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폐지 줍는 노인

태원준 2022. 12. 12.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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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다니며 폐지 줍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2018년 중국이 폐기물 수입 금지를 선언했을 때 국내 폐지 가격은 30% 이상 급락한 1㎏당 90원(압축장 기준)이 됐다.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 국내 제지공장 등의 폐지 재고는 20만t에 육박한다.

폐지 수거하는 일이 노인의 업(業)인 나라는 소위 선진국 가운데 한국뿐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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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다니며 폐지 줍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버려진 것이고 온종일 주워봤자 1만원짜리 한 장 받기도 힘들지만, 이들이 수거하는 종이상자, 포장지, 신문지 등은 엄연한 수출품이다. 고물상과 압축장을 거쳐 국내외 제지공장에 재활용하도록 판매된다. 올봄에는 한 달에 5만t씩 해외로 팔려갔다. 그러다 보니 폐지 값은 세계 경기와 무역 환경에 상당히 민감하다.

2018년 중국이 폐기물 수입 금지를 선언했을 때 국내 폐지 가격은 30% 이상 급락한 1㎏당 90원(압축장 기준)이 됐다. 이 조치가 폐지 전반에 확대된 2020년 초에는 56원까지 떨어졌다.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 문을 잠갔는데 이후 폐지 값이 회복된 건 코로나 덕이었다. 일회용품과 배달용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작년 하반기 150원에 육박했다. 인도와 필리핀 등 대체시장을 찾아 수출도 이어졌다. 지난 3월 폐지 1t당 수출단가는 200달러가 넘었다.

코로나 위세가 약해지자 이번엔 금리의 역습과 함께 경기침체가 찾아왔다. 수요가 줄어들어 현재 국내 제지공장 등의 폐지 재고는 20만t에 육박한다. 동남아 각국도 불황에 폐지 수입량을 줄여서 지난달 수출단가는 올봄의 절반인 100달러 선까지 추락했다. 압축장에서 매기는 1㎏ 가격은 150원에서 84원으로 떨어졌다. 노인들이 고물상에 폐지를 가져가서 받는 돈 역시 반 토막이 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실태조사에서 폐지 줍는 노인은 약 1만5000명으로 추산됐다. 하루 평균 11시간 동안 12㎞를 걸어 다니며 150㎏이 넘는 폐지를 주워 1만원 남짓 버는 시급 948원의 벌이를 하고 있었다. 폐지 값이 올봄의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으니 이런 삶이 곱절로 더 힘겨워졌다. 폐지 수거하는 일이 노인의 업(業)인 나라는 소위 선진국 가운데 한국뿐이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노인빈곤률이 이런 풍경을 낳았다. 지난 정부에서 여기저기 그렇게 퍼줬지만, 저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약자를 위한 복지를 말하는 이번 정부에선 과연 다를지, 지켜볼 일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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