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뇌혈관 전문병원’ 활용이 답이다

민태원 2022. 12. 1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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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철 대한신경외과학회 뇌혈관질환위원장·에스포항병원 대표병원장

뇌출혈·뇌경색 같은 뇌혈관질환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지난 7월 서울 모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현직 간호사가 근무 중 쓰러져 치료받던 중 숨졌다. 개두술(開頭術·두개골을 열어 뇌를 노출해 진행하는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신경외과 교수들이 각각 학회와 출장으로 부재중이어서 병원은 환자를 살려보려고 인근 병원으로 전원해 수술했으나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에 신경외과 의사로서 매우 안타까웠다.

미국 시사주간지가 공개한 국내 1위 대학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민들도 매우 놀랐을 것이다. 당시 그 큰 병원조차 개두술을 통해 뇌혈관질환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2명밖에 없어 50세 넘은 교수들이 하루 걸러 하루씩 당직 근무를 서고 있는 현실을 알고는 더 놀랐다. 이후 뇌혈관질환을 포함한 필수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런 초응급 뇌혈관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들이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편중돼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우리나라에 운영 중인 뇌혈관센터 55개소 중 78.2%(43개소)가 서울을 포함한 대도시권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과 지방 중소도시 간의 의료서비스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은 골든타임 내 응급 뇌혈관질환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놓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다.

현재 급성 뇌졸중 중 뇌경색은 치료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의 뇌경색 치료는 진단 후 신속하게 정맥을 통해 혈전용해술을 시행한 후 신경학적 후유증에 대한 재활치료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혈관조영실에서 막힌 혈관을 얼마나 빠르게 뚫어 잘 개통하느냐가 치료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또 급성기 골든타임을 고려해 혈전제거술과 혈관성형술 등 뇌혈관 내 중재치료(Intervention)를 모두 시행할 수 있는 기관이 지역별로 분포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밖에 뇌출혈에 대한 수술적 치료와 뇌경색 후 오는 중증 뇌부종을 치료하기 위한 감압술, 경동맥절제술, 뇌혈관 우회 문합술 등 고난도 관혈적 뇌수술에 대한 부분도 고려된 뇌혈관센터의 체계가 필요하다. 뇌혈관센터가 응급 뇌혈관질환 발병부터 최종 치료를 위해 준비된 병원이라면 모든 치료 시스템이 구축된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국내 뇌혈관센터의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뇌혈관센터만으로는 이 모든 치료를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문병원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전문병원제도는 전문성을 갖춘 역량있는 중소병원을 양성하고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기여하기 위해 매 분기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 지정되고 있다. 전문병원은 특정 질환의 숙달된 치료기술 발전으로 소비자들의 전문화된 치료욕구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또 의원과 대형병원 중심인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 의료비 절감과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 의료자원의 활용 수준 견인 등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현재 전국에 뇌혈관 전문병원(4주기)은 에스포항병원(경북 포항), 명지성모병원(서울), 굿모닝병원(대구), 효성병원(충북 청주)으로 총 4곳이 지정돼 있다. 이런 뇌혈관 전문병원은 병원의 전문화와 특성화를 통해 난도 높은 의료행위를 하며, 최근 통계를 보면 연간 최소 300건에서 최대 800건 이상의 뇌혈관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뇌혈관질환 치료 만큼은 상급종합병원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 정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졌는지는 수술 통계만 놓고 봐도 비교할 수 있다. 본원은 2020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834건의 뇌혈관 수술을 시행했다. 대학병원도 아닌 지방의 중소병원이지만 뇌혈관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8명 있고 뇌혈관센터에 소속된 의사만 해도 11명에 달한다. 대부분 개두술과 중재수술 같은 고도의 술기를 지닌 숙련된 의사들이다. 이들은 팀 체제로 나누어 365일 24시간 응급실 당직 근무를 하며 상시 대기하고 있다.

또 최근 1년간 급성기 뇌졸중으로 본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613명(KSR등록건수)이다. 2019년 한국뇌졸중통계에 따르면 국내 10만명 당 뇌졸중 환자 발생은 100명 정도다. 뇌졸중 내원 환자 613명 등록 기준으로 보면 60만명 이상을 커버하는 수치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등록을 거부한 환자까지 더하면 80만명 정도의 인구를 본원에서 커버하고 있다. 지역 내에서 뇌혈관질환에 대해서만큼은 본원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뇌수술 장면. 에스포항병원 제공

여기에 또 다른 문제점이 있다. 바로 급성 뇌졸중 환자 응급전달체계의 문제다. 급성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의 경우 준비된 가까운 뇌혈관 전문병원이 있음에도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의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라’는 이송 병원 선정기준 때문에 긴급치료를 요하는 뇌혈관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단지 병원 규모가 크다고 뇌혈관 환자를 모두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큰 병원이라고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것이 아니라 이송하는 병원이 뇌혈관 환자를 얼마나 잘 치료할 준비가 돼 있는지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613명의 환자 중 134명(21.8%)이 응급의료센터 이상 권역응급의료센터 혹은 대학병원을 경유해서 본원 응급실로 내원했다. 이들 134명 중 내원 당시 응급수술을 받은 환자는 54명(40%)이나 된다. 반면에 응급실로 내원한 급성 뇌졸중(지주막하출혈, 뇌내출혈, 기타 비외상성 두개내출혈, 뇌경색증)환자 중 연고지 관계로 상급병원으로 전원된 6건을 제외하고 본원에서 치료하지 못해 타 병원으로 옮긴 사례는 없었다.

좋은 시스템을 잘 갖추어 치료할 준비가 된 병원이 있는데 법률상 한 문장 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게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119 중증 응급환자 이송 지침’이 효율화된 전달체계로 변경돼 지역 내에서만큼은 뇌혈관 치료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이 잘 돼야 한다.

전국에는 국가심뇌혈관정책에 따라 2008년 문을 연 14개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가 지정돼 있다. 하지만 2022년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 운영 지침안에 따르면 뇌졸중을 담당하는 신경과 전문의가 3명, 수술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1명이라고 돼 있다.
나라에서 권역심뇌혈관센터를 만들고 뇌혈관질환 국가정책 수립 과정에서 신경과에 비해 신경외과는 배제돼 있다. 신경외과가 핵심이 되어야 할 중증 뇌혈관질환에 대한 인식 부재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그 센터에 소속된 1명의 신경외과 전문의는 365일 24시간 쉼없이 응급 개두술과 중재수술을 위해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누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에 사명감만으로 일할 수 있을까. 제자들이 스승들의 고단한 삶을 보고 아무도 뇌혈관외과 의사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뇌혈관외과 의사는 높은 근무 강도와 고난도 수술의 의료사고 위험도가 높아서 전공의 수련 과정을 거쳤음에도 힘들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꼭 필요한 뇌혈관외과 의사 후배들이 양성되지 않아 매우 안타깝다.

젊은 날 ‘브레인 서전(Brain surgeon)’이 되려는 꿈에 자기 인생을 걸고 국민 건강을 위해 지금 이 시각에도 날밤을 새우며 당직 서고 응급 수술하고 다음 날 외래진료까지 보고 있다. 신경외과 뇌혈관외과 의사들의 노력과 희생이 이 세상을 더욱 더 밝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필수의료 지정과 수가 검토 등 정부가 정책과 제도 개선을 꼼꼼히 살펴주시길 당부드린다.

정리=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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