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속 미래 준비’…RUN UP!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2. 12. 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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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읽는 재계 연말 인사 트렌드

국내 주요 기업이 2022년 연말 임원 인사를 마무리했다. 올해 인사 키워드를 요약하면 ‘도움닫기(RUN-UP)’다.

2023년 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기업은 다가올 위기에 대응하며 조직 안정감을 높이는 데 무게를 뒀다. 한편, 위기 이후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 기술 인력을 적극 등용했다. 조직이 느슨해지는 걸 막기 위한 세대교체도 멈추지 않았다. 삼성전자, LG생활건강 등 주요 기업이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발탁한 것도 올해 주목할 만한 변화로 꼽힌다. 한마디로 기업은 위기 속에서 다음 기회를 위해 준비하는, 정중동(靜中動)의 인사를 단행했다. 매경이코노미는 연말 주요 기업의 인사 트렌드를 ‘R(Retain)’ ‘U(Upcoming future)’ ‘N(Numbers guy)’ ‘U(Upgraded responsibility)’ ‘P(Powerful woman)’로 정리했다.

▶ 1. 핵심 리더십 유지(Retain)

▷ 안정 중요…삼성·SK·LG CEO 대부분 유임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이번 SK그룹 인사를 두고 사내에서는 이런 유명한 경구가 회자됐다. 대내외적으로 경영 환경이 불안한 가운데 계열사 대표이사를 대부분 유임시켰기 때문이다. 그룹 최고 의사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조대식 의장의 4연임이 결정됐다. 또 장동현 SK㈜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유정준 SK E&S 부회장 등 주요 계열사 CEO도 유임됐다. 다만 현업 집중을 위해 장동현, 김준, 박정호, 서진우 부회장은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직을 내려놨다.

삼성전자 역시 한종희-경계현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이어간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월 5일 사장 승진 7명, 위촉 업무 변경 2명 등을 포함해 총 9명 규모의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 경계현 DS부문장(사장) 등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네트워크·반도체 등 핵심 사업 성장에 기여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삼성전자는 “엄중한 경영 현실을 감안해 2인 대표이사와 DX·DS부문장 체제를 유지해 경영 안정성을 확보한다”고 밝혔다. DS부문에 힘을 싣기 위해 경계현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도 언급됐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삼성전기 역시 40대 부사장과 30대 상무를 발탁하는 등 세대교체에 나서면서도 지난해 말 취임한 장덕현 사장을 유임시켰다.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들도 안정에 무게를 실었다. 삼성생명은 전영묵 대표를 유임했고 삼성카드는 김대환 사장을 유임했다. 금융 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각 사 수익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언론 출신 임원들도 중용됐다. 삼성전자는 백수현 DX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박승희 삼성물산 건설부문 커뮤니케이션팀장도 이날 사장으로 승진, 삼성전자 CR(대외협력)을 담당하게 됐다.

LG그룹 장수들도 대체로 재신임을 얻었다. 11월 말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그룹은 용퇴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CEO를 재신임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자리를 지켰다.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4개 주요 사업본부장이 모두 유임됐다. 실적 부진을 겪은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도 유임이 결정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변화를 최소화하는 소폭 인사를 택했다. 루크 동커볼케 그룹 CCO(Chief Creative Officer)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이규복 현대차 프로세스혁신사업부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대신 3명의 사장급 인사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등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들은 모두 자리를 유지해 안정을 꾀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계열사 CEO 대부분을 유임시켰다. 다만 그룹 전반의 대외 환경 대응력 강화 차원에서 지주사 경영지원대표를 신설하고 강호성 CJ ENM 엔터테인먼트부문 대표를 임명했다. CJ주식회사는 기존 김홍기 대표가 경영대표를, 신임 강호성 대표가 대외 협력 중심 경영지원대표를 맡는 2인 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 2. 미래 대비(Upcoming future)

▷ LG그룹 배터리 사업 인재 발탁

이번 인사는 미래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트렌드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LG의 2023년 인사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배터리·소재·자동차 부품(전장) 분야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배터리 사업을 맡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 사업을 펼치는 LG화학, 전기차 시대에 실적 상승이 예상되는 LG전자 VS사업부에서 인재 선발이 이뤄졌다. LG그룹의 전체 승진자는 160명으로 지난해(179명)보다 줄었다. 반면 그룹의 핵심 사업인 배터리를 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는 지난해(15명) 대비 2배 수준인 29명이 승진했다는 점도 미래를 내다본 인사로 해석된다.

이는 구광모 LG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구 회장은 최근 계열사 CEO들과 진행한 사업 보고회에서 “사업의 미래 모습과 목표를 명확히 해 미래 준비의 실행력을 높여나가야 한다”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미래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필요한 인재 발굴, 육성 등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김동명 신임 사장은 배터리 부문 최고 전문가다. 1998년 배터리 연구센터로 입사해 Mobile전지 개발센터장, 소형전지사업부장 등을 역임했다. 고객 수주 증대·합작법인 추진 등으로 중장기적 성장 기반을 마련한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LG전자의 주력 사업인 가전을 책임지는 H&A사업본부장의 류재철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생산과 연구개발(R&D) 분야를 거친 생활가전 전문가다.

삼성전자도 핵심 사업의 미래 대비 경쟁력 강화와 성과주의 인사를 통한 구성원 사기 진작을 위해 7명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특히 네트워크 사업과 반도체 사업에서 3명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보직에도 일부 변화를 주며 핵심 사업의 미래 대비 경쟁력 강화를 꾀했다.

▶ 3. 숫자 중시(Numbers guy)

▷ 어려울 땐 ‘재무통’…전면에 나선 CFO들

올해 재계 인사에서는 재무통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재계 관계자는 “시장이 좋을 때는 전략, 마케팅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한 반면 침체기는 곳간을 관리하는 재무 담당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이성형 SK CFO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동시에 CFO 역할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앞으로 재무 관리뿐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까지 총괄한다. SK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해 투자 관리 전문성을 대폭 강화,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K C&C 사장으로 승진 선임된 윤풍영 전 SK스퀘어 최고투자책임자(CIO)도 SK텔레콤 CFO를 거친 재무통이다. SK C&C 고민은 낮아진 이익률이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조4967억원, 영업이익 1298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8.6%. 2017년, 2018년 영업이익률 13~16%를 기록한 뒤 계속 하락세다.

LG그룹 인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사장으로 선임된 차동석 LG화학 CFO 겸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다. 차 사장은 2019년 LG화학 CFO로 부임,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재무건전성을 개선했다. LG화학 부채비율은 2019년 12월 말 64.2%에서 올해 9월 말 54.9%까지 떨어졌다. 이외에도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CFO 겸 최고전략책임자(CSO)가 부사장, 박지환 LG CNS CFO는 전무로 승진했다.

현대차그룹도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자리에 재무통을 선임했다. 이규복 현대차 프로세스혁신사업부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동시에 현대글로비스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 대표는 현대차 미주 지역 생산법인 CFO를 경험한 재무, 해외 판매 전문가다. 재무통인 이 대표의 부임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엮는 시각도 있다.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열쇠로 불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현대모비스를 그룹 지주사로 전환하는 형태가 가장 유력하다. 이 경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배력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다.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보유 지분율은 0.3%에 불과하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배력 확대를 위해 다른 계열사 보유 지분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보유 지분율은 19.9%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 기업가치가 높아질수록,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도 수월해지는 구조다. 다만 현대차그룹 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 장기화에 대비한 위기 대응 역량 강화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 4. 책임경영(Upgraded responsibility)

▷ 경기 침체 속 시험대 오른 오너가 3·4세

오너 경영 체제를 구축한 기업들은 오너가 3·4세를 전진 배치했다. 한화, GS, 현대중공업, CJ, LS, SK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 침체기에 경영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다만 재계 관계자는 “오너가 3·4세는 단기 경영 실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인 만큼, 신사업 성장동력 발굴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무는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 전략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김 본부장은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한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 또 갤러리아 경영 전반에 참여하면서 조직 내에서 보다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특히 김 본부장의 갤러리아 경영 영향력 확대는 그룹 지배구조와 맞물려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화그룹은 현재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 김동선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 본부장이 각각 영역을 나눠 승계를 준비 중이다. 그동안 김 본부장은 여러 계열사를 옮겨 다녔다. 어떤 사업을 승계할지 불분명했으나, 올해 9월 한화솔루션의 백화점 사업 인적분할 결정과 이번 인사로 승계 구도가 명확해졌다.

GS그룹은 4세 경영 체제를 강화했다. 이번 인사에서 1985년생 동갑내기 허태홍 GS퓨처스 대표와 허진홍 GS건설 투자개발사업그룹장이 상무 승진자에 이름을 올렸다. 허태홍 상무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의 넷째 형인 허명수 전 GS건설 부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허진홍 상무는 허 회장의 셋째 형 허진수 GS칼텍스 상임고문 아들이다.

재계는 GS그룹의 4세 육성 코스가 올해 인사에도 반영됐다고 평가한다. 허태홍 상무는 GS그룹 사업 다각화를 이끌 전망이다. GS그룹은 정유·석유화학·유통 등 기존 사업 탈피에 힘을 쏟고 있다. 허태홍 상무가 이끄는 GS퓨처스는 그룹의 신사업 발굴을 위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허진홍 상무도 GS건설의 미래 먹거리 발굴이라는 특명을 안았다.

이재현 회장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는 올해 승진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할이 확대됐다. 이 경영리더는 식품성장추진실 산하 전략기획1담당을 맡아왔다. 이번 인사를 통해 글로벌 식품 사업을 총괄하는 식품성장추진실장 자리로 옮겼다. 사실상 승진이다. 임원(경영리더)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경영 보폭을 넓힌 셈이다.

▶ 5. 여성 CEO 중용(Powerful woman)

▷ 얇아진 유리 천장…여성 시대 열렸다

‘유리 천장’.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한다. 다양한 부문에서 유리 천장에 금이 생겼지만 기업은 예외였다. 기업 분석 전문 CXO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1000대 기업 대표이사 중 비오너가 여성은 7명으로 0.5%에 불과하다.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중도 5.6%에 그친다. 재계 1위 삼성그룹도 다를 바 없었다. 이번 인사 전까지 오너를 제외한 여성 사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삼성그룹에서의 여성 사장은 이재용 회장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했다. 하지만 올해 인사를 기점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됐다. 삼성전자는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 부사장을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사장은 유니레버코리아, SC존슨코리아, 로레알코리아 등 주로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했다. 2007년 삼성전자 입사 후 갤럭시 마케팅 성공 스토리를 주도했다. 갤럭시 노트7 단종 사태를 극복해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이 사장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 삼성전자 측은 “역량과 성과가 있는 여성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여성 인재들에게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LG그룹도 비오너가 출신 여성 전문경영인이 최초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이 주인공이다. 18년간 LG생활건강을 이끈 차석용 전 부회장 후임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꾸준한 실적 개선을 이뤄온 ‘차석용 매직’의 바통을 어떻게 이어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최근 LG생활건강 실적이 하락세인 만큼 이 사장 역할이 중요하리라는 전망이다. LG생활건강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1900억원. 분기 영업이익이 2000억원 이하로 떨어진 건 2017년 4분기(1852억원) 이후 처음이다.

삼성, LG그룹 외 기업들도 여성 CEO를 등용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CJ올리브영은 이선정 CJ올리브영 경영리더를 CEO에 올렸다. 1977년생 40대인 그는 올리브영 최초의 여성 CEO다. 11번가도 안정은 최고운영책임(COO)을 신임 대표이사로 발탁했다. 안 대표 역시 11번가 첫 여성 CEO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8호 (2022.12.07~2022.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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