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2023년 나의 실천 목표는 ‘50% 줄이기’
도시에 살다 시골로 터를 옮긴 시부모님은 딱 한 번 개를 키우신 적이 있다. 이웃에서 잡종개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를 얻으셨단다. 어머니는 개 이름을 점잖게 ‘보현’이라 지었다. 주둥이가 새까만 강아지는 귀염둥이였다. 아버지는 서투른 목공 솜씨로 직접 개집을 지어 주셨다. 개 한 마리가 생겼을 뿐인데 시골 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웠던가.
식구들이 일부러 남긴 밥을 얻어먹으며 보현이는 삽시간에 자랐다. 어머니는 고기 뼈와 명태 머리를 얻어다가 따로국밥을 끓여 주기도 했다. 넓은 시골 마당에서 아들과 개는 실컷 뛰어놀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보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두운 방에 누워계신 채 나오지 않았다.
시골에서 개를 키우는 이유는 한 가지란다. 이웃 노인들의 청을 마냥 거절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보현이를 내줄 수밖에 없었단다. 개를 잃어버렸다고 전해 들은 아들은 한참이나 울었다. 그 이후로 우리 집 식구들은 가끔 약처럼 먹던 음식 하나를 완전히 끊었다. 넓은 마당과 개집이 그대로 있는데도 시부모님은 더 이상 개를 키우실 생각을 안 했다.
아침마다 동네 공원에 나가보면 ‘개판’이다. 그렇게 커다란 개들을 어찌 집안에서 키우는지 모르겠는데, 각종 개들이 주인과 함께 나와 활보한다. 예전과 다르게 함부로 목줄을 잡아당기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가장 압권은 전용 유모차에 태워 작은 선풍기까지 매달아 쐬어 주는 아저씨다. 반려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의 가족이 됐다.
가족 같은 생명체를 ‘음식’으로 여길 수는 없다. 하지만 닭, 돼지, 소는 어떤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빨간 조명 아래 놓인 고기의 형태다.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고 죽었든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음식 솜씨가 별로 없는 나 같은 주부는 고기반찬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 집에 아들이 있다면 그 빈도는 더욱 늘어난다.
넓은 초원을 옮겨 다니며 게르에서 지내는 유목민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몽골이었던가, 티베트였던가. 가축을 몇 마리 끌고 다니는데, 유목민에게 고기는 중요한 식량이기 때문이다. 도살하는 과정은 신성했다. 죽이기 전에, 잘 자라서 우리 가족의 먹거리가 돼주어 고맙다는 기도를 올렸다. 원시시대부터 이어져온 생명과 생명의 자연스러운 먹이사슬이었다.
요즘 같은 초문명 시대를 살면서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청년이 있다. 책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쓴 이동호다. 제목부터가 난센스다. 돼지(고기)와 채식주의자라니!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고 그 생명을 죽여서 먹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고귀함을 지킨다는 면에서 채식의 연장”이라고 여겼다.
‘서울 촌놈’으로 자란 그는 돼지를 직접 키워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에서 축산 실험용으로 키우던 아기 돼지 세 마리를 싣고 오는 과정부터 만만한 일은 없었다. 거대한 곤포를 세워 울타리를 만들고, 시든 감자와 사과를 얻어다 사료로 먹인다. 가축을 건강하게 키운다는 뿌듯함을 얻었다. 반면 “아 진짜 돼(뒈)지겠네”가 절로 나올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 달 남짓 시간이 흘렀다. 동네잔치를 빌미로 돼지 한 마리를 도축하는 날이 찾아왔다. 기른 자가 생명을 거둬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지만 직접 망치를 들진 못했다. 오히려 ‘윤리 도축’이나 ‘동물 복지’라는 말의 허상만 강하게 느꼈을 뿐이다. 돼지를 키우고 도축하는 과정을 경험한 돼지 사육자는 결국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누구나 채식을 하라고 강요하진 못한다. 나 역시 완전히 끊기는 어렵다. 그러나 늘어만 가는 고기 소비, 그에 따른 공장식 축산의 병폐, 기후 변화, 전염병 발생, 생명 경시 현상 등을 마냥 도외시할 수는 없다. 12월에 줄줄이 이어지는 송년회 장소는 대부분 고깃집이다. 조금만 먹고도 오래 씹어서 포만감을 느끼는 연습을 해보자. 2023년 나의 실천 목표는 고기 섭취량 50% 줄이기.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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