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보다 취향! 가내수공업 전문 창작 집단, 아지카진 매직월드 2편

2022. 12.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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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좋아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쳤을까? 한 번 보면 자꾸 생각나는 작업을 하는, 2023년에 더 기대되는 서울 기반의 독립 창작 집단 2팀을 만나 물었다. 새로운 기획의 새콤한 맛, 의견 충돌의 매콤한 맛, 앞으로의 꿈에 대한 달콤한 맛까지.

Q : 그럼 요즘 아지카진이 천착하는 작업은 저 화이트 보드에 적힌 ‘Sleeping River’ 프로젝트인가?

A : 형묵 내년에 나올 음반과 영상 작업이다. 우리 세계관 안에 있는 지역을 보여주려고 준비 중이다.

A : 경태 ‘Eyeballs’ 뮤직비디오에 ‘쓰레기산’이라는 가상의 지역이 나온다. 쓰레기가 쌓여 산을 이룬 거다. 그런 식으로 특정 지역을 하나씩 상상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Q : 스케치로 붙여둔 강 이미지가 아주 예쁘다. 우주 같기도 하고.

A : 경태 정연이 그린 그림이다.

A : 기호 아직 릴리즈 전이지만 ‘Magic World Cosmos’라고, ‘Eyeballs’에 나온 노란색 쓰레기산을 배경으로 만든 영상이 있는데, ‘Sleeping River’도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다. ‘Magic World Cosmos’ 영상 속에 등장할 노란색 쓰레기산은 실제로 모형을 만들어 촬영한 거다.

페이크 커머셜 〈captain bucket ship〉.

Q : ‘코스모스’라는 개념은 원래부터 생각한 건가, 아니면 하다 보니 확장된 건가?

A : 기호 사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정연이 제일 좋아하는 다큐멘터리다. 우주에서 지구를 설명해주는 게 굉장히 환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시리즈를 만들게 됐다. 아까 언급한 ‘Eyeballs’ 뮤직비디오에 우주선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후속작을 준비하면서 우주선 혹은 공장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하고 있다.

A : 정연 옆의 빌보드에 붙인 것들은 다 레퍼런스다. 주변 자연환경도 같이 구상하고 있다.

Q : 아지카진으로서의 첫 작업은 뭐였나?

A : 정연 〈Captain Bucket Ship〉이라는 30초짜리 페이크 커머셜 영상이다. 실존하지 않는 완구 모형을 만들어 영상을 촬영했는데, 직접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처음 느꼈다.

Q : 아지카진은 기획부터 영상 연출, 모형 제작, 프로듀싱까지 모두 가내수공업으로 하는 셈이다. 이유가 뭔가?

A : 정연 단순히 재미있어서다. 효율이 좋아서는 전혀 아니고. 취향의 문제다.

A : 형묵 그저 음악과 영상을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IP(지적재산권)를 가진 캐릭터들을 더 만들고 싶다.

A : 기호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다 같이 모여서 만들 때 재미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든 인형을 만들든, 그 순간에 다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누면서 방향이 바뀌기도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걸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과정까지 너무 재미있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하지 않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작업의 방향성에 불신이 생겨도 가내수공업으로 일단 진행하다 보면 막혔던 부분이 뚫리기도 하고, 상상 속에서는 두려웠을 법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A : 정연 동의한다. 커미션 작업을 받아 같이 협업할 때도 온라인상으로 연락할 땐 답답하지만 막상 얼굴 보고 작업하면 굉장히 재미있다. 팀워크도 느끼게 된다.

A : 형묵 내 경우 단체로 으으 하면서 작업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의견 충돌이 있어도 같이 일하는 게 즐겁다.

A : 정연 나는 그냥 내가 갖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같은 개인적인 욕구로 창작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친구들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준다.

A : 형묵 항상 얘기를 나누고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난 별로인데”라고 하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우리 방식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 걸린다.

A : 정연 내가 좋아하는 닌텐도사의 인터뷰도 많이 읽어봤는데, 무엇이든 창작하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다. 나쁜 건 전혀 아니라고 본다.

A : 성문 평균 10~12시간을 이 작업실에서 보낸다.

A : 정연 강제 합숙이다.(웃음)

Q : 당신들은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

A : 정연 이 모든 작업을 이어 붙이고 하나로 만들어내는 걸 보면 나름 천재형이지 않을까? 내가 멤버들에게 항상 천재라고 얘기하는데 본인은 모른다. 그냥 겸손한 거다.(웃음)

A : 경태 일단 성향이 각기 다른 5명이 모여 만들어졌으니 아지카진을 하나의 유기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침마다 모여 회의를 하면 이틀에 한 번꼴로 논쟁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게속 변화하는데, 그 자체를 우리가 꽤 즐기는 편이다.

Q : 그렇다면 아지카진은 천재형인가, 노력형인가?

A : 경태 워낙 의사결정이 느리다 보니 게으른 천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즐겁게 한다. 베짱이형?

A : 성문 낙관, 방관, 방치형?

A : 정연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미련하다. 거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왜냐하면 한 걸음 걸음마다 ‘이렇게 갈까’, ‘저렇게 갈까’ 하다가 겨우 내딛는 정도니까. 거대한 로봇을 다 함께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A : 기호 맞는 것 같다. 거대 로봇인데 5명이 가고 싶은 방향이 각자 다르다. 결국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 발을 내디딘다.

A : 성문 이를테면 제자리라든가.

A : 형묵 뒤로 간다든가?(웃음)

A : 성문 그래도 그 한 발 디뎠을 때의 쾌감이 엄청 크다.

Q : 5명의 회의 모습이 궁금하다. 각자 생각하는 ‘좋은 작업’의 기준이 다른데 어떻게 조율하나?

A : 형묵 계속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종국에는 다들 ‘아지카진다운 것’을 추구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하지만 ‘아지카진다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정작 5명 그 누구도….

A : 정연 확실히 말할 수 없다.

A : 경태 유독 기호와 의견 충돌이 잦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다른 거다. 언쟁이 길어지다 보면 한쪽이 “그냥 네 마음대로 해!” 하며 토라지지만,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면 ‘실제로 그 방향이 더 좋은데?’ 싶다.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서로의 의견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A : 정연 그래서 가끔 정말 웃긴 상황이 생긴다. 기호는 어제 경태 의견이 좋다고 하고, 경태는 기호 의견이 좋다고 하는 거다! 다시 싸운다.(웃음)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꽤나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의견이 대립하더라도 ‘얘가 왜 고집을 부리지?’라기보다 ‘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걸 중시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를 것을 먼저 파악하고 그 사람을 위한 맞춤 설명을 준비하기도 한다.

A : 성문 우리는 무엇보다 작업할 때 즐거운 게 중요하다. 결과물이 좋아지는 길을 택한다기보다는 이걸 하면서 우리가 확실히 재미있는 방향을 택한다. 작업할 때, 완성된 결과물을 볼 때 우리가 재미있어야 한다.

곧 나올 뮤직비디오를 위해 ‘쓰레기 산’을 만드는 멤버들.

Q : 아지카진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게 뭔가?

A : 형묵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고, 막연히 10년 뒤라고 한다면 계속 이렇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 정도다. 지금은 재미있는 거 위주로 작업을 하다 보니 파편들만 늘어놓은 느낌에 가깝다.

A : 정연 나는 일회성이 되지 않는 방식을 찾고 있다. 많은 사람이 푹 빠져들고 곱씹을 수 있는 세계관을 잘 만들어 유지시키고 싶다. 오타쿠의 입장에서 그런 세계가 하나 있으면 오래오래 살 수 있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지상 작업실을 구하고 싶다는 것?(웃음) 환기가 잘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A : 기호 나도 비슷하다. 꾸준히 뭔가를 확장하며 생산할 수 있는 지적재산, 세계관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Q : ‘아지카진’이 ‘아직까진’을 의미하는 건 쉽게 알아챘는데 정확히 뜻이 뭔가?

A : 정연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뉘앙스로 지은 이름이다. 아지카진은 어떻게 보면 뒤죽박죽인 공동체지만, 우리끼리는 재미있으니까 아직까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느낌이다. 어감도 마음에 든다.

A : 기호 ‘지금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나 효율적인 업무 방식에 대한 강박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직까진 이 방식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다. 워크 플로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A : 경태 전에 잠깐 같이 작업하던 형이 생각난다. 인형 뽑기를 하는데 돈을 엄청 넣으면서 하나도 못 뽑고 있었다.

A : 정연 아니다. 작지만 잠만보를 하나 먼저 뽑아놨었다.

A : 경태 아무튼 돈 주고 인형을 사는 게 나을 정도로 돈을 날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놀리는데 그 형은 아직까진 괜찮다고 했다.

A : 정연 아직까진 이득이다!

A : 경태 아무리 봐도 이득이 아닌데.

A : 성문 하나는 뽑아놨으니까.

A : 경태 그런데 문득 그 형에게는 돈이 기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A : 성문 아마 돈을 기준으로 생각한 걸 텐데?

〈Eyeballs〉 뮤직비디오. ‘주주비(Jujubee)’라는 캐릭터가 우주선을 만드는 과정을 포인트 클릭 게임 형식으로 구현했다.

Q : 물론 그 상황에서는 손익분기점이 분명 생긴다.(웃음)

A : 경태 그러니까 그 형이 의도했든 아니든, 아직까진 괜찮다라는 말은 이렇게 해석이 된다. 그에게는 인형을 제값 주고 사는 것보다 싸게 사는 것만이 이득이 아니었던 거다. 돈을 얼마나 넣든, 내가 재미있을 때까지는 괜찮다는 거다. 아지카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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