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장 추천제 해법 딜레마…"인사권 두고 밥그릇 싸움만" [현장에서]

하준호 2022. 12. 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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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의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한 내부 비판과 갈등 속에 지난 5일 열린 올해 마지막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의 결론은 용두사미였다.

법관회의 법관인사제도분과위원회는 이 회의를 앞두고 법원 내부망에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공개 비판했다. ▶최다 득표자가 법원장에 보임되지 않거나 추천조차 되지 않은 사람이 법원장에 임명되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자신의 측근을 법원장에 앉히기 위해 법원장 후보 추천에 유리한 수석부장판사로 임명한다는 지적이 있단 취지다. 이 글로 김명수 대법원과 법관회의 사이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법관회의가 정기회의를 통해 대법원에 어떤 요구를 내놓을지가 법원 내 최대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법관회의의 의결은 맹탕에 가까웠다. ①대법원장은 되도록 각 법원에서 법원장 후보로 추천한 법관 중에서 법원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안은 가결됐지만 ‘최다 득표자 보임 원칙’이 빠진 수정안이 의결됐고 ②대법원장이 ‘측근 알박기’를 위해 법원장 추천에 유리한 수석부장판사 임명권을 활용한다는 비판과 관련해 이 같은 제도 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의안은 부결됐다. 한 부장판사는 “수석부장은 법원장 후보 추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수준의 의결이 나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19년 김명수 대법원이 도입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제도가 왜곡되고 있단 비판이 제기되면서 대법원과 전국법관대표회의 사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사법연수원에 모인 전국법관대표회의 대면 참석자들이 회의 개의를 준비하는 모습. 연합뉴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 제시된 김명수 대법원의 핵심 어젠더 중 하나였다. 2019년부터 올해까지 총 13개 법원에서 실시됐고, 내년부터는 총 20개 법원에서 시행한다. 당초 법원장에 순차 보임되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가 사라지고, 추천제가 확대되면서 법원 내 반(反)김명수 진영에선 김 대법원장이 법원장 추천제를 ‘측근 알박기용’으로 이용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대법원장은 내년 9월 퇴임하지만 법원장들의 임기는 통상 2년이라서 나오는 얘기다. 이에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이 약속한 민주적 사법행정, 인사권 분산의 일환으로 내부 만족도가 높다는 자평으로 맞섰다.

문제는 추천제를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비판 소재로 사용하는 쪽이나, 이를 방어하는 대법원이나 갈등의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법관회의 측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제도적 왜곡 현상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김 대법원장이 100% 책임지는 인사권 행사에는 반대한다. 또 최다 득표 후보자를 무조건 법원장에 선출해야 한다는 100% 직선제 주장은 이들이 비판하는 ‘사법 포퓰리즘’ ‘인기투표’란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소 힘 빠진 법관회의 의결사항은 이 같은 딜레마의 결과다.

김 대법원장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019년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처음 실시되기 전 측근 그룹 안에서는 이에 제동을 거는 반대 의견이 나왔다. 한 측근은 당시 “헌법이 부여한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판사들의 선거 결과로 떠넘기는 건 사법행정권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법관회의 주장처럼 대법원장이 각급 지방법원 판사들이 선출한 대로만 법원장을 임명하면 사실상 헌법상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 박탈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제왕적 사법행정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김 대법원장으로선 재임 기간 치적 중 하나로 내세우는 추천제를 중단하기엔 부담이 크고, 판사들이 선출한 대로만 법원장을 임명하면 무책임 인사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수석부장판사가 법원장 추천에 유리한 것과 관련해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나눈다면서 수석부장 임명권을 통해 추천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사진)은 지난 9일 송경근 민사1수석부장, 김정중 민사2수석부장, 반정우 부장판사 등 세 명을 법원장 후보로 추천했다. 뉴스1

법관회의 당일 오전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은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관한 비판에 질의응답 형식으로 해명했으나 일부 참석자는 “납득이 되는 설명이 없다”고 성토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한 회의 참석자는 이런 관전평을 내놨다. “법관회의 쪽은 우리가 추천한 대로 법원장을 임명하라고 주장하고, 행정처는 인사권이 엄연히 대법원장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디다. 한마디로 법원장 인사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밥그릇을 내놓으라고 싸우는 형국이었어요. 어떤 인품과 실력, 비전을 가진 사람이 법원장으로 임명돼야 한다는 본질적인 논의는 실종된 채로요.” 회의에선 법원장 추천 과정을 모두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자는 의견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판사들 사이에선 “2년 동안 법원장을 역임한 뒤에 다시 동료 법관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법원장과 소통을 방해하는 큰 장벽 하나가 사라진 느낌”(서울중앙지법 판사)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법원장이 되려는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 사전에 알 수 있는 건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김명수 체제 6년간 법원은 대법원장 인사권을 쪼개네 뭉치네 하는 동안 ‘내 편, 네 편’으로 갈리며 어수선해졌다. 분명한 건 그러는 사이 사법 서비스의 기능부전 현상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2017년 9월 김 대법원장 취임 뒤 약 5년간 1심 선고에 2년 이상이 걸린 장기미제가 민사사건은 3배, 형사사건은 2배로 늘었다.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여전히 증가 일로다. 법원장 임명권 등을 둘러싼 판사님들의 아귀 다툼은 국민들의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볼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타당하다면 그 이유도 신속하고 공정한 분쟁해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어야 하고 부당하다면 그 이유 역시 같은 목적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민주적인 사법행정의 목적은 김 대법원장이 늘 강조하는 ‘좋은 재판’이어야 할 텐데, 실제 그런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지 서로 머리를 맞대 냉정하게 진단부터 해보는 게 순서 아닐까.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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