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발목까지 찬 지리산 아침, 무심의 삽질?
현실은 택배 차량 진입 위한 700m 길 확보 전쟁
요즘 들어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아침 일출 무렵에 마당에 나가 하늘을 관찰하는 일이다. 내가 사는 집이 산 중턱에 있고 삼면이 훤하게 트여서 마당에 나가서 보면 하늘이 널찍하다. 이 넓은 하늘의 모양이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다.
얼마 전부터 변화무쌍한 하늘 모습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같은 장소, 같은 앵글로 찍은 사진인데도 그 모습이 놀라울 정도로 다채롭다.
어젯밤에는 창밖으로 바람 소리가 무척 심했다. 아침에 나가보니 눈이 발목까지 쌓여 세상이 온통 하얗다. 그동안 가끔 눈발이 날리기는 했지만 첫눈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민망했다. 본격적인 눈으로는 올겨울 들어 처음인 것 같다. 기온도 뚝 떨어져 눈을 쓸어도 깨끗하게 쓸리지 않고 바닥에 하얀 얼음 조각들이 남는다.
눈이 잘 안 쓸리니 큰길까지 나가는 길이 막힐까 봐 걱정된다. 그냥 살림만 한다면 길이 막히면 집에 있거나 나갈 일이 있어도 걸어서 들고 나면 되니 별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식품공장)를 하다 보니 택배 처리를 할 수 없어 문제가 된다.
공장에서부터 차가 다니는 큰길까지는 대략 700m 정도 된다. 예전에는 T자형으로 된 눈삽을 들고 눈을 좌우로 밀치면서 길을 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700m를 치우려면 힘이 많이 든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꾀를 내 자동차 바퀴가 닿는 부분만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T자형 눈삽을 쭉 밀고 가면 되니 예전보다 힘도 덜 들고 시간도 훨씬 적게 든다.
나는 눈 치우는 시간을 좋아한다. 힘은 좀 들어도 산 중이라 주변이 조용하고 삽질을 하다 보면 아무리 추운 날에도 등에서 땀이 난다. 추운 날 아무 생각 없이 눈을 치우다 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가끔 새들이 지나가다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주변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조용한 산 중에서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들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게 된다.
아침에 눈을 치우다 보니 간밤에 고라니가 다녀갔는지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보통은 눈 위에 난 발자국은 선명한데 어젯밤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발자국이 또렷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발자국의 크기나 경로를 보면 고라니가 틀림없다. 며칠 전에 한밤중에 밖에 나갔다가 달빛 아래 발자국이 난 길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고라니를 본 적이 있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놈이 그놈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참고로 감나무 위에는 함부로 올라가면 안 된다.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 쉽게 부러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몇 해 전에 감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다행히 높지 않은 곳이라 별 탈은 없었다.
할 수 없이 택배차를 길이 막힌 곳 아래에 대기시켜 놓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손으로 물건들을 날랐다. 미끄러운 길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물건들을 날랐더니 아직도 어깨가 뻐근하다. 고생은 했어도 택배 물건들을 잘 실어 보내고 나니 마음은 개운하다.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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