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여야의 치킨 게임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지난 11일 “민주당과는 그 어떤 협치도, 그 어떤 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나온 발언이었다. 일종의 협치 불가 선언이었다. 장 의원의 말은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을 담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정부·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법안들을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헌정사상 8번밖에 없었던 장관 해임 건의안을 벌써 두 번이나 강행했다. 민주당 의원 6명은 지난달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석해 발언했다. 모두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게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권과 민주당은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가는 자동차다. 상대방이 굴복하기를 바라는 치킨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여권은 이 대표가 대장동 수사를 받아들이고, 정부조직법 개정을 비롯한 각종 법안에 협조하기를 바란다. 정권이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몸을 굽히라는 요구다. 민주당은 이 대표와 문재인정부에 대한 수사를 정리하고 민주당의 이익을 침해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민주당은 여권의 요구를, 여권은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결국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것 외엔 남은 길이 없다.
치킨 게임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상대방이 먼저 핸들을 꺾는 것이다. 그러려면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상대방에게 줘야 한다. ‘저 사람은 절대로 양보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미치광이 전략’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러시아 푸틴 대통령,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주 사용했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전략이다. 무조건 직진이라는 확신을 주기 위해 자동차 핸들을 뽑아서 창문 밖으로 던지라는 조언도 있다. 윤 대통령이 “자유를 제거하려는 사람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를 계속 외치는 것도, 민주당이 정부의 정책마다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자신은 핸들을 꺾지 않겠다고 시위하는 것이다.
정면충돌은 둘 다 망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치명상이 예상되더라도 달려야 할 경우가 생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금이 그런 경우라고 판단한 것 같다. 계산법은 조금 다르다. 1950~60년대 미국에서 일부 젊은이들은 치킨 게임을 할 때 꼼수를 썼다고 한다. 튼튼한 자동차를 끌고 나가는 것이다. 정면으로 충돌해도 자동차가 튼튼하면 다칠 확률이 낮아진다. 자존심도 지키고 생명도 지키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정권을 잡았으니 튼튼한 자동차를 마련한 셈이다. 인사권도 있고, 검찰과 경찰도 장악했다. 민주당과 충돌하더라도 많이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충돌로 인한 피해를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민주당의 무기는 169석이라는 국회 의석수다. 개헌 말고는 대부분 할 수 있는 의석수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배수진을 치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다른 대안도 없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절박함이 더 클 것이다.
치킨 게임은 한쪽이 굴복하거나 둘 다 치명상을 입는 경우의 수만 존재한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지게 된다. 현실 정치는 치킨 게임이 아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질 수도 없고, 모두 다 망해서도 안 된다. 여권과 민주당은 자신들이 벌이는 게임의 목적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야당 죽이기는 여권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민주당의 굴복을 강요하며 계속 직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뿐더러 심판인 국민이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민주당 역시 자신들이 얻어야 할 것을 분명히 할 때가 됐다. 이 대표 지키기가 목적인지, 윤석열정부의 독주를 막는 게 목적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야당이 국정을 주도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1955년에 나온 미국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는 절벽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가는 치킨 게임이 벌어진다. 짐(제임스 딘)은 아슬아슬하게 차에서 뛰어내렸다. 상대방은 자동차문 손잡이에 옷소매가 걸려 결국 추락사했다. 차에서 뛰어내린 제임스 딘은 살아남았다.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여권과 민주당도 먼저 손을 내밀고 핸들을 꺾는 쪽이 결국 승리할 것이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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