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내가 지킨다”… 성범죄자 거주지 주민들 직접 나섰다
지난 15일 찾은 경기도 화성 봉담읍의 한 원룸촌.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2007년 15년 형을 선고받고 지난 10월 만기 출소한 ‘수원 발발이’ 박병화(39)가 살고 있는 곳이다. 수원대 후문으로 이어지는 300m가량의 원룸촌 길엔 ‘성범죄자 박병화, 화성시 거주 절대 반대’ ‘성범죄자 박병화를 화성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현수막이 원룸 외벽, 거리 게시판 등 곳곳에 걸려 있었다. ‘원룸 문의’ ‘빈방 있음’ 등의 안내문도 여럿 눈에 띄었다. 동네에 박씨가 거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대엔 빈방이 늘고 있다고 한다. 주민 A씨는 “박씨가 이사 온 뒤 주민 20여명이 이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씨가 사는 집이 위치한 골목에 들어서자 한 원룸 건물 입구에 걸린 ‘화성시민 안전상황실’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 야외주차장 가운데 놓인 컨테이너는 화성시 공무원과 경찰관, 주민으로 북적였다.
컨테이너 안에는 화성시민 안전상황실(시민상황실)이 차려져 있다. 이곳에서 머리와 눈썹이 희끗희끗한 60대 남성 두 명이 경비 근무복을 입고 나란히 창밖의 어느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화성시에서 고용한 ‘안전지킴이’라고 했다. 이들이 창문 너머 주시하던 곳은 바로 박씨의 집이었다. 상황실에서는 건물 3층에 자리한 박씨의 원룸 베란다가 훤히 보였다.
안전지킴이 김경식(61)씨와 김진갑(60)씨는 각각 32년, 28년 경력의 베테랑 형사 출신이다. 모두 8명의 안전지킴이가 지난달 14일부터 오는 31일까지 화성시와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 계약을 맺었다. 2명씩 하루 3교대로 박씨 집 주변을 순찰하고 그의 동태를 살핀다.
김경식씨는 “마지막 근무지가 인근 봉담지구대였는데 이곳에 박씨가 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었다”며 “후배 경찰들과 함께 성범죄자로부터 안전한 봉담읍을 만들고 싶어 근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박씨가 혹시라도 감시를 피해 주민들한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김진갑씨는 “내가 현역 시절 잡은 몇몇 성범죄자는 옥상으로 날아다니고, 벽 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대문으로만 드나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며 출입문뿐 아니라 이곳저곳을 살폈다. 김경식씨는 “돌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 집 주변으로 시민상황실뿐 아니라 화성 서부경찰서 특별치안센터가 설치돼 있고, 빌라 입구와 뒤편에는 경찰 초소 2개가 추가로 있다. 총 4곳에서 박씨를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수원보호관찰소와 화성시 공무원들도 하루에 여러 차례 시민상황실을 찾아 박씨의 동선을 점검한다. 현재 화성시, 화성 서부경찰서, 수원보호관찰소, 안전지킴이들이 ‘시민안전대책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박씨의 재범 방지와 그의 퇴거를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시민상황실은 시민과 경찰, 화성시가 함께하는 ‘민관 전진기지’인 셈이다.
박씨를 감시하는 노력뿐 아니라 성범죄 예방과 호신을 위한 도구도 집마다 전달됐다. 화성시 여성가족과 직원 두 명이 경찰, 안전지킴이들과 함께 ‘택배 송장 지우개와 커터’ ‘호신용 스마트기기’ ‘방범용 창문 알람기’ 등이 포함된 ‘여성안전키트’를 일대 원룸 거주자 집에 일일이 방문해 나눠줬다. 박씨가 거주한 뒤 시작된 일이다.
주민들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 회사는 시민상황실에 두루마리 휴지 900개를, 또 다른 업체는 안전지킴이를 위해 컵라면 수십개를 기부했다.
성범죄 전력자로부터 동네 안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나선 지역은 여러 곳이다. 경기도 안산 주민들은 ‘허락받지 않은 이웃’ 조두순 문제로 부심하고 있다. 조씨는 2008년 8세 여아를 성폭행해 12년간 복역하고 2020년 12월 출소한 뒤 안산에서 살고 있다. 그는 아내 오모씨와 지난달 28일로 월세 계약이 만료돼 주변 동네로 이사하려고 했다. 아내가 새 월셋집 계약까지 마쳤지만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이주 계획이 무산됐다. 당시 주민들은 이사 예정지에 조씨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철문을 달고 그 앞에서 보초를 서며 저지에 나섰다. 한 주민은 “전문가들도 이들의 재범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아동 성범죄자가 어린이 시설이 많은 지역으로 이사 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감시·저지 행위가 ‘재범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지 막연한 지역 이기주의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나서서 법률과 시스템으로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출소한 성범죄자가 거주하는 곳 주위 1㎞ 이내에서 재범을 저지를 수 있는 확률이 80%라는 통계도 있다”며 “재범 가능성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는 상식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치료감호소에 감호 위탁을 하고 자발적으로 성충동 억제 약물 주사를 맞으면 조건부 가출소를 시키고,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다시 부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화성=글·사진 신지호 기자 p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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