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까지 번진 대장동 수사…대형로펌 압색에 법조계 '패닉'

오효정, 허정원 2022. 12. 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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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로펌을 압수수색하고 변호사를 소환조사한 일로 법조계가 시끄럽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57)씨가 대장동 개발 사업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은닉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13일 김씨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평양 A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A 변호사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14일 그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까지 했다.

그러자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정욱)가 발끈했다. 서울변회는 15일 “아직 공판이 진행 중인 사안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져 변론권 위축이 초래되고 비밀유지권이 침해됐다”며 성명을 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도 “압수수색 기사를 보면서 스스로 위축될 정도였다”며 “과잉한 수사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날 중앙지검 관계자는 “진행 중인 공판 관련 서류는 제외하는 등 필요 최소 범위에서 압수수색했다”고 반응했다. 그는 “과잉수사라면 법원이 영장을 내줬겠느냐”며 “적법한 압수수색”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화천대유 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의 측근들을 범죄 수익 은닉 혐의로 체포하고 법무법인 태평양을 압수수색하는 등 대장동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팀은 "범죄 수익 은닉 과정의 진상 규명에 필요하다"며 압수수색 이유를 설명했다. 연합뉴스


검찰의 로펌 압수수색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갈등이 본격적으로 촉발된 것은 지난 2016년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탈세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한 때였다. 지난 2018년과 2019년에는 김앤장도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강제징용 사건 지연 의혹과 관련해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당시 애경산업의 내부 자료를 찾겠다며 김앤장을 한 차례 더 압수수색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크게 반발했지만, 이후 대기업 관련 수사에서 대형 로펌이 압수수색 대상에 오르는 것은 하나의 수사 트렌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변론권·비밀유지권 침해 논란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고액의 수임료를 지불하고 대형 로펌을 선택하는 건 정보 보안이 확실하다는 믿음 때문인데, 무분별하게 압수수색을 당하면 사건과 관련 없는 의뢰인들도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펌은 최근 포렌식 센터를 두고 자체적으로 디지털 자료를 확보·분석하기 때문에 검찰의 압수수색은 더욱 난감한 일이 됐다. 영장에 적시된 자료만 가져간다지만, 추가 정보를 인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도 “(태평양 압수수색이) 남 일 같지 않은 상황”이라며 “의뢰인이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제공한 정보가 쌓여있는 로펌을 압수수색해 수사를 쉽게 하려는 검찰을 법원도 돕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대한변협은 의뢰인-변호사간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참여한 250명의 변호사 중 37.7%가 침해 주체로 검찰을 지목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러나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이유로 성역이 될 수 없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변론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범죄 행위와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려는 것”이라며 “변호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만일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을 두텁게 보장해 검찰의 압수수색을 금지하게 되면, 로펌이 피의자가 수사 자료를 은닉하는 비밀금고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체적 진실 발견을 통한 사법정의 실현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 수사관이 빼돌린 쌍방울 그룹 배임·횡령 의혹 사건 수사의 기밀이 변론을 준비하던 변호사에게 전달된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 수사팀이 같은 법무법인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학계에선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 방어권이 먼저"

학계에선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7월 한 세미나에서 “변호사-의뢰인 간 비밀유지권은 관점을 바꿔 피고인의 권리로 이해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변호인과 나눈 내용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치 피고인의 고해성사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식의 수사는 방어권 침해와 직결된다는 취지다.

한애라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지난 2019년 8월 낸 ‘의뢰인-변호사 간 비밀유지권에 관한 검토 및 개선방향’ 논문에서 비밀유지권이 수사의 필요성이나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 우선될 수 있다고 봤다. 한 교수는 “당사자 방어권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양보된다면, 고문으로 얻은 자백만으로도 유죄를 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뢰인이 변호사와 상의한 내용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증거라고 하여 비밀유지권의 보호 범위를 축소한다면, 실체적 진실발견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변호사에게조차 진실을 숨기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적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비밀유지권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미국은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 Attorney-Client Privilege)을 인정하는데, ACP로 보호되는 자료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독일 형사소송법은 변호사 등 직무상 비밀을 취급하는 이들에 대한 증언거부권을 보장하고, 압수에 대한 규제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규정되어 있기는 하나, 형사소송법이나 변호사법에 ‘비밀유지권’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변호사나 의사 등 직무상 비밀을 취급하는 이들에 대한 압수거부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행사하기 어렵다.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때에는 예외’라는 단서가 달려있어 보호 범위가 협소하기 때문이다.

지난 제19대 국회에서 노철래 의원이, 제20대 국회에서 나경원 의원 등이 비밀유지권을 명문화한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조응천 의원과 황운하 의원이 각각 변호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조 의원 안은 변호사-의뢰인 사이 의사 교환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위반해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변호사법 개정보다 더욱 실효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훈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7월 펴낸 ‘변호사-의뢰인 간 의사 교환의 비밀보장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변호사의 직업윤리와 지위 등에 대한 사항을 규율하는 변호사법의 입법 취지를 볼 때, 변호사법 개정안으로는 비밀이 침해됐을 때의 구제 절차 등을 규율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비밀을 재판 단계에서 사실 인정의 증거로 사용하지 않는 것 만으로 비밀 침해를 막을 수 없고, 일단 증거로 신청되고 나면 기밀성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압수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변회 관계자도 “변호사가 사건 피의자로 직접 연루된 사안이 아닌 이상,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제공한 자료 등에 대한 압수 거부권이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효정·허정원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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