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 분리 후 30배 성장한 메리츠금융지주 조정호 회장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2. 12. 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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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LOUNGE]
화재·증권 100% 흡수…‘버크셔해서웨이’ 꿈
1958년생/ 미국 타처고/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스위스 IMD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3년 대한항공 구주지역본부 차장/ 1991년 한진투자증권 상무/ 1999년 한진투자증권 대표이사 부회장/ 2003년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회장/ 2011년 메리츠금융지주 회장(현)
메리츠금융지주가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전격 편입한다는 소식에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64)이 주목받는다. 조정호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 故 조중훈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일각에서는 메리츠금융지주가 보험업을 주력으로 성장해 굴지의 투자 전문 회사로 자리매김한 미국의 버크셔해서웨이를 벤치마킹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조 회장의 이런 전략이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그는 한진그룹 일가에서도 부러워할 만한 독보적인 금융그룹을 일굴 전망이다.
최근 메리츠금융지주는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한다고 밝혔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2023 회계연도부터 통합될 메리츠금융지주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포함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최근 3년간 주주 환원율 평균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메리츠는 이 같은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3년 이상 지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주 측은 크게 3가지 대목을 강조했다. 첫째, 주주 손실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액 주주의 권리를 존중하는 최근 흐름을 의식한 듯 주주 손실이 없다는 대목을 강조하는 데 애를 썼다. 또 모회사만 상장되면 배당 등 주주 몫이 더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별도 조직으로 흩어져 있던 3사 간 통합을 통해 그룹 자본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깜짝 소식에 금융권 시선은 자연스레 조정호 회장을 향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지는 방향의 의사 결정은 국내 재계에서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주와 화재·증권 간 주식 교환이 완료되면 승계도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주식 교환 후 조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 지분율은 40%대로 내려간다. 이렇게 되면, 상속세 납부 등 지분 증여 절차가 마무리될 경우 조 회장 지분율은 20%대로 뚝 떨어진다. 확고부동한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보기에는 불안한 지분율이다.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의식한 듯 메리츠 측은 이런 대목을 유독 강조했다.

다만, 엄밀히 말해 메리츠증권과 화재의 완전 자회사화는 일견 예상됐던 측면도 있다는 게 시장 시각이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증권과 화재로부터 받는 배당과 브랜드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다. 이렇게 얻은 이익의 절반 정도는 배당, 나머지 절반 정도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 자회사 자본 확충 등에 써왔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재무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이미 증권과 화재는 활발한 협업을 바탕으로 막대한 당기순이익을 올려 업계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만약 지주가 과거와 같은 수준의 배당 성향을 유지했다면 이는 사실상 ‘폭탄 배당’으로, 이 돈으로 유통 물량이 적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메리츠 측은 배당을 다소 줄이고 자사주 매입과 소각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이에, 지주 몫 자회사 배당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여기에 화재와 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지분율 하락에도 미래 성장 기대 커

이는 조 회장 시각에서 보면 일견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다. 만약 2021년 재무 정책 변경 이전 배당 성향을 유지했다면 2025년쯤 자회사 지분율은 60%대를 웃돌고 지주의 유통 주식 수는 고갈 직전이 된다. 이렇게 되면 지주 상장을 유지할 실익이 사라진다. 하지만 지주의 상장폐지는 대주주인 조 회장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이므로, 상정하기 힘들다. 결국 남은 카드는 두 자회사 지분율을 더욱 높여 주식 교환으로 비상장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메리츠 측이 밝힌 것처럼 대주주 지분율이 쑥 내려가므로 지주의 상장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대주주가 가장 큰 실익을 누리는 구도로 가면서도 소액 주주의 이해관계를 적극 고려한 절충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 회장이 이런 의사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지분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래 기대이익이 더 높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믿음은 화재와 증권 두 자회사의 가파른 성장을 이끈 두 부회장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됐다.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메리츠화재는 존재감 없는 손보사에 불과했지만 김용범 부회장 합류 이후 고속 성장했다. 증권 역시 최희문 부회장이 사령탑을 맡은 뒤 자기자본 5조원대로 도약했다. 2005년 3조원대에 불과하던 메리츠금융그룹 총자산은 올 3분기 91조원으로 30배 성장했다.

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은 조 회장의 전문경영인 중용과 파격적인 보상 시스템 덕분이다. 조 회장은 성과를 낸 경영진에 막대한 보상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 회장의 이런 의지는 그룹 전반에 철저한 성과주의를 확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실적만 따라준다면 임기 역시 안정적으로 보장해 장기 성장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통상 남은 임기가 짧아질수록 전문경영인은 모험적인 시도를 지양하고 단기 재무 성과 위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메리츠그룹은 이런 관성에서 다소 자유롭다.

앞으로 조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를 미국의 버크셔해서웨이 같은 전문 투자 지주사로 키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워런 버핏은 손해보험업을 기반으로 장기 투자 자금을 마련해 지금의 버크셔해서웨이로 키웠다. 버핏은 보험사의 내부 적립금 개념인 플로트(float·책임준비금)에 큰 매력을 느껴 보험사를 버크셔해서웨이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플로트는 보험료를 지불하는 시점과 보험금을 청구하는 시점 사이에 보험 회사가 일시적으로 보유하게 되는 돈을 의미한다. 손보사는 기본적으로 보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한 플로트를 장기 투자 종잣돈 삼아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게 워런 버핏의 판단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플로트 투자는 이자 같은 자금 조달 비용이 들지 않아 무이자 대출과 유사한 개념”이라며 “조 회장 역시 버크셔해서웨이 모델을 벤치마킹하려 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8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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