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는 연봉이 얼마예요?"…인사팀에 동료 연봉 묻는 MZ
“일은 제가 더 많이 하는데, 김 대리 연봉이 더 높은 것 같아요. 김 대리 연봉이 얼마인지 알려주세요.”
판교의 정보기술(IT)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A씨는 1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개발자 직원으로부터 동료직원의 연봉공개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다른 기업 인사팀 직원 B씨는 “다른 직원의 연봉을 묻는 건 금기였는데, 경력직원이 ‘몸값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최근 직원 간 연봉 문의가 잦다”며 “인사평가·연봉협상철을 앞두고, 동료직원의 처우나 성과평가 결과 공개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금기의 영역’이던 동료의 급여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IT기업을 중심으로 이직 바람이 분 뒤, 직원들 사이에서 자신이 ‘적절한 몸값’을 받고 있는지 의구심을 표하는 경우가 잦다는 전언이다. 이미 미국·유럽 등에선 기업이 직원들의 급여를 공개토록 하는 법도 시행되고 있다.
뉴욕시, 채용 때 연봉 오픈…獨, 동료 급여 공개요구법
미국 뉴욕시는 지난달 ‘연봉 공개법’(salary transparency law)을 시행했다. 기업이 채용공고 때 직원에게 지급할 급여의 범주를 공개해야 한다. 콜로라도주는 지난해부터, 워싱턴주·캘리포니아주 등은 내년부터 비슷한 법을 시행한다. 독일은 2017년부터 회사에 동료 직원의 연봉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연봉차별을 막겠다는 취지인데, 법 시행 후 인력시장에서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뉴욕시 연봉 공개법 시행 뒤 미국 전역의 회사들이 새 법 시행 영향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내년부터 미국 내 직원들의 급여 정보를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기업 3분의 1가량은 법 시행에 맞춰 임금인상을 검토·추진하고 있다.
구직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자신들이 ‘적절한 몸값’을 받는지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급여를 공개한 회사 6곳 중 1곳꼴로 입사 지원이 늘어났으며, 특히 젊은 구직자(Z세대)가 더 많았다고 한다. 다만 일부 기업에선 연봉에 불만을 품은 직원이 대거 퇴사하거나, 불필요한 긴장감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CNBC가 보도했다. 연봉 공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성과급·보험 혜택 등 ‘불투명한 복지’를 늘리거나, 법이 시행되는 지역을 피해 채용공고를 내고 헤드헌팅으로 채용방식을 변경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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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채용공고 35%만 급여 공개…“성과평가 투명해야”
채용정보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올해 국내 기업 채용공고 중 35%만 취업자에게 지급할 급여를 공개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회사 내규에 따름’ 등으로 적어뒀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기업별로 5억원 이상 연봉 수령자의 명단을 공개하도록 하고는 있지만, 그 대상은 대부분 임원이다. 일반 직원들 입장에선 동료가 얼마를 받는지 알기 쉽지 않다.
한국 대부분 기업이 1990년대 중반까지 공무원처럼 재직기간에 따라 임금을 차등하는 연공급(호봉제) 임금체계를 유지해왔다. 97년 외환위기 직후 노동시장 유연화 움직임이 일었고, 개인 성과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두는 연봉제가 확산했다. 다만 뿌리가 호봉제이다 보니 직원 간 임금 격차가 해외 기업처럼 크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국내 노동시장에 또 한차례 변화가 일었다. IT기업을 중심으로 개발자 모시기 경쟁이 심화했고, 기업 간 몸값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기업이 암묵적으로 유지해왔던 ‘호봉제 같은 연봉제’ 틀도 희미해졌다. 이른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등 테크 기업들이 이직 때 스톡옵션이나 사이닝보너스(일회성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 것도 직원들 간 연봉 격차를 벌리는 데 일조했다.
전문가들은 ‘공정’을 중시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연봉공개 요구 움직임이 확산할 것으로 보고, 연봉 책정과 성과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광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연봉책정의 절차가 공정하더라도, 실제 받는 급여가 동료와 차이 나면 ‘분배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 마련”이라며 “일부 세대가 동료 직원의 급여공개를 요구하는 건 보상기준을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라는 의도로 보인다. 기업들이 연봉 책정과 성과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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