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이든 돼지의 얼굴을 본 적 있습니까
[이인미 기자]
나는 늙은 동물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넓게 보면 사람도 동물인지라 늙은 사람 얼굴은 제법 자주 보았으나, 사람을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술적 명칭으로 살짝 분리해두고 여러 다른 포유동물로만 따진다면, 내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더라도, 나는 늙은 동물의 얼굴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반려동물로 가족처럼 지내는 강아지나 고양이의 늙은 얼굴이라면, 가끔 본 적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경로석에 앉아도 될 법한 나이로 환산되는 15살 이상 나이먹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곤 했는데, 늙은 축에 들었다고는 해도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여전히 귀엽다.
병에 걸려 동작이 느려지거나 안쓰러울 만큼 덜 활달해지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기본적으로 반려동물들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귀여워 보인다.
그러면, 살과 젖과 피와 알 등을 얻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기르는 가축의 경우는 어떨까?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보아도, 도시에 살며 축산농장에 별로 방문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동물의 늙은 얼굴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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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사로잡는 얼굴들> |
ⓒ 가망서사 |
'생추어리'는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동물보호소나 동물쉼터 정도가 될 것 같은데, 도축 직전 혹은 학대 도중에 구출된 여러 종의 동물들을 돌보는 시설을 말한다. 이 같은 총체적 돌봄을 하는 '생추어리'는 우리나라의 경우 한 곳이 있고, 우리나라보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에는 여러 곳 있다.
나이듦 그리고 늙어감
사실 늙음(老, being old)의 이미지는 대개의 경우 그것 자체로는 그다지 긍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것 같지는 않다. 있는 그대로 늙음을 좋아라 하고 진심으로 반기는 사람은 딱히 많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늙어간다, 우리는 대체로 그리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란 '인간 종'을 가리킨다.
우리는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피부와 몸매가 (스스로 관리를 잘했거나 의료적 도움을 받았거나를 막론하고) 젊은이와 거의 동급인 사람들에게 눈길을 더 주고 반색하고 감탄한다. 또 우리는 나이가 팔십이 넘었는데도 체력과 근력을 젊은이 못지않게 유지하고 걸음속도가 빠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우러른다.
나이가 적은 사람의 얼굴이 늙어 보이면 '노안'이라 부르고, 나이가 많은 사람의 얼굴이 어려 보이면 '동안'이라 칭하며, 노안보다 동안이 상대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는 나이가 많더라도 늙지 않는 (늙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 많은 동물의 나이 많아 보이는 '노안'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수록한 이사 레슈코의 책 <사로잡는 얼굴들>의 원제는 <Allowed to Grow Old>다. 말 그대로 "늙어감을 허락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수록했다. 나이 많이 먹었음에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주름살 없는 팽팽한 피부, 불끈불끈 탄탄한 근육을 유지하는 일에 대해 이 책은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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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소의 얼굴 |
ⓒ 가망서사 |
이사 레슈코는, 자신이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나이든 얼굴과 그윽한 눈빛에서 느낄 수 있고 전달받을 수 있었던 그들의 연륜과 내공과 품위를 화면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같은 이사 레슈코의 의지가 이 책 <사로잡는 얼굴들>에 잘 구현되어있다.
모델이 된 동물들은 의젓하다. 사진 찍힌 바로 다음날 세상을 떠난 동물도 있지만,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진 찍는 이가 그만큼 편안하게 해준 탓일까) 조만간 자연적으로 끝나게 될 자신의 유한한 삶을 지금 충분히 누리고 있다는 듯 느긋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 그들은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늙음과 쇠잔함은 분명 보는 이의 마음을 동요케 하나, 불쌍하다는 느낌으로 후다닥 휘몰아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사진 뒤에 붙어있는 '과거지사(학대받거나 쫓겨났던, 고통스러운 지난 날들)'를 한 자 한 자 읽어갈 때에도 마음은 아프지만, 가엾다는 느낌으로 그 마음이 황급히 변형되지도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아파오는 상태를 지긋이 겪어낼 수 있게 해준달까. 이 책은 불행과 빈곤의 이미지를 일부러 선별하고 중첩해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불쌍함과 가여움 같은 감성자극을 극대화하려는 '감성 포르노' 혹은 '빈곤 포르노' 류와는 확실히 다른 길을 간다. 동물들의 늙은 얼굴을 들여다보는 동안 막 따뜻한 느낌도 없는 한편, 막 휘둘리는 느낌도 없다.
'감성포르노'를 넘어, 육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육식생활에 대해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다. 4~5년 전쯤(대략 2018년 초) 무심코 쇠고기를 오래도록 씹던 중 "아, 내가 왜 남의 살(소의 살)을 이렇게 오래도록 씹고 있지?"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육식을 줄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를 키우는 방식이 지구의 기후환경에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을 살펴보고는 육식을 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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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닭의 얼굴 |
ⓒ 가망서사 |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는데 난데없는 상상의 소리, 이런 음성이 문득 들려왔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이 음성은 '67% 채식주의자'의 자기합리화를 얄팍하게 뒷받침하는 의도된 환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다. 뭐든 100%를 꽉꽉 채워 달성해야만 꼭 만족스러운 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육식생활에 대한 죄의식이나 자기방어적 심정을 잠시 내려놓고 육식생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한 번 정도 해보는 것쯤은 괜찮겠지 하는 정도로 '가볍게' 마음을 먹는다면, 이 책을 기분좋게 읽어나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과는 (아주 조금일지라도) 조금 달라진 자기자신의 생각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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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주간기독교>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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