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강남불패는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15일 당첨자를 발표한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의 일반 분양 성적표다. 한때 ‘10만 청약설’이 나올 정도로 부동산 시장의 관심이 높았던 곳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초라했다. 미달은 아니었지만 일부 주택형은 2순위에서도 예비 당첨자를 다 채우지 못했다. 당첨에 필요한 최저 점수는 20점(전용면적 49㎡)까지 떨어졌다. 분양가 상한제치고는 상당히 낮은 점수다. 당첨자 계약은 내년 1월 17일까지다. 이런 분위기라면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한 ‘줍줍’(무순위 청약) 물량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둔촌주공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1만2000가구의 대단지다. 엄밀히 말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속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큰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송파구로 이어진다. 잠실을 포함한 송파구 아파트들과 경쟁하는 관계다. 지하철 5·9호선과 연결되는 더블역세권에 올림픽공원도 가깝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청약 결과가 이렇게 저조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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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촌주공 등 신규 분양시장 위축
강남 3구 기존 아파트도 하락세
미분양은 급증…청약규제 풀어야
」
분위기가 차갑게 식은 건 분양 시장만이 아니다. 기존 강남권 아파트 단지들도 시세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보자. 지난달에는 17억원대(전용면적 77㎡)에 거래된 사례가 있었다. 1년 전 26억원대에 팔렸던 것과 같은 주택형이다. 동과 층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지난 10월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도 매수 심리를 살리지 못했다.
통계를 봐도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한국부동산원은 매주 목요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보고서’를 공개한다. 지난 12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일주일 전보다 0.65% 내렸다. 지난 5월 말 이후 29주 연속 하락세다. 강남(-0.44%)·서초(-0.27%)·송파구(-0.81%)도 일주일 전보다 하락 폭이 커졌다.
결국 ‘강남불패’는 없었다. 1970년대 강남 개발 이후 이런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영원할 순 없다. 이제 강남 아파트도 하락세로 돌아선 건 분명해 보인다. 개별 단지의 성격에 따라 집값 하락 속도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울의 다른 곳은 다 떨어지는데 강남 집값만 나 홀로 버틸 순 없다.
강남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의 ‘블루칩’(대형 우량주)으로 통한다. 주식시장의 삼성전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 액면가 100원짜리 삼성전자 주가는 한때 9만원을 넘어섰다. 반도체 호황에 실적이 좋아진 영향도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불어난 유동성 효과도 컸다. 현재는 최고가 대비 40% 넘게 떨어진 상태다. 물론 삼성전자나 강남 아파트도 언젠가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할 수 있다.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자산시장의 당연한 흐름이다.
내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까. 전셋값 하락과 미분양 급증의 두 가지가 가장 주목되는 변수다. 2년 전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크게 오르자 ‘갭 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가 성행했다. 세입자가 맡긴 전세 보증금에는 이자가 없다. 갭 투자자로선 사실상 무이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효과가 있었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의 틈새를 뚫는 방법으로 전세 제도를 활용한 셈이다. 그런데 전셋값이 많이 내리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달라는데 갭 투자자는 돈을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국 급매로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집이 안 팔리면 법원 경매로 넘어간다.
미분양은 금융 시스템 전반까지 위협할 수 있는 요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미분양 주택(866가구)은 7년여 만에 가장 많았다. 수도권 전체로는 아직 심각한 규모는 아니지만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른 게 신경이 쓰인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미분양 증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회수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다. 건설사로선 무작정 분양을 미룰 수도 없다. 분양자에게서 계약금·중도금을 받아야 금융회사의 고금리 대출을 갚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집값 상승기에 도입했던 과도한 규제를 이제라도 풀어나가는 건 당연한 방향이다. 그중에서도 청약 관련 규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미분양 증가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다. 예컨대 분양가 상한제 지역에서 재당첨제한과 전매제한 기간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초 분양자의 시세 차익이 크다는 걸 전제로 한 제도인데 현재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아 보인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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