놓죠. 기존에 없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말씀드렸듯 전 보기도 좋은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근데 그 ‘보기 좋다’는 것의 기준이 정해진 게 아니잖아요. 정갈한 한정식이나 파인다이닝의 코스 요리만이 보기 좋은 음식은 아니죠. 패션 장르에 대중적인 한복, 제복 외에 오트쿠튀르 시리즈도 있듯이요. 음식도 정형화된 미 대신 창작자의 개성을 적용할 수도 있죠. 제가 일부러 고객에게 기괴한 충격을 주는 걸 목표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 취향과 심미안이 그런 걸요. 애초에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고, 새롭고 엉뚱한 상상을 즐기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구현할 뿐이죠.

누데이크의 피크 케이크. 손으로 검은 페이스트리를 찢은 뒤 흘러나오는 말차 크림에 찍어먹는다. 사진 NUDAKE


대중성보다 예술성을 우선한다는 말로 들리네요. 베이킹을 마치 작품 활동처럼 행하시는군요.
네. 전 제빵사도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모든 작품이 대중성을 지닐 순 없잖아요. 누군가는 새롭고 재밌는 걸 시도해야죠. 그럼으로써 대중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고, 음식이 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를 알리고, 디저트의 장르를 넓힐 수 있다면 충분해요. 그런 의미를 막론하고, 디저트를 통해 저를 표현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그저 우리(누데이크)가 재밌게 하는 걸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거죠. 그리고 점차 더 많은 분이 그걸 좋아해 주고 계시고요.

베이킹을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음악, 패션, 영상, 책,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요. 못 알아듣는 50년대의 외국 다큐멘터리를 틀고 제멋대로 해석해보기도 하고요. 심지어 누군가와 싸우다가 상대의 대사에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각종 사물을 본뜬 케이크를 작업하는 누데이크의 'TEST' 프로젝트. 해당 작업물 중 하나인 타비부츠 케이이크. 사진 장다연 인스타그램 캡처


가장 최근에 영감을 얻은 곳은요.
오늘 한 직원이 초록색 패딩을 입고 왔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앳돼 보이는 거예요. 제 어린 시절이 연상되더라고요. 문득 초등학생 때 공갈빵을 조금씩 뜯어 먹길 좋아했던 게 떠올랐어요. 그처럼 속이 빈 케이크를 만들고 안에 특별한 내용물을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어떻게 베이킹으로 시각화하시는 건가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많이 해요. 예컨대 아주 느린 비트의 음악을 들어요. 이 음악을 어떤 맛과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거죠. ‘신맛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 무게감이 있는 비트니까 어두운색으로 표현해야 할까? 표면은 새하얀데 잘랐을 때 검은색 크림이 쏟아져 나오는 건 어떨까?’ 이런 식으로요.

업무 외 개인 작업도 하시는 이유는요.
아무래도 회사에서의 작업은 제 주관을 타협해야 하는 지점이 많아요. 판매해야 하니까요. 온전한 제 소유의 작품이라고 느끼기 어렵죠. 또 지인들을 위한 커스텀 케이크를 자주 만드는데요. 받은 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이 돼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작업의 일부를 공유한다는 건 특별하잖아요.

가장 최근에 만든 개인 작업물이 뭔가요.
제 생일 케이크요. 작년 생일엔 알을 깨고 나오는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었죠. 올해는 르네 마그리트의 ‘beautiful reality’라는 작품을 오마주했어요. 사과 위에 식탁이 올려진 그림인데, 역발상의 의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하는 일도 결국 역전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에게 선물하고 싶더라고요.

장다연 디렉터가 만든 본인의 생일 케이크. 사진 장다연 인스타그램 캡처


앞으로의 목표는요.
늘 설레는 마음으로 베이킹하고 싶어요. 이 일 외엔 하고 싶은 게 없거든요. 언젠간 질릴 수도 있겠지만, 그 시기가 최대한 늦길 바라죠. 더불어 우리의 작품이 끊임없이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으면 해요. 그 관심이 음식을 다루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요. 사용하는 재료가 다를 뿐, 요리도 결국 예술의 일환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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