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여권은 유족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박정태 2022. 12. 13.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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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으로 경찰 수사 답보 국정조사는 공전 거듭…
해임건의안에 보이콧 움직임까지
합의 파기 주장은 설득력 없어
이상민 사퇴는 민심이자 유족외침… 여권 비호가 더 문제
윤핵관 망언에 분노만 들끓어… 예산안 처리 후 국조 실시해야
‘국가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울부짖음 외면 말아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답보 상태이고 국회 국정조사는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제대로 이뤄지는 게 없다. 보다 못한 유가족들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협의회’를 지난 주말 공식 발족하고 정부와 국회에 철저한 진실 규명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시민대책회의를 결성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행동할 것임을 천명했다.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정부와 제 역할을 못하는 국회가 뼈저리게 반성할 일이다. 셀프 수사의 한계를 보인 경찰도 마찬가지다.

먼저 경찰 수사를 짚어보자. 참사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수사본부 수사는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특수본이 참사 현장 책임자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지난주 기각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부실 대응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한 첫 영장이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간 우려했던 수사력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낸 꼴이다.

이 상태라면 윗선 수사는 어렵다. 비교적 과실 정황이 뚜렷하다고 볼 수 있는 현장 책임자의 혐의조차 소명하지 못했으니 경찰 수뇌부와 행정안전부 등으로 수사의 칼날을 어떻게 들이댈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특수본이 경찰 구청 소방 등 각 기관 피의자들의 과실이 합쳐져 참사가 발생했다는 ‘과실범 공동정범’ 법리를 구성 중이라고 한다. 어떤 형태로든 법적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부실 수사가 계속된다면 수사 의지와 역량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특별검사 도입을 재촉하게 될 뿐이라는 점을 특수본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정조사 문제는 더욱 가관이다. 국정조사는 일단 45일간 일정으로 지난달 24일 여야 합의 아래 시작됐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직후 기관 보고, 현장 검증, 청문회 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 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그제 야당 주도로 국회에서 강행 처리되면서 국정조사가 제대로 실시될 것인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자 국정조사 합의 파기라고 주장한 여당의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소속 위원 7명 전원이 사퇴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조사 여야 합의문 어디에도 여당이 주장하는 ‘선 조사, 후 문책’ 같은 약속은 없다. 국정조사 합의와 해임건의안은 별개 문제로 봐야 한다. 오히려 안전관리 주무부처 수장으로 정무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이 장관 사퇴는 민심이었고, 유족들의 외침이었다. 그럼에도 여권은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인 이 장관을 비호해왔다. 이번 해임건의안도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것을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양 난리를 친다. 그리고 국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걸 ‘이재명 방탄용’이라고 365일 내내 부르짖는다. 그게 설득력이 있는가. 애당초 여권은 국정조사를 할 의향도 없었다. 여론에 떼밀려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애초 합의해줘선 안 될 사안”이라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발언까지 나온 걸 봐도 그렇다. 이러니 상당수 국민은 기회만 있으면 국정조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별의별 핑계를 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권은 유족들의 피맺힌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콧으로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여야가 15일까지 예산안을 합의 처리한 뒤 국정조사를 제대로 실시해야 마땅하다. 유가족협의회가 창립선언문을 통해 요구한 것도 국정조사와 성역 없는 수사, 책임자 강력 처벌이다. 사랑하는 가족 158명이 도심 한복판에서 비명횡사했는데도 진상 규명이 지지부진한 작금의 상황에서 당연한 호소이자 분노의 외침이다. 그런 유가족협의회를 겨냥해 ‘정쟁 소비’ ‘횡령 수단’ ‘종북 교육’ 등을 거론하며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선 안 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 또 다른 윤핵관을 보면 절로 한숨만 나온다.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자식 잃은 부모를 투사로 만들고 길거리로 내모는 무책임한 행태다. “국가는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울부짖음이 정녕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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