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부추긴 조중동과 경제지들의 황당한 태세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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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에는 많은 흠집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렌즈를 통과하는 사실들은 굴절되거나 아예 반사돼 통과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비틀어 왜곡하거나 감춘 사실들을 찾아내 까칠하게 따져봅니다. <편집자말>
[신상호 기자]
▲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2022.11.23 |
ⓒ 연합뉴스 |
수입에 비해 과도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산 영끌족들은 주로 기본 자산이 부족한 2030세대들로 이뤄져 있다. 집값 급등 시기였던 2020~2021년, 2030세대의 아파트 매입 비중은 꾸준히 늘었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아파트 매입 통계를 보면 2020년 2030세대의 매입비중은 29.2%였고, 2021년에는 31%까지 늘었다.
특히 서울의 경우 2021년 2030 세대의 아파트 매입 비중은 41.7%에 달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10억을 호가하는 가운데, 이른바 '상투를 잡았던(가장 고가일 때 구매)' 셈이다. 그러면서 2030세대 중 취약차주(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상태 이거나 저신용 등급인 사람들을 뜻함) 비율도 커졌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금리 상승기의 취약차주 부실 관리 정책체계에 관한 소고' 보고서를 보면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DSR) 비율이 40% 이상인 취약차주는 전체의 18%였다. 이중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20대 취약차주 비중은 27%였고, 30대는 23%로 평균보다 높았다.
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대까지 끌어올리고, 시중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대를 넘어서면서 이들 영끌족의 부담도 급격히 늘어났다. 아파트를 영끌해서 매수한 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면서 "라면만 먹고 산다"던 30대 가장의 라디오 인터뷰(11월 4일 방송된 '김현정의 뉴스쇼')는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금융연구원은 대출 금리가 1%포인트(올해 6월 기준) 오를 경우,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20대 중 취약차주 비중은 27%에서 33.1%로, 30대 중 취약차주 비중은 23.2%에서 29.8%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누구 탓일까
2030세대가 영끌을 하게 된 것은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공포 심리가 자리 잡았던 탓이 크다. 여기에는 보수·경제신문들의 여론몰이도 한몫 했다.
▲ 동아일보 2020년 11월 16일자 기사 |
ⓒ 동아일보PDF |
오히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20년 11월 영끌족을 막기 위해 내놓은 가계부채관리대책도 '내집마련 꿈을 앗아간다'며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영끌 신용규제에 분통'이라는 제목의 기사(2020년 11월 16일자 지면)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흙수저로 태어나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직업 얻었고, 내 신용으로 대출 보태 집 한 채 사겠다는데, 이제 그것도 불법이 됐군요."
그리곤 이렇게 적었다.
"부동산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책 발표 이후 포털사이트 부동산 카페 등에는 흙수저들은 더는 집을 살 수 없게 됐다는 절망감이 넘쳐났다. 한 누리꾼은 '그간의 노력을 나라가 짓밟는 기분'이라고 한탄했다."
<중앙일보>도 2020년 11월 14일자 기사(1억 넘게 빌려 1년 내 집사면 신용대출 회수)에서 신용대출에 대해 용도관리를 강화하는 정부 정책을 "용도를 과하게 제약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라고 했다. 11월 16일자 기사(부인 1억 넘는 신용대출, 남편 명의로 집사면 회수 안해)에서도 "전례 없는 규제"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의 2020년 11월 16일자 기사(대출막차 우려에 속타는 무주택자들)를 보면 '연소득 8200만 원인 회사원이 반차를 내고 은행을 방문해 대출을 받겠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영끌을 독려하기도 했다.
<머니투데이>도 '마지막 기회 영끌 금지령에 은행 달려간 고소득자들'(2020년 11월 15일) 기사에서 서둘러 대출을 받으려는 일부 고소득자들의 사례를 전하면서 "당국의 대책을 '영끌 금지령'으로 받아들이고 적용이 본격화하기 전에 최대한 '영끌'에 나서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제> 역시 '젊은부부 영끌로 각자 1억∼2억 신용대출받아 집구입 막혔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무주택자의 내집마련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부각 시켰다. <한경>은 "무주택자들에까지 대출을 이용해 주택을 구입할 길을 막아버린 것은 너무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은행 관계자의 말을 비중 있게 다뤘다.
2022년 1월 1일 <조선일보> "올해도 수도권 집값은 상승세"
▲ 조선일보의 2022년 1월 1일자 기사 |
ⓒ 조선일보PDF |
이 기사에는 심교언 건국대 교수,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원,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등이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지금 같은 사태를 예견하거나 우려한 전문가는 없었다. <조선>은 "부동산전문가들의 새해 집값 전망은 그래도 오를 것이란 의견이 우세했다"면서 집을 빨리 살 것을 독려하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권고를 강조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월 2일자 부동산 전문가 설문조사 기사(90% "올해도 집값 오른다"..정부와 딴소리, 왜?)를 통해 집값 상승을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 열명 중 아홉명은 올해도 집값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추세적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는 정부 판단과는 반대다. 정부가 하락 추세 전환의 근거로 보고 있는 '최근의 집값 하락 통계'에 대해선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매일경제>도 지난 1월 2일 기사(거래 한파에도 "서울 집값 안 떨어진다"…부동산전문가들이 꼽은 유망지역은)에서 "수년간 숨 가쁘게 올랐던 서울 집값이 2022년에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고 진단했다. <매경>은 그러면서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집값 상승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며 적극적인 매수를 독려했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고, 금리가 오르자 이들 언론들은 오히려 '영끌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 12월 12일자 동아일보 칼럼 |
ⓒ 동아일보PDF |
<동아일보>도 지난 12일자 칼럼(빚 무서운 줄 모르다가는 패가망신하는 시대가 왔다)을 통해 "지금 영끌족의 고통은 경제 흐름을 읽지 못하고 분에 넘치는 위험을 짊어진 대가라는 지적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영끌족을 비판했다.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등도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는 '영끌족' 사례를 소개하는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기사에 소개된 영끌족들의 아파트 구매 시기를 보면 이들 언론들이 집값이 오른다는 기사를 쏟아내던 2020~2021년이다. 그동안 영끌족 양산에 기여한 이들 언론들은 이제 '영끌족'들의 판단 미숙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이같은 언론들의 '태세전환'에 대해 "집값 상승으로 인해 무리하게 집을 산 영끌족 양산의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지만, 집값이 한없이 오를 것이라면서 공포 심리를 조성해 영끌을 장려하했던 보수, 경제지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이들 언론들이 지속적으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것은 시장 거품을 유도하면서 부동산, 아파트 분양 광고를 유치해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 다분하다"라며 "영끌족들은 무능한 정부와 이익에 눈 먼 언론들이 만들어낸 희생자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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