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주택 철거 명령, 그는 우주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학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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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린> 영화 포스터 |
ⓒ (주)엣나인필름 |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이 연출한 <증오>(1995)는 대도시 외곽의 주거 공간을 배경으로 저소득층, 이민자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그려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대도시 외곽의 주거 공간을 무대로 삼아 게토 문제, 빈곤 문제, 인종 차별 문제, 이민자 문제 등 프랑스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한 영화들은 <13구역>(2004), <걸후드>(2014), <디판>(2015), <디바인스>(2016), <큐티스>(2019), <레 미제라블>(2019) 등으로 이어졌다.
파니 리에타르 감독과 제레미 투루일 감독이 공동 연출한 <가가린>(2020)도 이 계보에 속하는 영화다. 두 사람은 1960년대 초반 프랑스의 공산당이 파리 외곽 지역에 지은 총 370세대의 가가린 주택 단지(러시아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땄다)가 2014년 철거 명령이 내려지자, 그 다음의 풍경을 소재로 15분가량의 단편 영화 <가가린>(2014)을 발표한 바 있다.
파니 리에타르 감독은 가가린 주택 단지의 철거를 연구하던 주변의 건축가 친구들로부터 공간과 사람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를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이곳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가린 주택 단지의 주민들이 건물을 향해 느낀 이별의 감정은 고스란히 단편 영화 <가가린>에 담겼다. 이후 프로젝트는 장편 영화 <가가린>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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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린> 영화의 한 장면 |
ⓒ (주)엣나인필름 |
전반부는 흡사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리얼리즘의 색채가 강하다. 고립된 공간(가가린 주택 단지)과 고립된 상황(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신세)에 놓인 유리를 보노라면 <피쉬 탱크>(2009)의 미아(케이티 자비스 분)가 떠오른다. 반면에 무너지는 가가린 주택 단지에서 유리가 우주선을 만드는 후반부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활용하여 현대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의 욕망과 광기를 건물로 풍자한 <하이-라이즈>(2015)처럼 말이다. 제레미 투루일 감독은 마술적 리얼리즘이 현실과 폭력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밝힌다.
"유리는 굉장히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유리는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상처받고 침잠하는 소외된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유리가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의 자신감을 빼앗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유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을 숨기기보다는 약간 엇박자로 접근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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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린> 영화의 한 장면 |
ⓒ (주)엣나인필름 |
파니 리에타르 감독과 제레미 투루일 감독은 "우리는 건물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가가린 주택 단지와의 관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포착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가가린>은 우주를 향해 꿈을 꾸는 유리와 가가린 주택 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60년대 연대의 꿈을 되살린다(부산국제영화제 서승희 프로그래머)". 또한, "이 공간은 누구에게는 흉물스럽고 사라져야 할 곳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간절히 바라는 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장다나 프로그래머)"는 평가처럼 공간(집)에 새겨진 개인과 집단의 꿈, 시간, 의식, 감정을 환기해 준다.
말과 이미지로 유기체적인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서의 집을 <집의 시간들>(2017)이 보여주었다면 <가가린>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힘으로 대도시 외곽의 주거 공간을 다루는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과 가능성을 선사한다. 과감한 상상력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실로 독창적인 영화다. 제73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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