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통화긴축·美소매판매 둔화…'R의 공포' 덮친 글로벌 증시(종합)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내년에도 통화 긴축 행보를 이어 나가겠다고 선언하면서 경기침체 공포가 한층 커졌다. 지난달 미국 소매 판매 등 주요 경기 지표가 예상보다 크게 감소, ‘R의 공포’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증시가 폭락했다.
1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2.25%(764.13) 하락한 3만3202.22에 장을 마감했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2.49%(99.57) 떨어진 3895.75,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23%(360.36) 내린 1만810.53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는 지난 9월 이후 최악의 날을 기록했으며,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11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을 나타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 증시에 이어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600지수도 2.85% 하락한 429.91에 장을 마감했다. 5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ECB·BOE, 금리 인상 폭 줄였지만…긴축 기조 유지주요국이 내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뜻을 내비치자 증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전날 Fed의 결정과 동일하게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았다. ECB는 기준금리를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인 2.5%로, 수신금리와 한계 대출금리 역시 각각 2.0%와 2.75%로 올렸다. BOE는 연 3.0%에서 연 3.5%로 지난해 12월 이래 9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인상 폭은 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물가를 잡기 위해 통화 긴축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기준금리가 상당히 꾸준한 속도로 인상돼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우리는 경로를 유지할 것이며 한번 치고 빠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날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내려가는 증거가 보일 때까지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직 갈 길이 남았다"고 발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Fed는 현 4.25~4.5%의 기준금리를 내년에 5.1%까지 올리겠다는 점도표도 내놓으며 다시 한번 공격적인 통화 긴축을 예고했다.
ECB, BOE 외에도 이날 스위스 국립은행(SNB)도 기준금리를 0.5%에서 1.0%로 0.5%포인트 인상했다. 노르웨이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2.75%로 결정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이 같은 기조에 경기침체 없이 물가를 잡는 연착륙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 증권사 에드워드존스의 모나 마하잔 수석 투자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시장의 관심은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Fed가 우리를 불황으로 몰아넣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美 소비·생산 얼어붙자…경기침체 우려↑이날 증시에 찬물을 더한 건 빠르게 식고 있다는 미국의 경기지표였다. 미 상무부는 이날 11월 소매 판매가 전월보다 0.6% 감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2.0%)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0.2%)보다 감소 폭이 더 컸다. 같은 날 공개된 미국의 11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2% 줄었다. 제조업 생산도 11월 0.6% 축소돼 지난 6월 이후 5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이러한 지표를 두고 Fed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라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이어질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를 드러냈다. 블룸버그는 "수개월 전만 해도 나쁜 경제 지표가 투자자들에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Fed의 금리 인상이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평가돼 좋게 받아들여졌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많은 투자자가 Fed의 과도한 긴축에 내년에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앙은행들이 강경한 기조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Fed가 경기 악화로 인해 내년 2월 정도면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으로 예상했다.
나디아 로벨 UBS 선임 전략가는 "오늘 시장이 보인 하락은 놀랍지 않다. 시장에서는 Fed가 그들이 하겠다고 말한 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거래가 이뤄졌다"이라면서 아직 경기 침체가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상황이며 내년 상반기에 이러한 점이 반영되면서 재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퀸시 크로스비 LPL파이낸셜 수석 전략가는 "주식시장이 이제 경기 침체를 고려하고 있다"면서 "파월 의장이 말한 연착륙 가능성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 시장 분석가는 "노동시장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지만, 현재 소비와 제조업이 침체에 빠져 있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증시에 불어닥친 한파는 우리나라에도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1.32% 내린 2329.75에 장을 시작해 낙폭을 줄이고 있다. 한국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15.9원 오른 1318.76 시작해 상승 폭을 축소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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