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죽어가는 걸 기사로 써줘요" 美셀럽 간호사의 독특한 죽음 [뉴스원샷]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스티브 잡스도, 진시황도 피하지 못한 것. 죽음입니다. 100년도 살기 힘든 데 24시간을 아등바등하며 사는 것이 인간이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노르웨이의 숲』에 적었습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닌,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고. 미국 뉴욕시에 살았던 샷치 와이즈버거라는 분은 무라카미를 읽은 적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생각은 똑같았습니다. 그가 지난 10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한 일. 지인인 뉴욕타임스(NYT) 기자에게 전화를 걸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죽는대요. 그 과정을 기사로 남겨주세요.”
와이즈버거는 미국 간호사계의 셀럽입니다. 그의 이름을 구글링하면 직업이 이렇게 나옵니다. “죽음 교사(a death educator).” 생계는 간호 일로 이어갔지만, 잘 죽는 법을 연구하고 나누는 걸 자신의 천직으로 삼았습니다. 1930년생으로, 유대인 및 성소수자, 여성 등, 타고난 것 때문에 차별을 당하는 이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도 활약했죠. 하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쏟은 분야는 죽음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분히 받아들이자”가 그의 신조였다고 합니다. 되도록 약에 의존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는데, 그런 그도 고통에는 굴복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NYT에 따르면 그는 결국 진통제를 맞으며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패션지 보그(Vogue)도 그의 죽음의 과정을 화보 기사로 남기기로 했는데, 마지막 순간엔 고통이 극심했던 관계로 촬영까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NYT 기자에 와이즈버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죽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런데 나는 지금이 내 삶의 최고의 시간인 것 같아요. 매 순간이 소중합니다.”
죽음을 차분히 맞이하는 과정엔 자신의 장례식을 일종의 잔치로 꾸미는 일도 포함했습니다. 영어로 장례식은 ‘funeral’이죠. 와이즈버거는 이 단어에서 ‘즐거움’을 뜻하는 ‘fun’을 대문자로 표기했습니다. 이렇게요. “FUN-eral.” 그리고 자신의 관에 여러 그림을 그려달라고 친구들에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NYT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 관은 종이 상자를 재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친환경 관인 셈이네요.
화장(火葬)이 아니라 매장을 택했는데, 염(殮) 역시 독특했습니다. 그를 아끼던 지인들이 직접 했다는데요. 어떤 타입인지는 적시돼있지 않지만, 모종의 오일에 그의 시신을 담근 뒤, 천으로 잘 싸서 매장했다고 합니다. 장례식장엔 이런 현수막을 걸었다고 합니다. “가자, 샷치 (진짜로 말이야)!”
우리네 선조 역시 장례식을 일종의 축제처럼 치렀다고 하죠. 임권택 영화감독의 작품, ‘축제’가 담아낸 주제이기도 하고요. 한 기록에 의하면 예전엔 문상객의 의무 중 하나가 상주를 익살스러운 말 또는 행동으로 웃기는 거였다고 합니다. 팬데믹 시기엔 그럴 수 없었지만, 빈소가 쓸쓸하지 않게 되도록 찾아가서 자리를 함께 하는 게 우리의 예의이기도 하죠.
와이즈버거는 그러나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차별받는 남들을 위해 일하긴 했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은 돌보지 않았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도 50년 넘게 연락을 두절한 상태로 지냈다고 합니다. 죽기 직전 그는 아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지인들에게 “그 아이는 더 좋은 엄마를 가질 자격이 있었다”며 “나를 증오하는 마음을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딸은 그의 연락을 거절했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엔 어땠을까요. 그의 임종을 지킨 친구는 NY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을 회고하는 대신, 샷치는 죽음의 순간에도 앞을 내다보더군요. ‘드디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하게 됐어’라면서요. 이렇게도 말했어요. '솔직히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은 확실히 있어.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죽음이 이렇게 내게 왔고, 어쩔 수 없어. (사후세계에) 가면 어떨지 참 궁금하네.'”
전수진 투데이ㆍ피플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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