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다 돌아온 김선욱, 서울시향 ‘합창’ 지휘

장지영 2022. 12. 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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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 대타로…“어린 시절 꿈 이뤘다”
서울시향의 베토벤 ‘합창’ 지휘를 맡은 김선욱이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시향 리허설룸에서 라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일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은 자택이 있는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도중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14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15·16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올리는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의 지휘를 맡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핀란드에 있던 오스모 벤스케 감독이 전날 낙상 사고를 당해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서울시향이 급하게 대타를 찾은 것이다. 결국, 김선욱은 출국하는 대신 12일부터 서울시향과 리허설을 통해 호흡을 맞췄다.

김선욱은 13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리허설룸에서 열린 라운드인터뷰에서 “서울시향에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 30~40분이 34년 제 인생에서 가장 고심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면서 “리허설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베토벤의 ‘합창’은 연말 스테디셀러로 오케스트라 외에도 솔리스트와 합창단까지 나오는 등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공연을 올리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고스란히 책임지는 음악감독이 아니면 좀처럼 지휘 기회를 얻기 어렵다. 게다가 김선욱이 피아니스트로는 스타지만 지휘자로는 데뷔한 지 2년 차인 신예인 만큼 더더욱 ‘합창’ 지휘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김선욱이 고민 끝에 수락한 것은 바로 ‘합창’이었기 때문이다.

“1999년 12월 31일 초등학교 5학년 때 예술의전당에서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합창’ 실연을 처음 봤습니다. 그때 전 지휘자를 꿈꾸던 아이였는데요. 당시 공연을 보며 ‘내가 이 곡을 지휘할 날이 올까? 언젠가는 꼭 하고 싶다’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베토벤의 ‘합창’은 지휘 기회가 쉽게 오는 곡이 아닌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죠.”

서울시향이 김선욱에게 SOS를 친 것은 22년간 이어온 오랜 인연 때문이다. 김선욱은 2000년 서울시향의 소년소녀협주회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협연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여러 차례 피아노 협연으로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지휘자로서 지난 8월 광복 77주년 기념 음악회로 서울시향과 처음 만난 바 있다. 지난 10월에는 다시 피아노 협연자로 서울시향의 유럽 순회공연을 함께하는 등 친분이 두텁다. 서울시향의 제안을 수락한 김선욱은 그날부터 첫 리허설 전까지 나흘간 호텔 방에서 악보 공부만 했다.

서울시향과 리허설을 하는 김선욱. 서울시향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방에서 하루에 14~15시간 악보에 집중했어요. 살면서 이렇게까지 온 영혼과 정성을 바쳐서 한 게 얼마만인가 싶을 만큼 열중했습니다. 악보를 처음 봤을 땐 압도됐어요. 베토벤 음악의 힘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첫날과 둘째 날은 음표를 그대로 받아들인 뒤 셋째 날과 넷째 날에 그 불덩이를 조절하는 과정을 거친 것 같아요.”

김선욱은 내년 10월 서울시향 정기공연 지휘 데뷔 무대를 앞두고 있었으나, 이번 공연으로 시향 정기공연에 미리 데뷔하게 됐다. 나흘간의 준비를 끝내고 12일부터 리허설에 들어간 김선욱은 “리허설처럼만 공연한다면 좋은 연주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는 2006년 18세 나이로 리즈 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자 첫 아시아 출신 우승을 차지한 후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지휘에 대한 꿈을 밝혔던 그는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 지휘 석사과정도 마치는 등 차근차근 지휘자로서 준비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2021년 1월 KBS교향악단 공연으로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본격 시작했다.

그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연습 과정에서 보다 많은 것들이 일어난다. 협연자일 때는 차 한 잔 마시러 방문하는 기분이라면, 지휘자일 때는 집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는 느낌이다. 그만큼 지휘자로서 단원들과 교감하고 대화하는 작업이 좋다”면서 “지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2년 가까이 된 지금은 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피력했다. 이어 “물론 음악가로서 갈 길은 아직 멀다. 정명훈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보면 해주시는 말은 항상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번처럼 공연할 때마다 최대한 많이 배우고 체득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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